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26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있었던 한미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2012년 예정이었던 한국의 전시작전권 환수를 2015년으로 연기하는 것에 합의했습니다.전작권 환수 연기는 이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외쳤던 사안이고,현 정부는 물론 보수 메이저 신문들도 기회 있을 때마다 주장했습니다.미국의 인사들 중에서 한국정부와 뜻을 같이 하는 인사들을 찾아 인터뷰하는 기사를 수시로 내보냈으며 사설을 통해,그리고 세미나 등을 통해 여론형성에 온 힘을 경주했습니다.이제 소원을 성취했군요. 

  지금이야 전작권 환수 문제는 '노무현은 환수를 추진했고 이명박은 연기를 추진했다'고 대립각이 분명한 사안이었지만 이 문제도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복잡합니다.보수주의자들이 그렇게 숭배하는 박정희야말로 전작권 환수를 강력히 희망했던 인물이었지요.1976년 8월 북한군이 판문점에서 미군들을 도끼로 살해하자 그 보복으로 특공대를 북파하여 응징하려고 했는데 주한미군이 반대하자 작전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해야겠다는 마음이 강해졌다고 하지요.특히 그의 임기 말년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한국의 인권이 짓밟히고 있다'고 지적하는 소위 인권 외교로 한미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박정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작전권을 가져와야겠다"고 이를 갈 정도였습니다.심지어 미국에 대해 강도높은 비난도 서슴지 않았는데 제일 압권은 1976년의 워싱턴 정전 사태에 대한 언급입니다."미국이란 나라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정전이 잠깐 났다고 수도가 치안마비가 될 정도로 도둑과 강도가 들끓느냐!"는 것이죠. 

  물론 박정희의 이 언급은 당시 카터 대통령이 한국의 군사독재에 대해 우려하는 이야기를 자주 했던 데에 대한 반발이었습니다.왜 내정간섭하느냐는 것이지요.재미있는 것은 워싱턴 정전에 대한 이야기는 전 한양대 교수 리영희 씨가 자주 언급한다는 것입니다.물론 리 씨는 원싱턴 정전과 비교하여 중국 당산 지진 당시 중국인들의 질서정연한 모습을 대조하여 사회주의형 인간의 도덕성을 강조한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하지만 요즘 좀 극단적인 친미주의자들이 박정희를 숭배하는 것에 비추어 본다면 박정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랄지도 모르겠습니다.

  참여정부 시절 한미정부 간에 전작권 환수 협상이 한창일 때 한나라당 의원 여러명이 미국 정부에 직접 전작권 환수 연기 운동을 하러 간 일이 있었습니다.당시 일부 여론에서는 "이게 무슨 조선시대 때의 조공이라도 하자는 것이냐"는 비판이 있었는데 한나라당 의원 한 명이 아주 유명한 말을 한 마디 했지요."지금 우리는 미국에 조공외교라도 해야 한다!". 이제 그 조공외교의 결실을 거두게 된 것 같군요. 

   현 정부의 주요 포스트에 있는 남성들은 대통령과 총리를 비롯하여 군대면제자가 많은 것 때문에 이것 저것 비아냥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만 이런 식의 비아냥은 초점이 빗나가는 때도 많습니다.왜냐면 천안함 사태 때도 그렇고, 지금의 전작권 환수 연기 문제도 그렇고 우리나라 퇴역장성이나 군 관련 단체들(군대 경험이 엄청나게 많은 분들이 모인 단체들)은 현정부와 입장이 거의 동일합니다.군대 안 갔다 온 사람들이니까 저런 일을 추진하는 거다...하고 비난한다면 직업군인이었던 이들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해야겠습니까? 이런 때는 군대 갔다 오니까 저런 것이다고 할 건가요? 군대를 갔다 와도 한나라당을 변함없이 지지하는 남자들도 많습니다.대통령과 행정부 인사들 중 상당수가 면제자이건 아니건 그 지지율엔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도 한나라당에 묻지마 투표로 충성하는 사람이 많은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지요.

  박정희가 그토록 열망하던 전시작전권 환수를 이루어낸 이가 노무현이고, 박정희를 그토록 찬양하는 보수인사들이 전시작전권 환수 연기운동을 끈질기게 펴다가 드디어 소원을 성취하는 것을 보면 역사라는 게 참 요지경이라는 느낌이 듭니다.이번 연기에 대해서 이 대통령은 "연기를 수락해 준 오바마 대통령에게 고맙다"고 말했군요.이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관련기사와 특집 기획물들을 정독해온 저는 최근까지 "미국정부가 연기에 합의해 줄 리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는데, 역시 인간은 한치 앞도 못내다 보는 존재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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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devil 2010-06-29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들이 박정희가 말년에 미국과 지속적으로 갈등이 있었고,
전시작전권 환수에 열을 올렸던 것을 모를리가 있겠습니다.
박통시절 말기에 가장 많이 들었던 것이 자주국방이었던 같아요.
근데 박정희의 죽음과 미국의 반응을 지켜보면서 온 국민이 크게 불안에 떨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기억이 보수주의자들을 짓누르고 있는 건 아닐까요?^^

노이에자이트 2010-06-30 16:08   좋아요 0 | URL
박정희가 전작권을 가져와야겠다고 그렇게 강조했지만 그것은 우리가 말하는 자주성으로 보기엔 문제가 있습니다.지금 전작권 환수연기를 주장했던 이들이 제일 강조한 것이 한미연합사 해체 반대이고 한미연합사라는 것은 박정희가 자주국방을 가장 많이 외치던 임기 말년에 생겼습니다.그리고 아디시피 한미연합사는 주한미군사령관이 최고지휘관으로 되어있지요.전작권이 미국에 있음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조직입니다.

lazydevil 2010-06-30 22:1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한미연합사가 박통 집권 말기에 생겼군요. 결국 미국의 압박에 밀렸던 건가요?

노이에자이트 2010-07-01 17:40   좋아요 0 | URL
그게 박정희식 민족주의의 미묘한 점이라고 봅니다.카터 행정부 당시 한미갈등이 꽤 있었지만 박정희가 미군철수를 바라는 건 아니었고 오히려 당시 카터의 미군감축 움직임에 대해서 한국 기독교계에서 미군철수반대 대규모 기도회도 열고 그랬는데 정부에서도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거나 하지는 않았으니까요.

lazydevil 2010-07-01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듣고보니 어렴풋 기억이 나네요.
카터가 방한해서 조깅하고, 미군철수 압박하고, 어른들이 미군철수는 안될 소리라며 말하던게...글과 답변 모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7-02 15:20   좋아요 0 | URL
도움이 되었다니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