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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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로 안 읽던 우리 소설을 읽게 되었고,  오랜만에 리뷰를 쓰게 되었다.  그동안 읽은 책은 많았지만,  이상하게 자판을 대하기가 꺼려졌었다. 그것은 가벼운 책을 많이 읽은 이유도 한 몫 했지만, 또한 마음에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다른 곳으로 발령 받은 지 꼭 1년하고 반이 지났는데, 이 시기가 내 인생에서 가장 어둡고 힘든 시간을 보낸 것으로 생각된다.  그동안 나름대로 성실히 임했지만, 재수가 없었던지 다혈질 직장 동료를 만나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었었다.  같은 직급이면 개 무시하고  외면하면 되지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고민이 클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술이 어지간히 되었을 때는, 나의 주먹이 그 놈의 면상으로 막 나갈려는 위기의 상황도 있었었다.

 먹고 산다는 명제는, 많은 것을 인내하게 하고 저어하게 만든다. 칼로 무 자르 듯  명쾌하게 해결 될 수 없는 문제가 우리 삶 앞에는 무수히 많은 것이다.  별다른 노력 없이 줄 잘 서서 승진하고, 자기 성찰 한 번 하는 것 없이 기고만장하게 살아가는 인간을 어떻게 제어 한단 말인가.  세상만사가 오름이 있으면 내림이 있고, 작용과 반작용이 있다고 하는데  자연 고사를 기다릴 수밖에  수가 없다.

 천명관은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힘이 강한 작가라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의 이름도 생소했었지만,  그를 알게 된 것은 <고래>를 통해서이다.  뚝심 있고 지칠 줄 모르게 이야기를 몰아쳐가는 힘을 이 <고래>라는 작품이 나에게 증명해 주었다.


  개인적 입장에서 보면,  좋은 소설은 독자를 슬며시 미소 짓게 만들다가도 마음을 찡하고 아리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독자를 울리고 웃기는 작품이 가독성이 있고 그 작가의 다른 작품도 찾게 만든다.  물론 독자의 수준 차이에 따라 다르게 판단이 되겠지만 말이다.  움베르토 에코를 읽으면서 눈물과 웃음을 반복하는 독자도 있지만 뭔 내용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고령화 가족>은 올 여름의 무더위를 날려 버릴 정도로  재미있고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읽었을 것이라 여겨져 뒷북을 치는 게   아닌가하는  염려 또한 있지만 말이다.
  힘들게 하는 직장 당장 때려치우고 싶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최소한 든든한 집 한 채는 있어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자식들이 직장에 나가고 사랑을 하다가 절망하고 상처 입어 파산을 했을 때, 그들을 품어줄 넉넉한 방은 가진 집 한 채는 꼭 있어야 한다. "비록 자식들이 모두 세상에 나가 무참히 깨지고 돌아왔어도“(58p) 그들을 밥 먹여 주고 재워줄 그런 곳 말이다.   그들이 그 집에 들고 나면서 다시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와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인생은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법이다. 지루한 일상과 수많은 시행착오, 어리석은 욕망과 부주의한 선택 ----- 인생은 단지 구십 분의 플롯을 멋지게 꾸미는 일이 아니라 곳곳에 널려 있는 함정을 피해 평생 동안 도망 다녀야 하는 일이니라.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해피엔딩은 꿈꾸면서 말이다.(45p)

 소설 속의 인물들, 어떻게 보면 막장 드라마 같은 집구석이지만, 세상에 나가 무참히 깨지고 돌아온 자식들을 그들의 칠십 노친은 두말 않고 받아들인다. 이럴수록 잘 먹어야 한다고  들입다 고기만 상에 올리는 어머니.  그녀는 자식을 다루는 지혜만 있고 무조건 희생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인생도 잘 추슬러 나간다. 그렇다. 아무리 삶이 팍팍하더라도 일단은 잘 먹고 버티면서 또 다른 기회를 엿보아야 한다. 한 치 앞은 알 수 없는  인생길에서 완벽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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