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용후기 - J. 스콧 버거슨의
스콧 버거슨 지음, 안종설 옮김 / 갤리온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들리는 말에 의하면, 2년 전 대통령 선거에서 개발 논리를 내세우는 후보를 서울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많이 찍었다고 한다. 나는 충청도 지방에 거주하는 관계로 알 수는 없지만 자기 집 값 올려준다는데 마다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제는 문제 제기 하는 사람도 없다. 부수고 다시 그 자리에 고층 빌딩이 들어서는 과정이 반복 된다. 일본이나 영국은 옛 건물을 잘 보존한다고 하는데, 특히 영국은 오래되고 손 때 묻은 집을 더욱 소중히 한다고 어서 읽은 것 같다. 좀 불편하더라도 전통을 중시하고 옛 것을 소중히 여기는 그 사람들이 생각 날 때가 있다. 중국에도 무슨 거리라 하여 골목길도 관광 자원으로 개발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주장 했다가 맞아 죽기가 십상이다. 집 값 떨어진다고 말이다. 버거슨의 문제 제기가 순수하고, 돈 되면 무엇이든 하고 보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순진하기 까지 하다. 

 

 

현재 정치권은 수도 이전 문제로 야단법석이다. 정모씨라는 양아치 형님이 앞장서서 총대를 메고 나섰다. 평소 해오던 그 분 행태를 보면, 아예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었던지, 오히려 행정부처 이전을 찬성했을 것 같은데, 완장차는 관리가 되더니 무대뽀이다.  마치 무슨 행정수도 이전 수정안 전도사 같다. 추해보이고, 한 편으로는 불쌍하게 느껴진다.  나이가 들면 자기의 소신이 약해지고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더니 그 양반에게 딱 맞는 설명이다. 그는 돌아다니며 행정 부처가 하나라도 이전하면 나라가 거덜 난다고 하여 뭇사람들의 원성을 샀다.  나라가 행정수도 이전이 나라가 거덜날정도면 전에라도 자기 소신을 이야기 하며 막았어야 하지 않나.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 수장으로 있을 때, 공인으로서 목에 칼이 들어오더라고 문제 제기를 했어야 옳지 않았나. 그는 권력에 뜻이 있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하여 이것   저것 안 가리고 발을 담구는 하나의 정치인에 지나지 않는다. 

 

 

대통령 선거에서 행정 부처를 이전을 수십 번 강조해서, 표를 얻어 넣고, 공약으로는 무슨 말을 못하느냐고 생까는 분은 무엇으로 설명이 될 수 있을까. 무슨 청남대  뒷산에서 아침 이슬을 부르며 반성했다고 하다가 뒤퉁수 갈길 때 알아봤지만 말이다. 탄핵을 당하더라고, 자기 신념이 옳다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사람이 나는 좋다. 허언을 밥 먹듯이 하고, 국민을 호구로 아는 관리들을 정말 싫어한다. 충청권 사람들이 요즈음 몸소 체험하는 옛 말이“조변석개(朝變夕改), 조령모개(朝令暮改), 조선공사 삼일을 못 간다.”이다. 수도권에 올인 하는 그들이 저주스럽지만, 한편으로는 무시당하고 천대 받으면서도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더욱 이해 안 간다. 그들은 둘 중의 하나다. 더 이상 이야기 안 해도 짐작이 갈 것이다.

 

 

 

이 글을 쓰다가 우연히 인터넷 신문을 보니 노통의 지역 균형에 대한 제주도 연설이 나왔다. 거두절미하고, 그는 작금의 상황을 정확히 예상한 듯 하는 발언이 전율을 느끼게 했다. “이제 제가 더 이상 균형발전정책을 지킬 수가 없다” “국민(여러분)이 지켜 달라” “지방 사람도 서울사람 만큼 그 이상으로 대우 받으며 그렇게 살 수 있다” 이 부분 만 가지고 말 할 때, 정말 그는 통찰력이 있는 지도자였다.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지는, 자기 철학이 있는 신념의 지도자였다. 자기가 불리해지면 협력하고 동조하는 듯하다가, 잠잠해지면 가차 없이 내쳐버리는 시정잡배보다도 못한 짓은 절대로 하지 않는  참으로 따스한 지도자였다.

 


또 보수 신문에는 박근혜의 신뢰라는 칼럼을 실었다. 결론적으로 그녀는 신뢰를 충실히 지키는 자인데 그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다. 때로는 변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사람들은 신뢰라는 최고의 덕목도 자기들 이익에 반하면 가차 없이 의미를 평가 절하하려는 자들이다. 말해 무엇 하나 그것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한심할 뿐이다.    

 

 

왜, 이리 서론이 길어졌나 하면, 바로 이 책을 읽으면서, 요즈음 우리나라 서울에서 벌어지는 개발논리에 대한 저자의  염려에 공감이 어느 정도 가기 때문이다. 고택으로서 정취 있는 한옥이 눈 깜작 할 사이에 재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사라짐을 저자는 안타가워 한다. 

 

 

 

 

“2005년 한 해 동안에만 종로 내 숙소 부근의 오래되고 아름다운 한옥 세 채가가 사라졌으며, 그 자리에는 10년도 못 갈 것 같은 볼품없는 현대식 건물이 들어섰다. 이제 내 숙소 앞 골목길에 한옥이라고는 딱 한 채밖에 남지 않았는데, 가격만 적당히 맞아 떨어지면 그 집 역시 한 줌의 먼지로 사라질 게 뻔하다.(40p)

 

 

 

 

“도덕주의자, 돈에 눈먼 개발업자, 도심의 고급화를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중략), 솔직히 성인들 사이의 합의에 의해 성(性)을 사고파는 것과, 단지 돈을 벌려고 자기 자신의 역사를 강간하는 것, 둘 가운데 무엇이 더 나쁜지는 선뜻 판다하기 어렵다." (57p)

 

 

 

 

어느 보수 신문에서 서평을 담당 기자는, 버거슨이 한국 여자한테 채여서 그런 부정적 얘기를 한다고 단정한다. 그러나 버거슨의 주장이 치기어리고 동의하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 부분은 올바른 지적으로 보이다.

 

 

 

 


한편으로는, 버거슨은 자기만이 한국 관련의 책을 써야 된다는 듯, 다른 외국인의 한국에 관해 쓴 글에 몽니를 부린다. 정신대 할머니들의 일본 대사관 앞 농성을 보고 이에 동조하는 메이어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우선 한국인 부역 남성이 젊은 여성을 징발하는 일본인을 능동적으로 도와 사신의 자매를 팔아넘겼고, 그것으로 금전적 이득을 취했다는 것이다. 이는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격이고, 장님 코끼리 만지 듯 하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꼴이다.

 

 

어쨌거나 버거슨은 다른 외국이 한국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을 지적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전문가가 되었다. 심심해서, 미국에서 할 게 없어서, 잠시 한국에 와서 영어 강사나 하면서 마약이나 먹고, 풍기 문란을 일으키는 자들과는 구분되어야한다. 즉 그가 비록 격정에 휩싸여 치기어린 한국에 대한 비판이라도 경청해야 될 가치가 있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 모두가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그의 ‘경주 다방 사건’은 웃음을 짓게 만드는 내용이다. 몇 년 전의 추억을 기억하며, 다시 한 번 작업 걸려고 찾은 다방의 대접이 소홀하자, 그가 분노하며 끌어다 부치는 견강부회의 논리는 한 편의 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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