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길의 객창감을 잊게 해준 책 (1.2)

남쪽으로 튀어! 1 ㅣ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주사 한 방 맞아’로 우리를 웃게 만들었던 오쿠다 히데오의『공중그네』를 읽고, 다시 그의 작품 『남쪽으로 튀어!』를 선택했다. 이 책을 출장 기간에 읽게 되었다. 지루하고 잔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출장이었지만, 오쿠다 히데오가 있어, 예년과 달리 즐거운 마음에 일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양주와 육포가 널려 있었지만 과감히 외면하고 이 책에 몰입했다. "남쪽으로 튀어"를  남쪽으로 가는 버스와 배에서 읽으니 그것도 그런대로 괜찮은 시츄에이션이었다. 직원들이 이런 상황에 무슨 책이냐고 하면서 끌어내어 술을 먹이려고 유혹했지만, 그리고 또 약간은 배의 스크루 소리가 나의 독서를 방해하려 하였지만, 호텔 이상으로 꾸며놓은 특실에서, 킥킥 웃으면서 이 책에 집중했다.

등장인물인 아들 지로의 시선으로 그리고 있는 이 소설에서, 아버지 ‘우에하가 이치로’는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성장 소설적  요소가 많이 가미된 작품이지만, 그렇게 일관성 있게 자신의 소신대로 살아가는 지로의 아버지의 삶이 나에게는 압권이었다.   운동권 과격파 출신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불태워 버리겠다?”라고 호언장담하는 그는, 호기심을 떠나 존경의 대상이었다.

우에하가 이치로는 학생 운동 시 ‘전설’같은 인물로 통했다. 이런 운동권 과격파 출신으로 지난한 삶을 살면서도, 아들의 수학여행 경비 등 거침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자신 있게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보기에 좋았다. 

 암울하고 막막했던 우리의 군사 독재 정권 시절에 민주화 투쟁으로 이름을 날리었던 소위 민주투사들을 요즘도 언론을 통해 만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연민을 한 몸에 받고 살았던 그 들은 정치권 등 곳곳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은 살아가면서 자기의 소신과 신념이 변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유연하게 이들을 평가하더라도 요즈음 나를 실망시키는 자들이 많다. 이들 중에는 정치권에 들어가서, 자기가 살아온 과정을 스스로 부정하는 삶을 사는 자들이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어느 특별한 이유 없이 극좌에서, 중도도 아닌 극우로 변신하여 떠들고 다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찌 그렇게 자신이 목숨을 걸고 지켜왔던 신념을 하루아침에 헌 신짝 버리듯이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무튼 부창부수라고, 우에하가 이치로의 운동권 동료이자 아내인 사쿠라도 남편의 삶에 동조한다. 그녀가 젊었을 때 가졌던 일관된 가치관으로 거리낌 없이 사회의 악과 싸워간다. 그래서 비록 가난하지만 부유한 친정의 도움을 거절하고 거칠 것 없는 남쪽으로 남편과 같이 튀는 것이다.

오키나와 끝 어딘가 위치한 고향 남쪽 그 섬 ‘이리오코테’는 그들의 이상향을 실천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일 것이다. 그런데 거기 가서도 투쟁은 계속된다. 자연을 지키려는 힘없는 한 가족의 눈물의 저항은 슬프고 처절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