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하고 통쾌한 교사 비판서
로테 퀸 지음, 조경수 옮김 / 황금부엉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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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 주변에는 교사가 많다. 친구도 몇 명 있고, 집안에 제수씨서부터 시작해서 웃어른 까지, 중 ․ 고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분이 많아서, 행사 때 모이면 결론 없는 교육 이야기를 많이 한다. 교사 집단이 30만이 넘는 거대 조직인 것으로 알고 있고, 아이들이 없는 집이 드무니 서로 통하는 마침맞은 소재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사를 긍정적으로 보다는 비판하는 경우가 더 많다. 아니, 거의가 눈에 독기를 품고 자기 아이의 담임 또는 학과 관련 샘을 못 마땅해 하고 심지어는 증오한다.  거기에 상당한 구체적 사례까지 들어서 실감나게 말하니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공분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교사들이 반성할 점도 많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거대 조직으로서, 다른 집단 보다는 그래도 도덕적인 마지노선을 지키며 박봉에 열심히 한다고 보지만 말이다. 우선 사교육에 많은 부분을 내주고 있는 현실은 변명에 여지가 없을 것이다. 물론 권력에 좌지우지 되고, 거듭 되는 미봉책에 불과한 교육 정책이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없지만.

 

 


네 아이를 둔 독일 아줌마 로테 퀸의 교사 비판은 아주 신랄(辛辣)하다. 우선 책 한 권에 해당되는 교사 비판 서(書)니 분량 면만 보도라도 얼마나 방대한가.      우리나라 교사들이 이 책을 꼭 읽고 성찰해야 한다고 본다. 참으로 교사의 사회적 책무가 얼마나 무겁고, 선생들 언행 하나하나가 얼마나 큰 파문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지 읽고 통찰해야 한다.   그런데, 이 책 부록에서 누가 얘기했지만,  독일과 우리나라 학교하고 어쩌면 그렇게 모든 상황이 똑 같은지 놀랐다.  

 

 


 한편으로는, 로테 퀸이 직장 생활도 하면서, 네 명이나 되는 아이를 키우다보니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많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아이들의 육아 스트레스를 모두 샘들한테 뒤집어씌우려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러웠다. 쟁점을 부각시켜서 책을 팔아먹으려는 속셈일 수도 있다. 모든 학교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침소봉대하며 견강부회하는데 발군(拔群)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녀는 우선 교사에 대한 선입감을 가졌고, 어떠한 경우라도 선의로 보고 판단하려 하지 않았다. 아니 아예 자기 아이들을 맡는 교사를 인간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녀의 직업이 져널리스트라 그런지, 하던 버릇에 그녀의 본성을 드러내어 자기 아이들 교사에 대한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각 소 단원 쟁점이 되는 글로 들어갈 때, 이렇게 교사를 묘사하는 글로 시작한다. “ 사냥개 같은 눈빛의 수학교사, 한 번 거드름을 피우며, 교활한 눈빛의 교사가,  우쭐한 표정으로 거만하게 말한다,” 교사가 자세히 설명하면 “교사들은 끈질긴 수다로” 받아들인다. 급기야는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갖는, 다른 사람들이 ‘관심’이라고 이해하는 개념을, 저자는 아이들을 ‘이용’한다고 비판 한다

 

 

누가 학부모 회의에서 가지 의사에 반하는 표현을 하면, “ 학부모 대표에서 찾아낸 어수룩한 학부형에게 끝없이 보고하게 해서”로 판단한다. 즉 저자는 학교의 정책에 학부모가 수긍하면 아첨꾼으로 몰아붙이고, 교사에 조금이라도 호의적으로 보이면 가차 없이 겁쟁이라 규정해 버린다. 아주 부정적 사고방식에 저 잘났다는 말 밖에 안 된다. 교사를 비판하다가 모자라니 자기와 똑같이 교사를 몰아붙이지 못하는 학부모를 욕하고 비난한다. 이런 여자 두 명만 있으면 학교 거덜 난다.

 

 


“‘짧은 다리’ ‘뚱뚱한 배를 내밀며 삶을 살아간다 ’ ‘골초인데다 그의 입 냄새를 학생들이 역겨워한다’ ”  (91p) 특히 아이도 지어미를 닮아서 그런지 참을   성도 드럽게 없다. "진짜야, 엄마, 그 선생님이 뒤에서 내 위로 몸을 숙이면 토할 지경이라니까.”(91p)  나는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이 냄새가 더 나던데. 공부하느라 잘 안 씻고 그래서 그런지 여학생들도 비릿하고 역겨운 냄새가 난다. 그런데 참고 이해한다. 아이들이 성장기에 있고 힘들게 공부한다는 사실로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채취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저자는 두 번이나 교사의 냄새에 대해서 지적하고 역겨워 한다. 교사들이여, 잘 씻고 향수를 쓰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책의 부록에 학부모 연대 대표되는 분도 교사의 옷차림을 지적했는데 왜 그것이 문제인지 이해가 안 간다. 그 분은 교사가 똑 같은 옷을 삼일 이상 입고 오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교사가 무슨 옷을 입던지, 아이들에게 다양성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오히려 교육적이지 않은가. 동서양의 학부모가 통하는 게 있는지 저자도     교사의 옷차림도 지적한다. “코르덴바지와 다리지 않은 셔츠 등등” 혹시 저자가   갱년기 우울증 아닌 가하는 의심이 든다.

 

 

 

이런 사례도 있다. “ 아이들에게 일찌감치 책임감 있게 예산을 운용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좋은 방법을 교사들이 가로챈다. 즉 교사가 모든 아이들을 위해 직접 공책을 사겠다고 우기며 학부모에게 매달 돈을 걷는다. ”(21p) 과공은 비례라 하던가. “왜 외국어를 잘  못 가르치는가. 괴테는 열세 살 때 모국어 외에 세 개 언어를, 그것도 말과 글을 다 습득했다. 괴테가 똑똑했다는 건 인정하더라도 그의 능력을 키워준 tm승도 있었던 게 분명하다.(26p) 잘못된 일반화의 오류고 추측성 비판에 불과하다.

 

 


저자의 서고 방식이 얼마나 편향적인지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도 있다. 정말 어이 없다. 부정하려들면 부정 안 되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 교사들도 아이들을 가르치며 많이 배운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가 배우는 사람들이라면 왜 교사들만 돈을 받고 학생들은 안 받는지, 그 이유가 납득되지 않는다.(26p)

 

 

 자기모순에 자승자박의 논리도 서슴지 않는다. “정말이지 옛날에는 더 간단하지 않았던가? 학교와 관계있는 것은 모조리 의무라고 선언되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어떻게든 해야 했던 것이다.”(47p) 그렇게 시종일관 주장하던 각자의 개성존중이나 저마다 다른 방식의 교육은 어디로 갔는가?

 

 

 

저자의 이런 주장은 우리 교사들이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본다. “학교는 우리의 일평생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집단 내에서의 실존적 경험의 실험장이기도 하다." (52p)  ”“교사들의 사이에서 정의감은 찾아볼 수 없고, 그들은 예측불허의 권력을 자랑한다." (55p) “가르치는 일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안다. 명료하고 흥미진진한 설명,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는 지속적인 동기 부여, 강력한 보상, 그리고 감정을 배제하고 그 시간에만 국한한 처벌이 바로 그것이다.”(61p) “가정교육을 잘 받고 책임감이 있으며 성적을 향상시키기 위해 열심인 아이들의 무리를 가르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교사가 달리 교사인가? 학습 의욕이 없고 반항적이고 무관심한 아이들에게도 열과 성을 다하여 가르침을 행해야 하는 것이 교사의 임무가 아닌가?”(99p)

 

 


이 책 서문에서 한국의 교육을 칭찬하는 듯 하는  뉘앙스를 풍겼다. 세계 각국의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독일이 20위인데 한국이 핀란드와 1.2위를 다투니 한국의 학교는 훌륭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15세 아이들을 기준으로 핀란드는 주 30시간의 성과인데, 한국은 50시간의 성과이므로 그다지 한국의 교육은 훌륭하지 않다는 것이다. 더구나 자기계발에 제동을 걸고 자살하는 학생이 속출하니 꽝이고, 핀란드의 예는 학생과 교사의 상호존중, 정중하고 인간적인 친교, 낙오자 없는 최상의 결과를 가져오는 아주 훌륭한 교육이라고 한다. 이런 단순 비교가 얼마나 웃기는 일인지 저자는 모른단 말인가

 

 


“ 교사들은 종종 학생들을 무시하고 부당하게 대우하고 자신이 재능이 없다고 믿게 하고 외모와 성격과 출신 배경을 가지고 창피를 준다. 심지어 노골적으로 조롱하고 남들 앞에서 웃음거리로 만들기까지 하면서 학생들에게 압력을 가한다. 학생의 체면을 손상시티는 수만은 행동들이 과거의 회초리와 징계 조치들을 대체하고 있다. 무시하는 시선과 바보 같은 농담은 과거 학생들을 길들이는 수단이었던 꿀밤 먹이기나 회초리질보다 고통이 덜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부당하고 만성적으로 악의적이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훨씬 큰 상처를 준다“ (170p) 저자의 주장에 공감한다.  이런 교사는 없어야 한다. 

 

 

 

 

 

아무튼 이 책의 내용이 저자의 순수한 입장을 대변한다면,  저자는 지쳐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네 아이를 기르고 직업까지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저자는 피해망상증 환자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든다.  글의 내용 중 자기 자식에게 피해가 가기 때문에를 수십 번도 반복한다.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이 담임이 원하는 대로 한다. 담임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했다가는 자식에게 바로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72p)

 

 

 

 

끝내는 저자가 한 교사를 날려버리려 시도한다. 교육청에 투서를 한 것이다. “그에게 아이들을 맡기는 대신 교육청에서 서류를 분류하고 도장 찍는 일을 시키자는 나의 제안을 장학관은”(197p) 한 마디로 저자는 좋아하는 선생이 없다. “우리 아이들은 그 선생님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좋은 선생을 영화관에서나 만난다.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귀를 열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교사들은 어디에 있는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있다”(233p)

 

저자는 학교 때부터 반골이었다. 라틴어 시간이 싫어서 무조건 사유 조퇴하다가 샘이 면제해 주어서 혼자 책 읽고 더 많이 할 수 있었다 한다. 그래서 그는 훌륭한 샘이다라고 처음으로 좋은 선생을 등장시킨다.(230p) 너무 자기중심적이 아닌가.

 


몇 가지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더라고 이 책의 거의 대부분의 내용은 동의할 수 없다. 출판사 측에서 교사에 대한 더 자극적인 비판을 요구했는지도 모른다.  익명으로 책을 출판했다가 나중에 저자가 밝혀지는 것도 하나의 출판 마케팅이라는 냄새가 난다. 저자를 만족하는 교사는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한다.  저자 자신이 자기 자식을 가르친다고 해도 본인의 조건에 맞게 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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