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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캄보디아, 불멸의 앙코르와트
이지상 지음 / 북하우스 / 2007년 1월
평점 :
이지상의 『호찌민과 시클로』를 읽고, 이지상의 여행기를 모두 보려고 작정을 하였다. 마침 캄보디아 여행 일정이 잡혀있어서 앙코르 왓 관련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책 절반과 이우상의『아코르 와트의 모든 것』의 절반을 읽고 여행길에 올랐다.
다른 이야기지만 캄보디아를 가기 전에 하노이의 하롱베이를 먼저 들르게 되었다. 우선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공항에 내려 보니, 규모로 가치를 따질 수는 없겠지만, 청주 공항만도 못한 것으로 보였다. 전쟁에 시달리고,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은 비자가 필요 없는데, 민주체제인 캄보디아는 비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태국, 베트남 등 상대적으로 강한 나라의 중간에 끼이어 있어, 어떤 피해 의식을 가질 수 있는 캄보디아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리라.
엘리베이터 같은 밀폐된 곳에서 중국 사람을 만나면 그들의 말소리가 그렇게 시끄러울 수가 없었는데, 베트남 사람들은 그 이상이었다. 꼭 박지원이 청나라에 처음 가서 그들의 말을 새소리 같다고 표현했는데, 베트남 사람들은 며칠 굶은 새가 딱딱거리는 것 같았다. 그 이유는 중국이 사성, 베트남이 육성을 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베트남은 중국, 인도에 이어 엄청나게 발전하고 있었다. 옛날에 월맹에 해당하는 곳인데, 아파트 및 도로 공사 등 우리 기업도 많이 참가하고 있었다. 60년대 7.8년간 총부리를 겨누고 싸웠던 우리나라와 베트남의 관계를 생각할 때 뒤늦게 격세지감을 느끼게 되었다. 북쪽에 사는 이들은 그 시대에 모두 베트콩이 아니었나. 유감스럽게도 ‘다낭’같은 중부 지방을 경유하지 못하여, ‘꾸찌 터널’등 전쟁의 상흔을 보지 못했다. 환승하기 위해서 간 호찌민 시(사이공)를 밤하늘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그 야경은 나에게 만감이 교차되게 했다. 제법 불빛도 많이 보였는데, 불안의 시대를 접고 일어서려는 호치민시는 비참했던 굴곡의 현대사를 떠올리게 했다. 영화에서 본 마지막 사이공의 혼돈이 눈앞에 선하게 전개되었다.
생선회를 안주로 술 한 잔에 취해 바라본 하롱베이는 절경 중 절경이었다. 이태백이 본인은 귀향 온 신선이라 하여 자칭 이젹션이라 하였다는 말이 생각나면서, 마치 우리가 신선이 된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거의가 한국 사람이었다. 벌서 유럽 사람들은 다녀간 것인지, 아니면 동양 사람이 많이 오는 곳은 아예 오지를 않는 것인지 의문이 갔다.
캄보디아의 공항에 내려 입국 절차를 기다는데, 공항 직원이 ‘한국사람 빨리 빨리’하면서 웃돈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과연 누가 잘못한 것인지, 버젓이 돈을 요구하는 그 나라 공항 직원도 한심스럽지만, 급행료 관행을 이곳 오지까지 수출한 우리나라 사람의 행태를 생각하니 씁쓸했다. 후덥지근한 기온과 상당히 다른 캄보디아 사람을 보니 이국에 온 것을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되었다. 저들이 한 때 막강한 힘을 지녔던 제국의 후예였단 말인가. 폴포트와 인간의 유골이 산처럼 쌓였던 그 반공 홍보 사진의 이해 당사자들이란 말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색으로 물건을 팔려고 1달러를 외치는 아이들 극성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도 새록새록 그들의 강하고도 슬픈 역사가 떠올랐다.
이지상은 캄보디아를 몇 번에 걸쳐 방문한다. 책 한 페이지 전부를 차지하는 화끈한 사진과 그의 앙코르 와트에 대한 묘사는 실제로 우리가 가서 보는 느낌을 들게 한다. 그러나 현재의 앙코르 와트는 이지상이 여행한 방법과 매우 다르다. 자동차나 사람들로부터 유적지를 보호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제한을 두었다. 이지상은 좀 더 자유스럽게 제국의 영화의 흔적을 볼 수 있었고, 이후에 여행하는 사람들은 많은 제약이 따른다고 보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