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는 여자 - 떠남과 돌아옴, 출장길에서 마주친 책이야기
성수선 지음 / 엘도라도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다. 우선 국내가 아닌, 세계여행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여행이 아니고 출장이라도 좋다.  그런 여건과 여유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에 찌들려 하루하루를 연명하다시피 하는 나에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런데 자주 가면 그것도 싫증이 나려나.  다음 선망의 대상은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이다. 이런 나의 바람을 만족시키는 자가 이 책의 저자 성수선이다. 한참 연하이지만, 그의 직장 생활이 부럽고 그의 능력을 존중하고 싶다.  


  ‘책에 밑줄 긋는, 책 읽는’으로 시작하는 제목의 책이 많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제목이 약간 마음이 안 들기는 한다. ‘외국 출장길에 만나는 책’ ‘공항에서 책 읽는 여자’ ‘하늘에서 읽고 지상에서 쓰다’등은 어떠한가.  


<돈가스의 탄생>
“한 모임에서 순대를 먹다가 눈물 흘리는 여자를 본적이 있다. 취하지도 않았는데 커다란 눈에 그렁그렁 맺혀 있던 눈물이 뚝 흘러내렸다. 당황한 사람들이 왜 그러느냐고 묻자 “너무 맛있어서”라고 대답했다.“(21쪽) 정말 울고 싶을 정도로 맛있는 음식이 있을까. 의문이다. 내가 가장 그 중 났다고 여기는 음식은 삼겹살에 소주 정도이다. 남과 같이 먹으니 할 수 없이 먹지, 눈물이 날 정도의 음식은 경험해 보지 않았다.   “내가 돈가스를 먹다 목이 멘 것처럼 그녀도 순대를 먹다가 누군가 떠올렸을 것이다.”(21쪽) 이런 이유 때문인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 직장 식당에서 나오는 느끼한 돈가스이다. 전에 있던 식당 돈가스는 몰골 말고기로 만들었는지 엄청나게 질겼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저자의 돈가스에 대한 묘사는 정말 일본 가서 먹어 싶을 정도로 리얼하다. 돈가스의 유래도 재미있고 입에 침이 돈다.  

<러브레터>
“ 이 책이 수록된 <철도원>을 읽다가 그만 반해버렸다. 아시다 지로를 알게 된 건 영화<파이란>을 보고 나서였다. 장바이즈(장백지)가 열연한, 영화<파이란>의 원작이 아사다 지로의 <러브레터>이기 때문이었다.”(22쪽) 나도 아사다 지로가 좋아서, <프리즌 호텔>, <창궁의 묘성>,<파리로 가다>등 주로 두 세권씩의 그의 책일 읽었다.  몰락한 집안에서 태어나, 한 때는 야쿠자로 떠돌다 작가가 된 아사다 지로는 주로 따뜻한 인간성을 추구하는 소설을 쓴다.  그의 책에 등장하는 무지한 깡패도 ‘벼가 서로 기대어’ 살아가듯이 삭막하지 않고 유머가 있고 친근함이 있다.    

<당신의 나무>, <밤이여, 나뉘어라>
“수선 씨는 출장을 자주 다니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새로운 도시에 갈 기회도 많고 보는 게 많잖아요. 배경을 살려서 소설 쓰는 연습을 해보세요. 김영하의 <당신의 나무>나 정미경의 <밤이여, 나뉘어라>처럼요. 비행기에서 <당신의 나무>를 한 번  필사해보세요.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소설을 배우러 다닐 때 선생님이 해준 말이다. (109쪽) 그대로 했다고 한다.  필사는 모사라고도 하는데 남의 작품을 그대로 모방해 보는 것이다. 저자는 워드도 아니고 볼펜으로 꾹꾹 눌러 수 시간을 필사했다고 한다.   전에도 글쓰기를 잘하려면 이태준의 <문장 강화> 등을 모사하라는 말 이 있었다.  황석영도 그렇고 소설가들이 문학을 하기 위해 제법 이 모사의 방법을 쓴다고 한다.

 

<수선화에게>                 정 호 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가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준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238쪽)

 외로워도 죽지는 않으니까, 외롭다는 이유만으로 사랑에 빠지거나 정신을 분산시키기 위해 쓸데없는 짓을 하진 말자. 그냥 외롭고 말자. 어차피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니까.
  
 글이 사고의 산물이라 해도 어느 정도는 작가 자신의 체험이 중요하다. 쓰는 자의 관념 속에서만 만들어 낸 글은 공허하다. 성수선은 세계를 여행하면서 겪은 색다른 체험을 독서일기에  내밀히 반영시킨다.  그것은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다른 책읽기와 차별화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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