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생활백서 - 2006 제30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민음사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제목만 가지고 판단할 때, 수십 번 시도했지만 아직 취업을 못한 주인공의 분투기로 오해할 수 있다. 살기위해서, 다시 한 번 최후로 진검승부를 가리는 자리에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는 처절한 백수의 몸부림의 이야기로 짐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이런 예상과는 아주 다르게 전개된다.  책을 사랑하고, 소설 읽기를 지고지선으로 여기는 한 여자의 기록이다. 어찌 보면 ‘책읽기 관련’책을 위한 책으로 볼 수도 있다. 허나 시중의 그런 종류의 책과는 달리 서사가 있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청춘이 담담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차라리 이 책의 제목으로‘책만 읽는 여자’가 더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 서연이 책을 읽는 행위는 어떤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그녀의 삶 자체이다. 책을 통해서 소통하고 사랑하고 이별을 한다.  옛 사랑을 떠나보내기 위해서 책을 팔아 치우고, 절판된 책을 구하기 위해서 그 책을 소유한 낯선 남자를 만난다.

  이 소설을 위한 소설은 내용에 맞고 상황에 부합되는 여러 작품을 등장시킨다.  서연이 소설로 생각하고 소설로 해결하려 하듯이 그녀가 읽는 책도 소설만 읽는다고 말한다.  “내가 읽는 책의 대부분은 소설이다. 어쩌다가 시집이나 인문학이나 철학 책을 읽기도 하고, 병원이나 은행에서 기다리는 시간에는 잡지를 읽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언제나 소설만 읽고 있다.”(324쪽)

 그러나 서연은 어떠한 목적이나 수단을 위하여 읽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소설이 아무 것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녀는 무엇을 배우기 위하여 소설을 읽지 않는다. 또한 책을 통하여 연애하는 법을 배우는 등, 책이 배우는 수단으로 쓰임을 단호히 배격한다.

 그러면 왜 그녀는 소설만 읽는 것일까?  “소설에는 철학이고 있고 여행도 있고 인문학적 지식도 있고 과학도 있고 역사도 있고 우주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설에는 향상 사람이 있다. 나는 소설이 가진 포괄성과 유연성이 아주 마음에 든다. 가능하다면 나는 소설 같은 인간이 되고 싶다.”(325쪽)

 나는 서연의 이 말이 마음에 든다.  나도 좀처럼 인문학이나 다른 부류의 책을 소설만큼 많이 읽지 않는다. 무슨 성공담이니 처세에 관한 책은 더욱더 가까이 하기가 싫다. 소설에서도 얼마든지 여러 형태의 삶을 찾을 수가 있다. 누구는 말한다.  사람의 삶은 모두 소설 같을 수가 없다고.
그러면 서연의 이런 소설적 방법을 빌어 논박하고 싶다.  “나한테는 이미 익숙해진 읽기와 이해의 방식이 있다. 책을 읽듯 사람을 읽는다. 그는 한 번 읽는 걸로는 충분하지 않은 책이다. 처음 읽으면 이야기가 보이고, 두 번 읽으면 인물이 살아나고, 세 번 읽으면 배경이 그려지고, 네 번 읽으면 움직임이 읽히고, 다섯 번 읽으면 낱말 하나하나가 다르게 다가와서 세월을 두고두고 읽어야만 하는 책. 나는 그를 다시 읽게 될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 나에게 다른 건 몰라도 시간은 있다.”(327쪽)

   이 소설에서는 또 다른 여자의 소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한 서연의 친구 채린은 엄연히 유부녀이면서  또 다른 로맨스를 꿈꾼다. 도서 대여점을 겸한 채린의 비디오 가게에는 순정 만화와 로맨스 비디오로 가득 차 있다. 종종 채린은 그런 류의 비디와 책을 꿈꾸며 소녀 적이고 낭만적인 사람을 찾아 나선다. 

  채린이 자신만의 꿈꾸는 사랑을 찾아서 가정을 버리고 가출하듯이, 서연은 종교처럼 오로지 책을 읽는다.  “ 같은 페이지의 책도 저마다 다른 속도로 읽을 수밖에 없다. 때로는 빠르게, 그리고 원한다면 언제나 다시, 또 새롭게.  누구나 예수를 믿고 부처를 믿듯 나는 책을 믿는다.” (327쪽) 누구나의 삶이 같을 수 없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하나하나가 다른 듯이 누구나 같은 꿈을 꾸며 살 수 없다.

  우연히 어떤 다른 사람의 독서 리뷰를 들여다 볼 때가 있다. 어느 불로그에는 온통 인문 서적이나 재테크 관련 리뷰로 가득 차 있는 것을 종종 본다. 그 사람의 취향이나 어떤 목적이 있어서 그런 류의 책에 몰입하겠지만, 간혹 소설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그래야 폭 넓고 유연성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이야기 해 주고 싶다.


     인간은 살아 있기 때문에 집을 짓는다. 그러나 죽을 것을 알고 있기에 글을 쓴다. 인간은 무리를 짓는 습성이 있기에 모여서 산다. 인간은 무리를 짓는 습성이 있기에 모여서 산다. 그러나 혼자라는 것을 알기에 책을 읽는다. 독서는 인간에게 동반자가 되어준다. 하지만 그 자리는 다른 어떤 것을 대신하는 자리도, 그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다.  다니엘 페나크 『소설처럼』중에서

 코니 팔멘은 『자명한 이치』에서 ‘삶이 나를 필요로 했다. 내가 없으면 삶도 없다.’라고 썼다. 이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책이 나를 필요로 했다. 내가 없으면 책도 없다.’ 나에게 읽힘으로써 비로소 나의 인생에 온전히 자기 몫의 시간을 가지게 될 책들. 향기롭고 고약하고 나약하고 강하고 습하고 건조하고 슬프고 즐겁고 위태롭고 나른하고, 결국은 저마다의 거역할 수 없는 매력으로 나를 사로잡을 나의 책들. (324쪽)


   이 소설 속에서 소개된 책 목록

 태평양을 막는 방파제1.2  /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 김정란 옮김
 웬즈데이 / 에단 호크 지음 ; 오득주 옮김
   자명한 이치 / 코니 팔멘 지음 ; 이계숙 옮김
   연애소설 읽는 노인 /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 정창 옮김
   파타고니아 특급열차 /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 정창 옮김
   핫라인 /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 권미선 옮김
   지구끝의 사람들 /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 정창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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