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의 행복
강희근 지음 / 을유문화사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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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시를 많이 읽으려고 시 평론집 등 관련 책 등을 꾸준히 들여다보고 있다. 그런데 어째 시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정말 ‘물 흐르듯’다가 오지 않는다. “시집을 들고 앉으면 고향 가는 열차를 탄 마음이 되거나 어머니 손을 붙잡고 외갓집 가는 길에 나서는 마음이 된다. 그 정도로 행복하다.”(5쪽) 이 정도의 경지에 도 달하려면, 능력 차이가 필연적으로 존재 하겠지만, 어느 정도 시를 읽어야 하는가. 

 

 

“독자는 시를 받아들이는 것을 음식을 맛보듯이 하면 편하게 대할 수 있다.말하자면 직관의 작용으로 맛보기를 해라.”(14쪽)
읽고 무조건 느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시인이 추구하는 행간의 의미 파악이 어렵다.  막연히 지나치다, 해설을 보고 무릎을 치기가 비일비재하다.

 

 

“시에 쓰이는 심상들이 하나로 쓰이고 마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과 연결되어 의미를 증폭시키거나 확장시키는 것을 알 수 있다.”(18쪽) 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전체 흐름을 파악하라는 뜻일 것이다.

 


“유기체인 시를 분석하고 쪼갠 단위로 그 시의 맛을 결코 보아낼 수가 없다.”(20쪽)
"시를 시험 문제로 내면 시가 상한다."(26쪽)
우리 중․고교 문학 시간의 ‘시 감상’은 누구나 경험하겠지만 시를 분석하고 해석해서 배운다.  왜냐하면, 시험 문제에 그렇게 나기 때문이다. 오지 선다형으로 문제화 된 수능을 보기 때문에 분석하여 외우고 말장난해서 만들어 놓은 문제를 풀이하는 것이다. 애매모호한 해석이 있을 것 같은 부분도 무조건 단정적으로 인식하는게 중요하다. 문제가 있다. 그런데 어쩌란 말인가. 개인적 의견으로, 시를 대입 문제로 출제한다면 이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우선 시를 3편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을 골라 백지에 선택된 시에 대한 감상을 적어 보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0.1점 차이로 당락이 좌우되고 동점자가 속출하는 현재는 불가능하다. 시급히 적당하고 합리적인 평가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시급하다.

 

 

저자는 중학교 때 좋은 국어 선생을 만났다고 술회하면서, 박목월의 <청노루>를 별다른 설명 없이 반복하여 읽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공부하던 그 시절은  아득한 옛날이야기에 불과하다. 지금 그러면 난리가 난다. 

 

김준태의 <참깨를 털면서>에서

(중략)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없어 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이 시는‘일시적․ 충동적이며 조급함과 쾌감에 젖은 도시적 삶에 대한 경계를 말하는 것으로 감상한다. 또는 순리를 따를 삶에 대한 깨달음으로 요약하여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世上事에는 맞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 털이에서 있다고 이야기함으로써 세상사의 잘못된 점을 내리쳐서 고치고 싶다는 말임을 눈치 채게 하는 것이다.“(96쪽)

 

“시대가 각박한 때일수록 이와 같은 뜻 감추기가 성행이 될밖에 없다. 알아들을 귀가 있는 자만이 알아듣고 찾아낼 수 있는 눈을 가진 자만이 찾아낼 수 있는 감추기․ 소풍 때 보물찾기를 하듯이 숨겨 놓은 시인의 속뜻을 즐거이, 그리고 가벼운 걸음으로 찾아 나섰으면 한다.”(96쪽)

그런데 참깨는 모가지 털어지면 못쓰는 것이고 두 번 일을 하는 것일까. 왜 그런지 명확한 설명이 없다. 하기야 시 전체를 이해하는 데 몰라도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모든 책이 이 시의 참깨의 모가지가 떨어지면 왜 못쓰게 되는지 별다른 언급 없이 그냥 뭉개고 지나가고 있다.

 


즉 촌에 살아서 그 일을 한 자만이 알 수 있다. 참깨는 단을 묶어 세워서 습기가 마를 때마다 털어서 알맹이를 빼내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덜 건조되어 벌어지지 않은 참깨의 모가지를 털어 놓으면 그것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신경림의  <산1蕃地>에서

해가 지기 전에 산 일번지에는
바람이 찾아 온다.
집집마다 지붕으로 덮은 루핑을 날리고
문을 바른 신문지를 찢고
불행한 사람들의 얼굴에
돌모래를 끼어얹는다.
해가 지면 산 일번지에는 
청솔가지 타는 연기가 깔린다.
나라의 은혜를 입지 못한 사내들은
서로 속이고 목을 조르고 마침내는
칼을 들고 피를 흘리는데
정거장을 향해 비탈길을 굴러가는
가난이 싫어진 아낙네의 치맛자락에
연기가 붙어 흐늘댄다.
어둠이 내리기 전에 산 일번지에는
통곡이 온다. 모두 함께
죽어버리자고 복어알을 구해 온
어버이는 술이 취해 뉘우치고
애비 없는 애를 밴 처녀는
산벼랑을 찾아가 몸을 던진다.
그리하여 산 일번지에 밤이 오면
대밋벌을 거쳐 온 강바람은
뒷산에 와 부딪쳐
모든 사람들의 울음이 되어 쏟아진다.     

산 1번지는 70년대의 도시 변두리의 팍팍한 삶을 그렸다. 신경림의 <농무> 시집에 실려 있는 이 시는 도시 빈민의 삶을 대변하지만, 그는 산업화의 발전에 모든 양보하고 후퇴만 계속하는 농촌의 피폐화에 더  깊은 애정을 보였다. 비료 값도 안 나오는 농사거리야 마누라에게 맡겨두고 학교 앞 술집에서 소주나 마시는 우리의 농촌 현실을 서정적 언어로 잘 보여준다.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에 모여 묵 내기 화투를 치던 우리의 삶이,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보아도 흥겹던 우리네의 삶이, 꽹과리를 앞장 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 붙어 악을 쓰는 건 조무래기들 뿐 이었던 우리들의 분 얼룩진 삶이 마침내 거덜 나고 만 것이었다.”  신경림의 <농무>를 그의 시를 인용해서 저자가 설명해 놓은 것이다. 

 

 

고은의 <머슴 대길이>

새터 관전에네 머슴 대길이는
상머슴으로
누룩 도야기 한 마리 번쩍 들어
도야지 우리에 넘겼지요
그야마로 도야지 멱 따는 소리까지도 후딱 넘겼지요
밥대 늦어도 투덜댈 줄 통 모르고
이른 아치 동네길 이슬도 털고
잘도 치워 훤히 가르마 났지요
그러나 낮보다 어둠에 빛나는 먹눈이었지요
머슴방 등잔불 아래
나는 대길이 아저씨한테 가갸거겨 배웠지요
그리하여 장화홍련정을 주룩주룩 비오듯 읽었지요
어린 아이 세상에 눈 떴지요
일제 36년 지나간 뒤 가갸거겨 아는 놈은 나밖에 없었지요

대길이 아저씨더러는
주인도 동네 어른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지요
살구꽃 핀 마을 뒷산에 올라가서
홑적삼 큰 아기 따위에는 눈요기도 안하고
지게 작대기 뉘어 놓고 먼데 바다를 바라보았지요
나도 따라 바라보았지요
우르르르 달겨 가는 바다 울음소리 들었지요
(중략)

대길이 아저씨
그는 나에게 불빛이었지요
자다 깨어도 그대로 켜져서 밤새우는 불빛이었지요

 

 


“시가 따듯한 맛이 난다. 힘세고 사람 좋고 생각이 깊으며 이웃을 감싸 안는 사람으로 머슴 대길이를 구술해 놓았기 때문이다.”(224쪽)
“독자는 역사의 물급이에 걸려 있는 머슴 대길이를 만나게 된다.”(225쪽) 의식 있는 머슴 대길이는 왜 머슴을 살면서 나에게 ‘장화홍련전’읽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가.  일제의 압박을 피해서 숨어든 지식이든가, 아니면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 지명 수배되어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쩐지 역사의 주요 활동을 한 인물로 자꾸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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