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꽃
아마노 세츠코 지음, 고주영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이 소설이 아마노 세츠코의 데뷔작이다. 이것을 들먹이는 이유는 작가 입문이 상당히 늦다는 점 때문이다.  그가 60세의 늦은 나이로 쓴 소설이니, 대기만성이라고나 할까.  <지리산>의 작가 이병주가 국제일보라는 신문기자 그만두고 40세의 데뷔한 것을 두고 세인들의 화자가 되었는데, 이 작가는  가히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우아한 몸짓과 공손한 말투 뒤에 항상 상대를 업신여기는 거만함을 감춘, 자기애가 강한 여자, 남편에게 아무리 절박한 사정이 있다 한들, 그것을 위해 스스로 몸을 옭아맬 여자가 아니다.”(226p) 이것이 여자 주인공 쿄코에 대한 형사 토다가 묘사한 인상이었다.  남편 세노 타카유키도 그녀와 비슷할 정도로 거만하고 냉정한 스타일이지만, 작품에서는 그렇게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쿄코의 이런 캐릭터의 묘사만 봐도 뭔가 한 건 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녀가 그렇게 도도하고 싸가지 없는 성격이지만, 불임이라는 말 앞에서는 기가 팍 죽고 과도한 아드레날린을 분비한다.  그녀는 산부인과에서 임신한 배불뚝이 여자만 보아도 죽이고 싶을 정도의 증오를 느끼고 질투한다.  불임이라는 말은 그녀에게 모욕적인 말이다.  그래서 그녀가 신체적 결함으로 애를 가질 수 없다는 말은 살인과 연결될 정도로  그녀에게는 엄청난 상처이다.  

 


이 작품에도 나오는 말이지만 ‘딩크족’이라고, 얘를 일부러 낳지 않고 살려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하기야 자의적 결정으로 포기하는 것하고, 아기를 가지려고 해도 안 되는 부부하고는 다를 수 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 작품에서는 불임이 큰 불행의 시작이고, 사건의 전환점 역할을 하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    

 

 


“타카유카와 함께 목숨을 끊는다. 그것도 동반 자살이라는 형식으로, 그것이 쿄코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림자의 여자에게 타카유키를 되찾는 길이자, 세키구치 마유미 살해 사건을 타카유카와 쿄코의 공범으로 종결시키는 방법이었다.”(261p) 일부함원은 오월비상이라고.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한다.   쿄코의 집착과 선․악을 가리지 않는 거침없는 행동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지난여름 어느 맥주 집을 가니 맥주잔을 냉동하여 거기에 맥주를 담아 주던데 엄청나게 시원했던 기억이 난다.  작가도 이 작품을 구상할 때, 맥주 집에서 얼린 컵을 사용했는지 이 작품에서 아주 중요한 연결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이 책 제목이 아름다우면서도 냉정한 여성을 뜻하는 의미도 있겠지만,  얼린 컵이 제목‘얼음 꽃’과 그렇게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이 심리 묘사도 띄어나고 예상 밖의 사건이 얽혀 있어 읽는 재미가 그런대로 쏠쏠하다. 그런데 몇 가지 약간의 흠도 엿보이는 것으로 보았다.

 

 

우선, 목격자 진술이 이 작품의 수사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도타 경위의 끈질긴  탐문으로 서서히 전모가 밝혀지는데 그것이 목격자 진술을 통한 경우가 많았다. 백화점이나 지하철 역사에서 한 번 본 여자를 어떻게 등장인물들이 똑똑히 기억하는지 필연성 면에서 좀 떨어진다.  역사에서의 쿄코를 목격한 할머니의 진술은, 자신의 딸의 행동반경을 눈 여겨 봤더라도 몰랐을 정도로 세밀하고 구체적이다.  

 

 
 “토다 씨, 그건 이상한데요, 그렇게 멋쟁이인 쿄코가 매니큐어가 망가진 것을 눈치 못 챌 리 없죠.  틀림없이 뭔가 있어요. (281p)   손가락 하나의 손톱에 매니큐어 벗겨진 것을 신고하는 동창이나, 그것도 수사 자료라고 말하는 형사들이나 너무 오버하는 것은 아닌지.

 

 

결정적 단점은 이 작품의 중언부언에 있다. 이미 독자들은 눈치 채고 다 알고 있을 사실을 등장인물을 통하여 다시 복기하는 점은 지루할 밖에 없다.  그냥 넘길 수밖에. 분량 면에서 20% 정도는 다이어트 하는 것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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