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지나간다
지셴린 지음, 허유영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지난여름 아래와 같은 이유로 읽게 되었다.
 
 요즈음 사무실 내에서 막말하는 직장 동료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달래도 보았고, 하소연 섞인 부탁도 여러 번 했지만 소용이 없다. 젊은 동료들 앞에서도 같은 연배의 이름을 자기네 개 이름 부르듯이 부르고 근거 없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지껄여 댄다.

  ‘뭇사람들의 말이 쇠도 녹인다.’(衆口鑠金) 는 말이 있듯이, 농담 같은 말도 반복되다 보면, 괜한 사람에게 본인이 원치 않는 이미지를 덥혀 씌울 수가 있다.

   다 내 잘못이다. 그에게 나를 너무 오픈 시키었다. 말조심하고 쉽게 접근을 허용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무시하지도 못하면서 너무 쉽게 나를 열었다. 그의 전술에 말려들었다.

  사무실에 들어가기가 싫다. 위기이다. 계속 생각이 떠오른다. 이 자를 어떻게 할 까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다 무순 일 때문에 읽다가 그만둔 지셴린의 『다 지나간다』가 생각이 났다. 그래서 천신만고 끝에 이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그의 프로필을 보니, 아주 오래 전 읽은 『우붕잡억』도 이 작가의 저작이다.  뜻밖이다.  그 책에 대한 기억은 얼마 없다.  중국 문화혁명 때 ‘하방’이라는 고통스러운 광풍을 겪은 저자의 자서전 같은 내용이다.   갑작스런 동기로 이 책『다 지나간다』를 읽으려고 시작했을 때, 공교롭게도  지셴린이 이틀 전에 사망하였다고 보도 한다. (98세)

          
  * 가고 싶지 않은 길이지만 가야만 한다면 울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히려 웃으며 가는 것이 자신에게 더 좋지 않겠는가? (17쪽)
  하지만 사람은 논리적일 뿐만 아니라 감정을 지닌 동물이다. 머리로는 받아들여도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가 많다. 또 사람의 감정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자신의 인생길을 ‘웃으며 간다’고  마음 깊이 받아들이려면 긴 시간 동안의 훈련과 수양이 필요하다. ⇒  공감이 간다.  잘 알면서도 실행이 쉽지 않은 것이 또한 인생이다. 광고 카피에 이런 말도 있지 않는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 생과 사도 시간의 범주에 속한다. 대부분 생과 사를 완전히 대립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고대의 도가에서는 “만물은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다”고 단정하고, 생과 사를 변증적으로 연결해, 태어나면 곧 죽는다는 관계를 정확하게 지적해냈다. 탁상시계의 초침이 한 번씩 뛸 때마다 나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조금씩 자라고, 또 동시에 그만큼 죽음에 가까워진다. (21쪽) ⇒  그렇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고령이고, 온갖 학문과 지혜를 겸비했다고 하더라도 질병과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찾지 않는가? 80세가 넘은 고령의 부친을 모신 한 동료가 전하는 말은 나를 혼동 시킨다. 병원에서 퇴원하라고 해도, 동료 부친이 울면서 집에 가면 죽는다고 퇴원을 급구 만류한다고 한다.  아무리 고령이라도 죽음은 불랙 홀이고 두려움의 대상이다.

* 우리의 인생이 완전하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 ‘누구에게나 읽기 힘든 경전은 있다.“ ”불완전한 것이 비로소 인생이다.“ (32쪽)  ⇒  자기만 잘 났다고 날뛰는 자도 인간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는 법, 겸손해야하고 남의 허물을 덮어주고 한없이 관용과 너그러워야만 한다.

* 행운이 찾아와도 불행을 생각하며 득의양양하지 않고, 불행을 겪어도 행운을
떠올리며 심하게 좌절하지 않아야 한다.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오래 사는 길이다.  행과 불행은 언뜻 보면 대립적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으나 이 두 가지가 서로 의존적이며 사실은 똑같다고 할 수도 있다.  노자가 말하길 “화의 곁에 복이 기대어 있고, 복의 곁에 화가 엎드려 있다. 누가 그 끝을 알겠는가? 그 바름이 없으니”(행운과 불행의 변증법적 관계) (34쪽)  ⇒ 인간만사 塞翁之馬요, 사람 팔자 시간문제라고 하지 않았는가. 즉 塞翁禍福이라는 말이 딱 맞는 말이다.

* 나는 “천재는 70퍼센트의 근면과 20-30퍼센트의 재능으로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좀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천부적인 소질 + 근면 + 기회 = 성공’⇒ “천재는 99퍼센트의 근면”에서 많이 현실화 되었지만, 나는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센리의 말에서 근면과 재능을 바꾸어야 된다고 본다.

* ‘知足常樂’즉 ‘분수를 알고 지켜 항상 즐겁게 산다’는 뜻이다. ‘백조를 잡아먹고 싶어 하는 두꺼비’처럼 늘 대단한 것을 손에 넣으려 한다. 자기 분수에 만족하자.  ⇒ 安分知足하라는 말인데, 이 역시 인간이기에 잘 안 된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으니, 미망에 쌓여 죽음의 늪인 줄 모르고 무조건 들이댄다.   

*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 천재지변이나 의외의 사고 같은 수동적인 스트레스는 예측할 수가 없으니 기우 따위는 버리고 그저 태연자약하게 살면 된다. 반면 능동적인 스트레스는 자기 자신에게서 시작되는 것으로 ‘불평하지 않고 투덜대지 않는다면 자기 자신에 의한 스트레스를 없앨 수 있다.’(54쪽) ⇒ 나는 무종교인 이지만, 착실히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잘 극복한다. 신이 주신 시련이라고 알고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 “커다란 조화의 물결 속에서 / 기뻐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게나.
끝내야 할 곳에서 끝내버리고 / 다시는 혼자 깊이 생각 마시게.” 도연명 <신석>
‘죽을 때가 되면 죽으면 그만이니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인생 백 년 사는 동안 / 하루하루가 작은 문제들의 연속이었네.
제일 좋은 방법은 내버려두는 것. / 그저 가을바람 불어 귓가를 스칠 때까지 기다리세.“ 지센린 ⇒ 몇 십년 우여곡절을 겪은 지센린도 아흔 살이 넘어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하니, ‘끝내는 것’은 결코 쉬은 일이 아니다.(56쪽)

* “내일이면 또 오늘을 그리워하리” 현재의 생활이 평범하다고 생각하는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가? 지금의 ‘현재’도 몇 년이 지나면 ‘옛날’이 될 것이니, 그때 가서 또 지금을 그리워하지 않을까? (59쪽)

* 문화대혁명 중에는 ‘염라대왕’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억울하게 모함을 당하고, 말도 못하는 잔혹한 고통을 견뎌내야 했다. 牛棚에서 석방된 후로 접촉해서는 안 되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잘 나가던 때 내 앞에서 굽실거리던 사람도 못 본 척 지나가버리는 수모를 겪는 ‘非 인간’으로 철저히 소외된 삶을 살아야 했다. (요약) 난 날 힘들게 한 그 사람들을 (알 때렸던 사람까지 포함) 원망하지 않는다. 내가 그들의 입장이었더라고 그들보다 더 잘 행동했을 거라고 장담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67쪽) ⇒ 인간의 삶에는 누구나 浮沈이 있는 법 참고 기다리면 다 지나간다.

*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일, 독서 ⇒ 지 셴린의 독서론은 안 읽어도 무방하리 만큼 평범하다.

* 작자가 가장 좋아하는 책들 중에서 사마천의 <<사기>>등 있는데, 눈에 띄는 것이 내가 읽다가 던져 버린 조설근의 <<홍루몽>>이다. 이 책은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문맥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지 셴린은 내가 힘들게 여겼던 부분을 달리 말하고 있다. “수없이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짧은 몇 마디만으로도 생명을 불어넣고,영원히 잊지 못할 인상을 남긴다.” 는 평가와 함께 “영롱하게 빛나는 진주 같다." 로 극찬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홍루몽>>에 도전해 보아야 하나 망설여 진다.(126쪽)

* ‘접근해서는 안 되는 사람’으로 낙인찍혀 우붕에 수감됐을 땐 철저히 외톨이로 지냈지만, 그 대신 <<라마야나>>를 완역했다. ⇒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킨 경우이다. 지치고 힘들 때, 상실감이 시도 때도 없이 엄습할 때 책을 읽자. 읽어야 이긴다. ‘讀萬卷書 破萬里波’(만권의 독서를 통해 온갖 어려움을 이겨낸다.) ‘讀萬卷書 行萬里路 만권의 책을 읽어 만리의 길을 여행하는  속에 인생대답이 들어 있다.)

* 지 셴린이 한 때 말로 표현 못할 정도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시운과 복도 많이 따랐다고 본다. 우선 그는 30세 젊은 나이에 베이징 대학 교수로 임명되어 잘나갔다. 지금은 어림도 없지 않은가. 겹 학위와 뛰어난 업적이 있는 젊은 교수들이  기득권에 밀려 보따리 장사로 전전한다고 한다. 또한 그는 98세를 살았다. 오랫동안 존경받는 교수로서, 泰斗요 국보 소리를 들을 정도로 명예를 거머쥐었다. 어디 그게 인위적으로 될 일인가. 이 책으로 볼 때, 평소의 그의 삶은 희로애락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달관한 성격으로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을 것이다. 또한 섭생에 유의하며 건강도 챙겼으리라.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타고난 유전자의 영향이 컸으리라.

* 건강 비결은 ‘대범하게 생각는 것’이다. 그러나 실천하기가 어렵다. 늘 옹졸하게 작은 일에 연연하고 명리를 손에 넣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명리가 사람을 옭아매는 멍에와 올가미가 되었다.186  ⇒ 누구에게나 욕망은 있다. 그러나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천하를 호령하는 황제와 독재자도 ‘세상사 십중팔구가 여의치 않았다.’ 잊고 기다려라. 다 지나간다.     
 

 * 죽음에 대하여. 도연명 <신석>
늙으나 젊으나 죽기는 매한가지 / 어짊과 어리석음은 가늠할 수 없네.
취하면 잊을 수 있다 하나 / 오히려 늙음을 재촉하는 것!
선한 일을 이루면 기쁘다 하나 / 누가 있어 그대를 알 것인가.
너무 깊게 생각하면 도리어 삶이 다치게 되니/ 마땅히 대자연의 운에 맡겨두어야지.
커다란 조화의 물결 속에서 / 기뻐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게나.
끝내야 할 곳에서 끝내버리고 / 다시는 혼자 깊이 상각 마시게.216

⇒ 이 책에서 죽음에 대한 글이 많이 나온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머리 위에 다모클레스의 검을 걸어 놓은 채 살고 있다고 한다.  한 사람의 생사를 놓고 너무 깊이 고민할 필요는 없다.’라고 강조 한다. 강한 긍정은 부정이 존재하듯이 이 노학자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쉽게 떨쳐 버릴 수 없었나 보다. 인간이기에. 삶 자체가 부조리하고 생로병사가 다 하늘의 뜻이거늘. 너무 집착하지도 소홀히 하지도 마라. 적당히 살아라. 

- 거칠고 변화 많은 세상에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 걱정할 것이 없으리.

- 슬픔도 고통도 한순간,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그러나 삶은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어제도 내일도 아닌 바로 오늘을 사는 것. 하루하루를 매만지며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고통스러워하던 오늘은 바로 어제가 되어 등 뒤에 서있게 된다.


셸리의 말처럼 “겨울이 왔다면 봄 또한 멀지 않다”고. “겨울이라 잎사귀는 모두 떨어졌지만, 새 움이 나뭇가지 안에 잔뜩 웅크린 채 봄날의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아흔아홉을 바라보고 있는 나도, 당신도 봄날의 꿈을 꾸자고 말이다.


- 쉽게 득의양양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 것. (요즘 감정기복이 스스로 생각해도 심한 것 같아서 마음에 새겨야 할 것 같다)
- 세상은 한 결 같이 냉담한 것이니 섣불리 원망하기 전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고 생각해볼 것. (역지사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더니 또 듣고야 말았다..ㅋ)
- 참는 것이 가장 큰 미덕이다. (참기 힘들 땐 어찌해야 할까. 아! 갑갑한지고..)
 - 아늑함을 만들 것. (아무리 생각해도 도망칠 구석을 만들라는 것 같다..ㅋㅋ)
- 자투리 시간의 중요성, 시간은 생명이다. (시간도 저축이 되면 참 좋을텐데..^^)
- 쓸데없이 말을 많이 하지 않도록 할 것. (말 많은 인간을 싫어하면서 떠벌떠벌대지 말자..ㅋㅋ)
- 대접 받고 싶은 욕심을 버릴 것. (이건 솔직히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좀 듣고 실천해줬으면 한다.. 아.. 꼴뵈기 싫은 인간들이 생각났다.. -_-)
- 매사에 처음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할 것. (맞다.. 나도 한 때는 그랬었지..)

[마광수의 馬Q정전] 삶을 비관하세요, 맘이 편해져요. 마광수 연세대 교수
            (어느 신문기사 인용. 남다른 삶의 지혜)

    인생을 살아나가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낙관적인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과 비관적인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이 두 방법 가운데 비관적인 인생관 쪽을 택하는 편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말을 듣고 의아해할 것이다. 요즘은 누구나 긍정적인 사고, 또는 낙관적 희망 같은 것을 강조하며 소위 '마인드 컨트롤(mind control)'에 의한 운명 개척법 같은 것이 많이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인생이란 원래부터 부조리한 것이고 생로병사의 고통으로 점철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억지로 긍정적인 인생관을 만들어봤댔자 결국 더 큰 절망과 환멸을 가져다줄 뿐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나는 실존주의자들의 인생관이나 석가의 인생관을 나의 인생관으로 채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나는 다음과 같은 비유를 자주 든다. 즉, "배에 잔뜩 힘을 주고 있다가 한 대 얻어맞는 것이 훨씬 덜 아프다"고 말이다.

권투 시합을 보면 복부를 겨냥하고 때리는 경우가 많다. 나 같으면 살짝 한 대 얻어맞기만 해도 금방 고꾸라져버릴 것 같은데 권투 선수들은 수없이 얻어맞고도 끄떡없다. 그들이 긴 연습기간을 통해서 맞는 훈련이 되었고 또 미리부터 얻어맞을 것을 예상하여 배에 잔뜩 힘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배에다 전혀 힘을 주지 않고 있는 상태는 곧 낙관적인 인생관을 견지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과 같다. 반대로 배에다가 잔뜩 힘을 주고 있는 상태는 비관적인 인생관을 견지하고 살아가는 것과 흡사하다.

인생은 결코 노력에 정비례하거나 우리의 계산대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다. 좋다는 보약 다 먹어보고 소위 무공해 식품으로만 이루어진 식단으로 식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자동차에 치여 죽을 수도 있다.

1차 세계대전 직후의 독일에서 있었던 일이다. 인플레가 너무 극심하여 화장지로 밑을 닦는 것보다 지폐로 밑을 닦는 것이 더 싸게 먹힐 정도였다고 한다. 어떤 형제가 있었는데 형은 열심히 저금을 했고 동생은 열심히 맥주만 마셨다.

그런데 인플레 때문에 열심히 저금한 사람의 돈은 휴지 조각이 돼버렸고 열심히 맥주만 마신 사람은 나중에 그 빈병들을 팔고 보니까 저금한 사람이 모은 돈보다 훨씬 많은 액수의 돈이 되더라는 것이다.

그만큼이나 인생은 불안한 것이고, 종잡을 수 없는 것이고, 예측 불허의 난관이나 행운들이 중첩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런 비유를 들었다고 해서 무조건 놀기만 하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미래에 대한 과도한 기대나 희망을 억제해야 한다는 얘기다. 요즘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각종 우울증이나 자폐증 등은 모두 다 '급격한 절망'에서 온다.

과도한 기대는 반드시 과도한 실망과 낙담을 불러일으키고 '시큰둥한 기대'는 오히려 의외의 좋은 결말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비관적 인생관이 훨씬 더 낫다고 보는 것이다.

석가는 인간의 모든 고통은 욕망에서 온다고 가르쳤는데, 만약에 욕망을 완전히 없애버릴 수만 있다면 열반의 세계가 열린다고 했다. 예수도 '마음의 가난한 자'가 복을 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욕망을 완전히 없애기란 우리 같은 범인(凡人)으로서는 불가능한 노릇이다. 그러므로 욕망을 점점 줄여나가는 편이 아주 없애려고 애쓰는 것보다 낫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인간의 행복은 다음과 같은 등식으로 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행복〓성취/욕망

사람들은 분모인 '욕망'을 줄여나가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분자인 '성취'를 늘려나가려고만 애쓴다. 하지만 분수(分數) 전체의 값으로 볼 때, 분모를 줄여나가는 것이나 분자를 늘려나가는 것이나 그 결과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분모를 줄여나가도록 애써 보라고 권하고 싶다.

즉, 비관적 인생관을 가지고 별 희망을 품지 않고 살아간다면, 오히려 의외의 세속적 행복이 따라와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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