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열전 上 - 사람에게 비추어 시대를 말하다, 고전을 넘어선 고전 강의
사마천 지음, 이인호 옮김 / 천지인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사마천의 <사기 열전>이 불후(不朽)의 명작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사실이다. 나도 한 때는 <사기 열전>에 몰두한 적이 있었다.  특히 <열전>은 몇 번씩 독회를 했고,  그 글의 숨은 뜻을 알기에 노력 했었다. 또한 시중에 나와 있는 여러 번역본을 사서 모아 소중하게 간직하며 애지중지 했었다.

  당시에 <사기열전>을 읽으면서, 얼마나 사마천의 지혜를 통찰하고 내면화 할 수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내용도 많이 잊었고, 이에 관련된 책도 어저께 간신히 다 찾아내 먼지를 털 수 가 있었다. 그렇지만 사마천 자신이 혼신의 힘으로 영혼을 불어 넣어 탄생시킨 인물들은 다시 그 책을 뒤적이는 지금 이 순간에, 생생하게 나에게 걸어 나오고 있다.  그들은 별 볼일 없는 신분의 거지, 도둑에서 부터 높게는 그 시대를 풍미 했었던 재상들 까지 누구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자들이다. 

  내 기억으로는, 90년대 말 부총리를 지낸 조순이 <사기열전>을 이렇게 극찬했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략“ 친구도 여러 명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본인이 위기에 처했을 때 도와 줄 수 있는 관중과 포숙아 같은 이는 드물다. 책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 중에서 우리에게 정말로 가치 있고 우리의 인생을 조망할 수 있는 것은 몇 권 안 된다.  그 몇 권 안 되는 책 중의 하나가 바로 <사기열전> 이다.”  라는 취지의 말을 했었다.

 여러 책을 헤매다가 결국 고전으로 돌아온다는 말이 있다. 많은 책을 읽지만 고전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뜻이리라. 이 말을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고개가 끄덕여 진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30년이 지나지 않은 책을 읽지도 말라고 했다. 오랜 세월 검증을 받은 책을 읽으라는 뜻이리라. 우리 모두, 늘 새로운 얼굴로 다가오는 고전을 즐거운 마음으로 맞이하자. 

 오늘 시내의 서점에 갔다가 78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인호 교수의 신간 <사기열전>을 발견했다.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해 보니 아직 (상) 밖에 출판되지 않았다.  이 책의 표지를 자세히 보니 상ㆍ중ㆍ하로 계속 출간한다고 고지되어 있었다.

 허겁지겁 앞부분을 대충 읽어보니, 이 책의 구성은 독특했다. 각 인물에 대한 분류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큰 틀을 짰다. 첫 번째는 각 열전의 취지와 주제를 해설하고, 두 번째는 각 열전의 내용을 명료하게 축약했다. 마지막으로 ‘고전을 넘어서 고전 읽기’에서 각 열전에 담긴 풍부한 행간의 의미를 다각도로 해설하고 있다. 아마도 이 세 번째 부분이 이 책의 압권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인호 교수의 프로필을 보니 이 분의 삶 자체가 사마천이었다.  수십 년간 『사기』 연구에 몰두했고, 석ㆍ박사 학위도 사마천 연구로, 오랜 세월을 거쳐 대만에서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흔할 말로 『사기』의 달인이라고 칭하고 싶다.

   첫 장을 훑어보았을 때, 문장도 수려하고 사마천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잘 집고 있었다.  ‘사마천이 왜 이렇게 묘사했을까.’라고 의문을 가질 만한 부분을 역자가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뒷부분에서 아주 명료하게 해설하여 놓았다. 아니 이 책의 표지에는 역자가 아니라 ‘새로 씀’으로 되어 있었다. 그만큼 자신감이 있고, 창의적인 의미의 확장이 가미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먼저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쓴 독자가 있는지  인터넷 서점을 검색해 보니 딱 한 분이 있었다.  이 리뷰를 쓴 분은 『사기열전』을 엄청 좋아해서, 6질의 각각 다른 출판사의 책을 모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모은 책을 이제 다 처분해 버린다고 한다. 왜? 이 책이 나왔기 때문에 다른 판본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 책에 매료되었다는 강력한 어필이었다.

 허나 내가 가장 선호하는 <사기열전>은 건양대 김원중 교수의 것이었다. 김교수의 이 책은 처음에 을유문화사에서 나왔다가, 근래에 민음사에서 상ㆍ중ㆍ하로 다시 증보판으로 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김 교수의 책도 재판을 몇 번을 갈아치운 전력이 있는 인기 도서이다.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추천한 것을 비롯해서 각종 기관에서 선정도서로 인지도가 높다.

  김 교수의 ‘민음사’ 판이냐 이교수의 ‘천지인 ’판이냐. 어느 것이 사마천에 가장 가까게 다가 갈 수 있었을까.  이렇게 단순 비교해서 순위를 논하는 자체가 나의 무지의 소치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각기 번역한 분들의 열의와 인고의 산물이므로, 나름대로 각각의 가치와 의미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소개하고 있는 이교수의 <열전> 중, ‘백이열전’ 편에서  미묘한 해석의 이견(異見)을 제시했다. 일찍이 조선시대 성삼문이 처음으로 ‘백이열전’에 시비를 걸은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즉 그의 시조 종장에서“비록애 푸새엣것인들 긔 뉘 따헤 났다니.”라고 일갈하여, 자신의 절개와 의로움이 백이․ 숙제보다 우위에 있음을 만 천하에 알린 것이다.

  열전 원문, ‘義不食周粟’에서 ‘粟’의 해석 문제를 가지고, 이 교수는 다른 역자들을 힐책한다. “기존 『사기』 번역본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한문만 해독하면 번역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번역자들의 순진한 발상에 있다. 의욕과 사명감을 나무랄 바 없으나 의욕과 사명감만으로 번역이 온당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으랴.(중략) 번역이란 해독 능력을 기본으로 갖추어야 하고 , 무엇보다도 <사기>와 사마천에 관한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한 것이다.”(53쪽) 

원문의 이 ‘粟’을 각 어떻게 해석 했기에 문제인가. 이 교수는 이 ‘粟’자를 “주나라 치하에서 관직에 진출하여 복무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폭력으로 폭력을 제압한 주나라 무왕을 천자로 받들지 못하겠다는 뜻이다.”(52쪽)로 풀이한다.

 그렇다면 다른 책은 어떻게 했을까. 저자는 일일이 출판사 별로 실례를 들어 설명한다.  즉 요약하면  ‘민음사’, ‘ 까치 출판사’는 ‘곡식이나 양식’으로 그 중 집문당 번역 본 만이 이 교수와 비슷한 해석을 하였다 한다.  그는 집문당을 제외한 나머지 번역본은 온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소설에 가깝다”(53쪽)라고 강조 한다.

  글쎄다. 이에 ' 역자의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가 아닌 가' 하는 견해를 감히 제시해 본다.  넓게 보아서는 약간의 의역의 차이 만 존재할 뿐 동일한 뜻이라는 것이다. ‘粟’을 ‘곡식이나 양식’으로 번역한 것은 ‘채미’(采薇)와 균형과 조화를 맞추려 한 것이 아닌지. 즉 주나라에서 주는 양식을 거부하고 고사리만 캐서 먹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이인호) 주장하는 ‘주나라에서 복무하지 않겠다.’ 으로 보아야 된다는 주장도 주나라에서 복무하면 녹봉이 나오고 그것으로 생활하면 안 되는 것이니 마찬가지 아닌가.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 관련된 책은 다양한  방법으로 출간되고 있다. 회사 경영서부터 인간관계에 대한 응용까지 여러 각도에서 현대화하여 소개되고 있다. 그만큼 이 책의 울림이 크고 그림자가 길다는 뜻이라 본다. 다양한 판본을 비교해서 꼼꼼히 반복해서 읽어 보면, 삶의 지혜를 얻게 되고  그러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이 책을 강력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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