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코레아니쿠스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진중권의 군더더기 없는 촌철살인 시사 코멘트는, 우리의 가슴을 후련하게도 하지만 글도 그에 못지않게 잘 쓴다. 과거에 그의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읽고, 한동안 그를 잊고 지냈는데 호모 학명을 제목으로 한 이 책이 내게 다가왔다.  “글 싸움에서 시사평론가 진중권 씨에게 이길 사람이 없다면, 말싸움에서 유시민 씨에게 이길 사람은 없어 보인다.”(195쪽)라는 말이 인터넷에 떠돈다더니 명불허전이라고 딱 맞는 말이다.

 문화 일류학적이고 글쓰기라고 할까, 각각의 소제목 아래 우리‘호모 코레아니쿠스’의 특징을 잘 그려냈다. 저자는 현미경 같은 눈으로 보고, 다양한 지식으로 무장한 그의 격조 있는 식견으로 날카롭게 해부해 나갔다. 보면서도 느끼지 못하고, 느끼면서도 명료한 논리로 서술하지 못하는 나에게는 그 울림이 컸다. 마치 그의 글을 읽으며 ‘그래 맞아 그랬었지 하고’한 박자 늦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나의 부족함을, 이 책을 읽는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얼마 전 관심 있게 보지 않았지만 희대의 사기꾼 황우석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높은 사회적 지위에 있는 인간들이 더 뻔뻔스러운 경우를 자주 보아왔지만 그의 잘생긴 면상을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났다.

  지난 1월 무슨 공채 시험 출제 위원으로 호텔에 감금된 적이 있었다. 이러저런 얘기 끝에, 다른 분야 출제위원으로 온 50대 중반의 남자가 황우석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나에게 매우 안타까운 표정으로 황을 두둔했다. 그리고 설득했다. 혹시 세간에서 말하는 지식인 항빠인가 의심했다.

 그는 서울대 농대에 자기 동서가 교수라는 전제를 깔고, 소위 황 죽이기 음모론을 제기했다.  동서에게 본인이 직접 들었다고 했다. 현재 황의 고난이 미즈메디가 황의 줄기 세포를 빼앗으려고 꾸민 해프닝이라는 것이다. 주변 지식이 없었던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연출과 인터뷰의 달인이요. 매스컴을 아는 그 인간이 그게 사실이라면 가만히 있지 않은 것이라는 논리를 들이댔었다.

  이 책의 다음 부분을 보고 그가 그렇게 이야기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상상력을 배격하라.’에서 “황우석 지지자들의 왕성한 상상력. 누군가 줄기세포 기술을 빼앗아가기 위해 의도적으로 황 박사를 궁지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미즈메디 음모론, 서울대 음모론에서 CIA 음모론과 유대인 음모론을 거쳐, 프리메이슨 음모론까지 황 박사를 옹호하는 상상력은 참으로 풍부하다.”(107쪽)

   별 근거 없이, 자기가 한 때 믿었던 것에 대해 사고의 유연성을 가지지 못하고 집착하는 사람이 있다.  진중권은 몇 가지 분야에서 황우석 현상을 인용하는데 그 상황이 리얼하고 생생하다. 황이 한창 주가를 날리던 그해 겨울에, 직장 연수로 무창포의 한 여관방에서 황량한 바다를 바라보며, 동료들과 그에 대한 토론을 한 적이 있다. TV에서는 황이 수염이 덥수룩하니 여윈 얼굴로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을 비추어 주고 있었다.   
 
  ‘저 인간 말 못할 뭔가가 있다. 한 때 나도 황빠였는 데 씁쓸하다.’ 의 요지의 말을 내가 했었다.  옆의 동료의 숨소리가 거치어 졌다. 막무가내로, 황의 연구업적이라는 것을 들먹이며 나의 황에 대한 시니컬한 평가를 비판했다. 국력이니, 어쩌니, 우리나라는 잘 되는 사람을 못 본다는 등, 거의 인신공격에 가까운 말을 해댔다.  

   그 날 야간 근무여서 사무실에 있는데, YTN의 뉴스에서 황을 지지하는 논리로 뉴스가 나왔다. 김선종 연구원이 나오고, 그 방송의 미국 현지 취재로 황의 줄기세포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잘못 생각한 건가 의문이 들었다. 부정적 시각의 보도를 한 mbc가 몰리고 있었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조선일보의 신경무가 하는 화가가 그린 그림처럼 mbc가 빨갱이 방송으로 매도되고 있었다. 그런데 신화백은 조선의 편집 방향과 딱 맞는 화백이다.

  사필귀정이라는 진부한 말을 들지 않더라도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 얼마 있다가 mbc 후속 취재로 황의 최대 사기극이 백일하(白日下)에 들어나게 되었다. 한 동안 버티던 그가 기자회견을 하였다. “ 사과 기자회견을 할 때 연구원들을 병풍처럼 두른 것도 괜찮았다.” “나는 괜찮은데 이 젊은 연구원들의 미래는 밟지 말아달라.”(108쪽)

  “그 연출 덕분에 얼마나 많은 국민이 그의 언어적 호소에 시각적으로 공감했던가. 또 ‘연구 때문에 아내와 헤어지고’라며 순간적으로 살짝 눈물을 핑 돌릴 때, 얼마나 많은 국민이 그를 따라 울었던가.”(108쪽)

 이 책을 보면서 몇 년 전의 사건을 생각해 보았다. 진중권은 예리하게 보고 대구와 비유를 가미해서 탄력적인 문장으로 졸고 있는 우리를 ‘허걱’하게 만드는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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