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구혜영 옮김 / 창해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은 누구나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정해진 운명을 숙명으로 알고 살아가야 한다. 되돌릴 수도 없는 인생 역정을 상처 받으며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한다.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왜 ‘숙명’인가 생각해 보았다. 끝까지 읽고 나서야 서로 비로소 서로 얽히고설키어 경쟁하고 증오하며 운명대로 살아간다는 것을 알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은  친구이자 학문적 라이벌 이시가미 와  물리학 교수 유가와 마나부의 두뇌와 끈기 대결이 한 축을 이루었었다. 이 소설도 우류 아키히코와 와쿠라 유사쿠가 서로 숙적으로 나온다. 거기에 이 둘과 일찍이 인연을 맺고 있는 미사코가 등장 한다. 즉 아키히코와 유사쿠는 서로 어릴 때부터 모든 면에서 서로 경쟁자였다. 빈부의 차이는 나지만 명석한 두뇌로 서로를 의식하면서 살다가, 결코 아키히코가 승리하는 듯 보인다.

의대 진학에 실패한 유사쿠는 경찰이 되어 아키히코 집안의 살인 사건을 수사하게 되면서 옛 숙적을 대면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유년 시절 첫사랑이었던 미사코를 만나는데 그녀는 아키히코의 아내가 되어있었다. 두 번의 우연적 만남이 한번에 일어난다.

‘스가이’ 사장이 우류 가에 있던 독화살로 살해당한 사건은 유사쿠한테는  지금까지 경쟁에서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아키히코를 굴복시킬 절호의 기회였다. 아키히코도 여러 가지 알리바이의 방어벽을 치지만 여러 정황상 그가 범인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소설은 흘러간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기구(崎嶇)한 운명을 접하게 된다. 몇 십 년 헤어졌다가 우연히 만나고 바로 옆에 살면서도 알지 못하며 살아간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가 아닌가.
출생하면서부터 맺어지고 규정된 삶은 거부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의 조상이 저질러 놓은 죄상은 평생을 지고 속죄하며 살아가야 한다. 작가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그들이 얼마나 대립하고 사랑하며 증오하는가를 보여 주려는 것 같다.

이 소설 역시 초반에 여러 개연성에 의문을 갖고, 궁금해 하며 긴장하다가 결말 부분에 가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선 우류 전산의 사장이었던 나오아키가 죽었으면 그의 아들 아키히코가 당연히 이 회사의 사장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왜 뇌신경 의사라는 다른 길어 갔는가? 
둘째 미사코의 미스터리 취업과 결혼은 무엇 때문인가 ?
셋째 스가이 사장이 나오아키가에서 무엇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었다가 죽음을 당하는가? 사나에 씨와 우류 가와는 어떤 연관이 있는가 ? 
가장 큰 의문이 될 수 있는 누가 스가이 사장을 죽였을까 ?

마지막에서 엄청난 의문이 풀리게 된다. 숙명의 끈이 그물코처럼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도 반전이라 하겠다. 아쉬운 점은 과거와 현재에 걸쳐 사건이 연계되고 두 가정의 카테고리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돌발적이고 다이내믹한 구성이 부족하다. 또한 긴박성이 떨어지니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도 느슨한 글의 흐름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고 본다. 한 가지 개인적 생각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 등장인물의 심리묘사에 소홀한 감이 있지 않나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추리 소설의 복선이나 사건의 얼개는  그의 소설에 탄력을 붙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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