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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 밤 내가 사는 아파트 앞 동에서 전날에도 여러 번 거쳐 들어 보았던 어린 아이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 들려온다. 간간히 물건이 박살나는 소리와 찌어지는 듯한 여자의 울음소리도 들리지만 아이의 비명 소리가 유난히 가슴에 들어온다. 반복되는 가정의 불화가 저 아이를 얼마나 불안하게하고 힘들게 할까 생각하니 잠이 싹 달아났다. 물론 어리기 때문에 쉽게 잊히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거듭되는 외부적 충격으로 정서 불안을 초래하고 나가서는 그 아이의 인격 형성에 상당한 부정적 영향은 상존하리라 생각한다.
나의 유년 시절, 우리 집안은 불화의 연속 있었다. 양반의 잔반이라고 당신 스스로 여기는, 지금 생각하면 얼치기 선비라고 생각되는 조부가 항상 문제였다. 결코 존경할 수 없었던 조부의 자기중심적 욕망은 항상 가정을 폭풍 속으로 몰아넣었다. 절제되지 않은 아집과 고집은 가족을 항상 고통스럽게 했다. 거기에다 선량하지만 끊고 맺음이 없는 부친은 조부에 눌려서 완전한 복종도 아니고 그렇다고 속 시원한 해결도 아닌 애매모호한 처신으로 가족간의 불화만 더 깊게 했다.
심윤경의 『아름다운 정원』에서도, 끊임없는 고부간의 갈등으로 어린 영혼에 상처를 받고 사는 주인공 ‘동구’가 있다. 개인적으로 판단할 때, 동구네 집의 불화는 할머니의 며느리에 대한 일방적인 폭력으로 야긴 된 문제라고 볼 수밖에 없다. 어떤 쪽으로든 하나라도 곪지 않고, 어느 정도의 갈등 없는 완전한 가정은 없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의 문제이다. 할머니의 심술에 가까운 가정 폭력은 도를 넘었다고 볼 수 있다. 어느 하루 편안할 날이 없었던 집안 어른들의 불화는 동구의 어린 영혼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는지 그는 난독증에 시달리게 된다. 못 읽고, 못 쓰며, 말을 더듬는 증상이다.
『달의 제단』에서 보여 주었던 작가의 아름다운 문체는 아직도 여운이 남아있다. 이 소설에서도 작가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자세로 어린 아이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안팎으로 가해지는 동구의 시련이 작가의 뛰어난 역량으로 아련한 연민과 가슴 조이는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또한 비틀리는 가정 사 뿐 만아니라 천진난만한 아이의 시선으로 그려낸 당시의 암울하고 처절했던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를 다시 복기할 수도 있다.
한 교사의 교육관이 어려운 처지에 놓인 아이를 (거칠게 표현하여) 죽이기도 하고 살릴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동구에게 박영은 선생은 구세주를 만난 것이나 다름없다. 난독증의 동구를 진단하고 교육시킨 이도 그 여자 선생이다. 아이들을 다 보낸 후 특별한 개인지도를 통하여 동구를 이끌어 간다. 서로 교감하고 불안정한 동구의 감성을 따스한 가슴으로 감싸 안으면서 눈물겨운 성과를 찾아 간다. 윽박지르고 억압하며, 아이들이 많다는 핑계로 무신경하게 하루하루 넘기는 것으로 교육을 마무리 하는 교사가 현실적으로 많은 현실에서 귀감이 될 수 있는 메시지다.
앞으로 심윤경의 책이 새로 나온다면 연일 제쳐두고 읽겠다. 왜냐하면 그녀의 글쓰기와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