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의 만감일기 - 나, 너, 우리, 그리고 경계를 넘어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노자의 일기 형식을 띤 수필을 읽었다. 항상 박노자를 대할 때 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그의 글은 참신하며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어색한 문장과 연결이 부자연스러운 곳도 간혹 보이지만, 대체로 설득력 있고 비교적 합당한 논거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그의 글은 정당하다. 그의 특이한 이력도 한 몫 하여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지만,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좌파 논객으로 그를 무시할 수 없을 만큼의 위치에 올라와 있다. 그만큼 그에 대해 호감을 가지는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그런 이유로 책을 냈다하면 사회 이론 서적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재판을 거듭하는 높은 성과를 거둔다. 

 박노자는 러시아에서 샹트페테르 부르크 대학에서 조선어학과를 전공하고, 1991년에 평양에서 1 년간 조선어 연수, 그리고 한국의 대학으로 와서 강사를 하며 귀화하였다. 지금은 노르웨이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 글은 자주 한국을 드나들고, 일본 등을 여행하면서 쓴 글로 알고 있다.

 ‘절망을 느끼는 순간’에서,  아직 한국의 아부 문화를 체득하지 못했는지 놀라움을 나타내고 절망하는 내용이 있다. 어느 대학에서 젊은 이사장 나리 출두에, 나이 많은 수위 아저씨는 승강기 버튼을 누르고 있고, 교수 및 대학원생이 이열종대로 머리를 조아리는 장면을 직접보고 쓴 글이다. 그 정도로 충격을 받다니 아직 그는 순수한 것이다.  우리 직장에서는 아직까지, 아부와 학연과 지연을 성실과 능력으로 극복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말인가.

 ‘자리가 사람을 명예롭게’에서 ‘순치(馴致)된 대중들’, 최근에 무식한 모씨가 촛불 시위자를 폄하한 말 ‘천민형 지식인’  ‘외물(外物)로부터 자유로운’ “나는 없어지고 외부의 ‘표준’욕망들이 그대로 내면에서 복제되고 만다.”가 눈에 들어오는 용어다.

 ‘등수 없는 학교의 추억’에서 구소련 학교를 다녔던 자신의 경험을 들어  지금의  한국 학생들을 보고 ‘그래도 내가 행복 했었구나’라고 생각했다니, 헐-
구소련 학교에서는 체벌이나 일률적인 전교 등수가 없고, 상위권도 모르고 졸업했다고 한다. 충격적이다.

 ‘경제력에 의한 강간’에서 삼성과 신영복의 거리두기는 무슨 소린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125쪽), 강만길의 ‘친일청산’ 수장 역할을 맡은 문제를 비판하려고 견강부회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다. 일제의 유산인 애국조회와 두발 규제는 없어져야 한다는 주장은 맞는 말이다. 그런데 애국조회는 없어지지 않았나.

그는 자기 몸 특화의 자유 즉 학교에서 머리 기르고 키스 정도는 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술자리에서, 지금도 우리 중ㆍ고교 학교에서 바리캉 들고 설치는 교사가 있다면, 당장 그만 두어야한다는 생각을 말을 했을 때이다. 참석자 가운데 인문계 고교에서 교사로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말을 안 들었으면 그러겠냐고 ‘바리캉 징벌’을 두둔해서 “차라리 체념하고 포기하라”라고 쏘아 붙인 적이 기억난다.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시민 단체에서 환경 운동가로 대중적 신선한 마일리지를 쌓은 최열이 현대 산업 사외 이사로 수 천 만원의 연봉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환장하겠다. ‘새들도 세상을 떠나는 구나.’의 황지우는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에 동참했다는 사실이, 결국 ‘황지우도 민주 세상을 떠나는 구나’을 외치게 한다. 본인이 여태까지 축적해온 상징자본을 삼성 ‘돈’으로 교환했다니.

그는 현재 직장이 없는 여성에게 육아 수당으로 500만원을 주는 복지의 천국 노르웨이에서 살고 있다. “우리 사회는 안타깝게도 개인 복지 사회가 아니다. 건설기업, 재벌 기업의 복지 사회다.”(152쪽)라면서 국가가 무엇을 해준다는 보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에서 정규직이 보장 되면 돌아온다고 한다.  뭘 돌아오나, 우리 대학의 고래 심줄보다도 더 탄탄한 파벌 구조를 어떻게 뚫겠다는 말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