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더 잘 알려진 나라 옆에 있는 나라는 손해를 많이 봅니다.특히 그 옆의 나라가 더 크고 강한 나라이면 더 그렇지요.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도 중국과 일본이라는 나라 사이에 있어서 그 존재감이 알려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유럽에서도 예를 들면 영국 내에서 워낙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잘 알려지다 보니 웨일즈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심지어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서는 분명한 독립국인 아일랜드가 영국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이것은 마치 아직도 한국을 일본의 식민지로 알고 있는 외국인이 있다는 것과 비슷하지요. 

    우리나라는 유럽 중에서도 서유럽을  진짜(?) 유럽이라고 여기고 옛 동구 공산권에 속하는 나라들은 왠지 변방이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있습니다.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어느 루마니아 인도 그 점을 느끼고 있다고  방송에서 말하는 것을 봤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가 분리된 뒤, 체코보다는 슬로바키아가, 유고연방이 해체된 뒤에 독립한 나라들 중 보스니아,세르비아,크로아티아 보다는 슬로베니아가 외국인들에겐 더 생소합니다.이번 월드컵에서도 우리나라의 모 아나운서는 중계방송에서 슬로베니아를  슬로바키아로 여러번 잘 못 말해서 비난을 받고 있더군요.

    우리나라에서 흔히 동구권이라고 뭉뚱그립니다만 유럽인들은 중부유럽과 동부유럽으로 나누는 경향이 있고 요즘 관광지로 알려지고 있는 체코가 바로 중부유럽입니다.그 인접국인 슬로바키아와는 언어가 달라서 예전부터 은근히 라이벌 관계지요.두 나라가 억지로 합쳐진 것이 1차대전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왕국이 무너진 뒤입니다.합스부르크 왕국이라는 유럽 굴지의 왕가가 몰락하자 이 왕국치하의 숱한 국가들이 독립했고 이때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합쳐져 체코슬로바키아로 탄생합니다.하지만 억지로 합한 것 같은 두 지역은 껄끄러웠고 이 틈을 타고 나치 독일이 슬로바키아를 부추겨 슬로바키아는 일종의 괴뢰국가로서 체코로부터 분리됩니다.나치독일이 몰락하자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다시 합쳐져 사회주의국가였을 땐 체코슬로바키아로 지냈지만 소련이 해체되고 동구권의 사회주의도 몰락하자 다시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갈라집니다. 

  유명하지 않은 나라가 영화라든가 대중매체를 통해 엉뚱한 편견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슬로바키아가 배경으로 나온 공포영화 '호스텔'(2005년 미국작품,흥행에 성공해 2007년 속편이 만들어짐)이 그렇지요.여기서 슬로바키아는 부유층들이 심심풀이로 살아있는 사람을 살해하는 비밀아지트가 있는 나라로 그려집니다.문제는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여 외국의 관객들이 실제로 슬로바키아를 치안이 엉망인 살인이 난무하는 곳으로 알게 되었다는 겁니다.당연히 관광객이 급감하여 슬로바키아에서는 국회에서 이 영화를 비난하는 일까지 생기게 됩니다.영화에서 슬로바키아 사람들이 체코어를 쓰는 장면이 나온다는 등 고증도 엉망이라는 비난도 나오고... 

  유고연방도 민족분쟁이 극심하기로 유명합니다.대체로 사회주의권 붕괴와 동시에 진행된 유고연방 해체 과정에서 일어난 내전에서도 보스니아와 세르비아의 분쟁이 더 알려져 있지만 (아무래도 기독교 문화권인 세르비아 정교의 나라 세르비아와 이슬람을 신봉하는 보스니아의 대립때문) 크로아티아 역시 초반에는 분쟁당사자였지요.우리나라에도 알려진 크로아티아의 격투가 미르코 크로캅이 유고내전 때 소년병으로 참전한 사실이 있습니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는 접경하고 있기 때문에 영토갈등이 아직도 있습니다.그래서 먼저 유럽연합에 가입한 슬로베니아가 크로아티아의 유럽연합 가입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적도 있습니다.사실 유럽에서는 크로아티아가 관광지로 유명합니다.아드리아 해안의 절경은 많은 부유층들이 별장짓고 살고 싶은 곳으로 꼽히지요.슬로베니아도 절경이 많지만 아무래도 크로아티아에 비해 지명도는 떨어집니다.슬로베니아 사람들 입장에서는 분통 터질 일이지요.게다가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언어가 다르듯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도 언어가 다릅니다.슬로베키아와 슬로베니아의 언어가 서로 다른 것은 말할 필요가 없지요. 

   민족주의 이론가들 중 오스트리아의 오토 바우어가 있습니다.그가 민족주의와 민족분쟁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영역인 중부유럽과 동부유럽의 소수민족들의 종교와 언어 민족이 매우 다양하고 복잡했기 때문입니다.슬로베니아와 슬로바키아도 그 지역에 속했지요.그래서 유럽인들도 이 지역의 복잡한 민족구성에 대해서는 어려워 합니다.저 먼 대서양 너머의 미국인은 말할 나위가 없지요.미국인들이 국제상식에 얼마나 무지한가 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으로 떠돌아 다니는데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은 라틴어를 쓴다고 말하는 남자도 있더군요.그 정도면 슬로바키아와 슬로베니아를 구별하는 것은 더 어렵겠지요.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 옛 동구공산권에 속한 나라 선수가 나오면 우리나라 아나운서와 해설자들은 선수들 발음 때문에 정신이 없다고 합니다.워낙 길고 우리에겐 발음이 생소하기 때문입니다.과장하면 발음하다가 입이 부르터 버린다고 하는데...그렇더라도 중계를 맡은 아나운서가 선수 이름도 아니고 나라이름인 슬로바키아와 슬로베니아를 혼동한다는 것은 좀 문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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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6-20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유럽이나 구 소련에서 분리한 나라들이 많아선지 새로운 국가명이 좀 생소하긴 하더군요^^

노이에자이트 2010-06-21 15:36   좋아요 0 | URL
벌써 20년이 되어가니 세월도 많이 지났지요.

... 2010-06-21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무리 발음이 어렵기로서니, 중계를 맡은 아나운서가 국가명과 선수 이름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반복적으로 국가명 틀리는 걸 보면, 솔직히 무식한데다 준비성까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노이에자이트 2010-06-21 15:38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준비부족이라고 봐야죠.어떤 사람들은 종이에 써서 상당히 연습하고 나온다고도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