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용 위인전기에 나오는 위인들은 모두 성인군자 같기만 한다고 툴툴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하지만 이는 위인전기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탓에 나온 오해입니다.외국의 위인들 중에는 나쁜 부모도 있음을 밝힌 위인전도 꽤 있습니다.예를 들어 계몽사의 세계위인전기전집(한때 아주 잘 팔린 책임)에는 베토벤 이야기가 있습니다.베토벤의 아버지는 아주 혹독하게 아들에게 피아노 연주 훈련을 시켰고, 아들이 어느 정도 솜씨에 도달하자 데리고 다니면서 연주회를 열어 아들은 기진맥진하고 돈은 아버지가 모두 차지했다는 것입니다.성인들 대상의 책 중에는 발자크, 디킨즈 등이 부모에 대해 지긋지긋하다고 회고했다는 일화를 담은 내용도 있습니다.
그런데 국내 위인에 관해서는 이런 이야기를 볼 수 없습니다.위인 자신도 완전무결점의 인간이고 그 부모 역시도 성인군자입니다.그런 훌륭한 부모여서 자식도 위인이 되었다는 식이지요.하지만 외국 위인의 부모는 나쁜 사람이 많고 우리나라는 안 그렇다는 것은 어쩐지 이상합니다.우리나라 사람은 특별히 인격이 훌륭한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지요.요즘에도 자식들의 공부나 진학에 철저히 간섭하며 가족불화를 일으키는 부모가 적지 않습니다.그러면 요즘 부모는 이렇게 극성맞고 옛날 사람들은 부모가 되는 그 순간부터 모두 인격자가 되었을까요? 그것도 아닐 것입니다.
어렸을 때 한석봉 이야기를 들으면서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불을 끈 채 어머니는 떡을 썰고, 자식에겐 글씨를 쓰게 하였다는 그 일화 알죠? 그런데 내가 어른이 되어 생각해 보니 한석봉 어머니의 교육 방식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좋게 타일러서 보낼 수도 있는데 꼭 그렇게까지 매몰차게 대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우리나라는 위인의 흠을 잡기 힘든 분위기도 있습니다.만약 누군가가 그런 책을 낸다면 그 위인의 후손이 엄청난 항의를 하니까요.이런 항의는 국사학과에서는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논문에 누구 비판 잘못했다가 무슨무슨 문중에게 봉변당한 사연도 많지요.게다가 네티즌들의 마녀사냥이라는 디지털 시대의 독재가 버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효도를 실천하기보다는 이데올로기로 더 많이 활용하니 더 골치 아픕니다.연령주의와 결합한 효도 이데올로기의 위력은 대단합니다.그래서 유명인이 노인폄하를 했다는 낙인이 찍히면 끝장입니다.이런 분위기이니 유명한 위인의 부모가 아주 매몰찼다더라 하는 내용이 든 책을 쓰는 저술가가 없는 것도 당연합니다.긁어부스럼 낼 필요가 없다는 보신주의입니다.
중앙정보부나 안전기획부 시절과 달라서 요즘엔 국가정보원이 저술가를 붙잡아 지하실에서 두들겨 패는 일은 없습니다.하지만 정치권력이 아닌 또다른 보이지 않는 압력이 여전합니다.더군다나 그 압력이 실체를 파악하기 힘든 불특정 다수한테서 온다면 그 공포는 오히려 독재정권 때보다 더 하지요.우리나라 위인을 다룬 전기에도 위인의 부모들의 어두운 면을 언급한 내용이 실리는 날이 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