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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지도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조구호 옮김 / 시공사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각종 북 사이트에서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를 소개할 때는 <뒤마클럽>, <플랑드 거장의 그림> 작가로 소개하고 있다. 소개된 책을 모두 읽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그의 대표 소설로 보인다. 우연한 기회에, 그의 <항해지도>를 읽게 되었다. 많은 독서가들이 이 책을 스릴러니, 해양소설이니 하는 말은 있지만 그렇게 쉽게 평가를 내릴 수 없다는 판단이 든다.
에멜란드 원석이 실렸던 침몰한 배, 글로리아를 찾아가는 과정은 스릴러라는 측면이 강하다. 허나 항해술과 배에 대한 현란한 전문적인 지식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보면 해양 소설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전직 선원인 코이와 해양 박물관 큐레이터 탕해르와의 미묘한 내적 갈등과 서로의 사랑 이야기가 이 책을 읽은 후 다른 메시지 보다 기억에 많이 남았다. 바다 속에 사장된 거액의 에메랄드 원석을 찾으려는 그들의 공통된 목적 외에도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며 채워가는 모습은 초기에 독자들을 안심시킨다.
대략 중반 부분까지는 코이와 탕헤르가 서로를 탐색하고 헤어졌다가 만나는 약간 밋밋한 과정이 반복된다. 또한 항해술에 대한 전문적인 용어를 통한 설명은 지루한 감이 들지도 모른다. 바다 속에 묻힌 배에 대한 정보를 얻는 과정도 개연성 있는 장치 없이 평면적 서술에 머물렀다. 항해지도의 해석에 대해 교수를 찾아가고 여러 각도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이 전혀 안 나오는 것이 아니지만 말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작가가 마치 해양 전문가라고 착각할 정도인 현란한 해양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은 이 소설을 신뢰하게 만들었다. 인간의 일확천금에 대한 욕망과 목숨을 건 치열한 경쟁, 그리고 재물에 대한 본능적 탐욕 저편에 흐르는 알 수 없는 허무가 그런대로 흥미로웠다. 또한 작가가 스페인 항구 도시에서 자라면서 습득한 그들의 문화를 고스란히 맛 볼 수 있었다.
“잘 들어 봐요. 데이 글로리아 호 역시 미스터리 투성이에요.”(113쪽) 의 표현처럼 이들의 보물찾기에 대한 욕망과 사랑은 역시 미스터리에 빠져 예상치 못한 반전을 맞이하게 된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본격 스릴러로 알고 이 소설에 접근하면 자못 실망할 수 있다. 고전의 형태를 띤 현대 소설이라고 규정하면 비슷한 평가가 될지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