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주<지리산> 홍성유 <비극은 없다>와 함께 우리나라 반공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홍성원의 대하소설 <남과 북>. 이 책은 1977년에 초판이 나왔고, 2000년에 내용을 일부 개정하여 재판이 나왔지만 재판 때는 초판만큼의 인기를 모으지는 못했습니다.아무래도 세월이 흘렀다고나 할까요.자유당 말기에 나온 <비극은 없다>(1958)보다는 더 나중에 나왔지만 21세기의 독자에게 매력을 주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직접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홍성원<남과 북>을 영화 <남과 북>(1965)의 원작으로 알고 있지만 전혀 다른 내용입니다.홍성원 것은 한국전쟁을 시작한 북한군의 전면공격 부터 휴전성립 때까지를 그렸고, 영화는 인민군 장교가 남한의 애인을 찾아 남으로 탈주한다는 내용입니다.김기덕 감독 작품인데, 원래 한운사 씨의 라디오 일일극인 것을 영화시나리오로 개작할 때 초스피드로 이틀만에 써내려갔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한선생! 영화촬영이 얼마 안 남았소...쓰시오...그래서 후다닥 써내렸다고 하지요.당시 김기덕은 1961년 첫 감독작이 역시 한국전쟁물인 '5인의 해병'이어서 한국전쟁을 소재로 작품을 해석하는 데 능력을 인정받은 상태였고, <남과 북>에서는 북한 장교에 신영균, 남한장교에 남궁원, 남한여인에 엄앵란 등 당대 톱스타를 동원해 흥행에 성공했습니다.주제가 '남과 북'은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라는 제목으로 더 많이 알려졌는데 작사는 한운사, 작곡은 박춘석, 노래는 곽순옥이었습니다.나중에 패티 김이 불러 더 유명해집니다.5공 때 이산가족 찾기 방송 때 나온 '남과 북'은 패티 김 노래입니다.
홍성원 씨는 <D데이의 병촌>이라는 병영소설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남성적인 박력과 간결한 문체가 특징인데 어떤 이는 중편 '폭군'을 대표작으로 꼽지만 역시 군인들이 등장하는 장면 묘사가 장기입니다.<남과 북>은 그 분량도 웅장하지만 군복 냄새, 화약냄새가 물씬 풍깁니다.<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전쟁물이면서 애정물의 요소도 섞인 소설이라면 홍성원 것은 병영소설의 요소도 강합니다.외국의 사례로는 노만 메일러 <나자와 사자>, 어윈 쇼<젊은 사자들>을 들 수 있지요.<남과 북>은 전쟁터의 모습뿐아니라 임시수도인 부산에 몰려든 모리배,정상배들의 교활한 수법도 자세히 묘사하여 감탄을 자아냅니다.이렇게 전쟁터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돈벌이 아귀다툼에 대한 묘사는 나중에 임진왜란을 그린 대하소설<달과 칼>에서도 발군의 실력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한운사 씨는 1961년 라디오 드라마 <현해탄은 알고 있다>의 극본을 써서 유명해집니다.학병으로 끌려간 주인공 아로운을 일본여인 히데코가 사랑한다는 줄거리입니다.이 드라마는 1963년에 영화화되었는데 일본여인 역에 재일교포 여배우인 공미도리가 주연을 해서 화제를 모았습니다.그 뒤로도 한운사 씨는 분단문제를 다룬 작품을 많이 썼는데 지금 시각으로 보면 반공색채가 좀 강하다는 느낌도 듣지만 작품구성 자체가 짱짱하여 좋은 평을 받았죠.
한운사 씨는 한때 반공법 위반으로 수사도 받은 전력이 있고, 그 전에 전쟁 중에는 북한군에 끌려갔다가 탈출하는 등 생애 자체가 드라마입니다.하지만 만년의 회고록을 보면 정치적으로는 보수적 색채를 많이 띄지요.박정희 정부의 산업정책이 본격화되던 시절 건전가요로 유명한 '잘살아 보세'의 작사가이기도 했고, 박정희에 대한 평가도 후합니다.보수원로다운 발언을 종종 하기도 했고.
이제 두 분 모두 고인이 되었습니다.앞서거니 뒷서거니 해서 홍 씨는 2008년, 한 씨는 2009년에 타계합니다.위에서 언급한 이병주 씨는 1992년, 홍성유 씨는 2002년에 타계...반공문학의 거장들이 다들 이렇게 갔습니다.이 뒤를 잇는 반공문학으로 이문열<영웅시대>를 꼽고 싶습니다.
어쩐지 구닥다리 같은 옛날 이야기만 늘어놓은 것 같아 최신정보 하나 알려드리죠.고아라를 스타덤에 올린 드라마 '반올림' 장근석 김명민 이지아가 나온 '베토벤 바이러스'를 쓴 작가 홍자매(홍진아 홍자람)가 홍성원 씨 딸들입니다.글솜씨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죠.아버지 홍성원 씨는 아무래도 군대를 비롯하여 남성적인 소재를 다루었기 때문에 여성독자들이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딸들이 청소년과 여성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드라마를 쓰고 있습니다.
홍성원<남과 북>도 시중 서점에서 구할 수 있고, 영화 <남과 북>도 종종 안방극장에서 방영합니다.DVD도 나와있고...전쟁미체험 세대들이라면 반공문학이란 용어자체가 매력을 주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그렇다고 내가 전쟁체험세대라는 말은 아니니 오해는 없기를...) 소설도 영화도 찬찬히 감상하면 또 나름의 재미가 있습니다.초여름을 대하소설과 옛영화 감상으로 보내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영화 '남과 북'을 감독한 김기덕 씨는 작고했습니다.윤여정 씨가 젊었을 때 '하녀'에 나왔는데 이 영화를 감독하기도 했습니다.현재 활동 중인 김기덕 감독은 동명이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