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가까이 주로 한국과 미국과의 관계, 미군정 등장에서부터 1949년의 미군철수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미군이 다시 개입하기까지의 과정에 초점을 두고 공부했습니다.이승만과 미국의 밀고 당기는 씨름을 미국인의 시각에서 쓴 책도 살펴보았고,한국인의 시각으로 쓴 책도 보았습니다.이승만의 그 치밀한 마키아벨리즘은 경탄을 자아내게 하더군요.한민당,김구 및 임시정부 그리고 미군정까지 자기 뜻대로 쥐락펴락하는데 소름이 끼칠 정도였습니다. 

   유진산(1905~1974) 평전을 오랜만에 또 읽어 보았습니다.약 30년 전 시사잡지의 특집인데 사춘기 때부터 이런 정치논픽션물을 상당히 좋아했습니다.외교나 군사 외에 이런 정당인들의 활약도 역사를, 특히 현대사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지요.어떤 사람들은 제도권 정당에 관한 수십 년 전 이야기라면 뭔가 수준이 낮고 노인정에 모인 할아버지들이나 입에 올릴 소재라면서 폄하하기도 합니다만...

   한민당에서 민주당으로 가는 가교에 민국당이라는 정당이 있었습니다.한민당에서도 보수파인 조병옥이 주도한 정당인데 나중에 민주당이 되고 여기서 구파 신파가 나뉩니다.유진산은 민국당으로 정당생활을 시작해 민주당 그리고 박정희 때의 민정당(5공 때의 민정당이 아님)과 신민당으로 이어지는 야당의 파란만장한 역사의 한 가운데를 겪고 나름대로 한 틀을 형성했습니다.그의 별명은 너구리,술수의 대가 등등 인데 한때 그의 동지였다가 나중에 갈라서는 윤보선에게서는 사쿠라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이 별명은 그를 평생 따라다니게 됩니다. 

  대권에 도전하기보다는 막후협상이 장기였던 유진산은 그 나름의 술수철학 같은 게 있었지요.모사는 절대 자기과시욕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늘 그늘에서 막후에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또 그는 그런 소신 때문인지 가두정치를 싫어했습니다.박정희가 대통령이 된 직후(1961년 5,16정변~1963년 대선 전까지 박정희의 직책은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에서부터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까지 전국을 뒤흔들었던 한일굴욕외교반대 투쟁에 대해서도 그는 거리를 두었고 그래서 투쟁파였던 윤보선에게서 사쿠라라는 욕까지 얻어먹게 됩니다. 

  유진산은 새벽 5시 경에 일어나 독서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던 만큼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고 언변이 뛰어났습니다.그와 한바탕 하러 간 사람들도 일단 이야기를 나눠보고 난 다음엔 설득당하고 말았다 하니 대단한 변설의 소유자였나 봅니다.그는 늘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으로도 유명했습니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상대를 존중해주는 데서 끝난 것은 아닙니다.상대더러 말을 많이 하게 해놓고 자신은 말을 극도로 아끼면서 속셈을 숨겼던 것이지요.그래서 그의 아들에게 "처음 만난 사람이 맘에 든다고 내가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서는 안 된다"고 일렀다고 합니다. 

  우리가 원리나 가치의 문제에만 지나치게 매몰되어 교조주의의 위험에 빠지려고 할 때엔 이렇게 철저한 현실주의자의 인생과 그 정치철학을 정독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우리나라엔 정치가의 회고록이나 전기나 자서전은 그다지 독자가 많지 않습니다.유진산의 회고록도 헌책방에 잘 나오지 않습니다.조봉암의 측근이었던 윤길중의 회고록이 10년 전 헌책방에 나왔는데 머뭇거리다 보니 누가 구입해 버린 모양입니다.그러니 오래된 시사잡지가 길잡이가 될 때가 많지요.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알음알음 필독서는 있는 법입니다.다음주부터 이 분야의 고전으로 통하는 이영석<야당 30년>을 읽어볼까 합니다.저자는 정치부 기자 출신이지요.

  다른 나라의 정당사와 우리나라의 정당사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는 정말로 많은 정당들이 생겼다 없어졌다 했습니다.그 당명은 또 어찌나 비슷비슷하고 복잡한지요.한국정당사를 공부해 볼까 하다가 그 숱한 정당명과 당내 파벌 외우느라  머리가 복잡해져서 못하겠다고 포기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까요.하지만 그건 당연한 것입니다.2년 전 세상을 달리한 한나라당 민정계의 거물 김윤환 씨의 일화 중 하나인데 당 모임에서 이야기 하다가 자기가 활약했던 당시의 당명이 뭔지 몰라서 옆에서 알려주고 나서야 알았다고 합니다.아마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 쪽 이야기를 하다가 헛갈렸던 모양이더군요.현역 정치인이 이 정도니 당명이 헛갈려서 한국정당사에 관한 독서가 어렵다는 사람들의 소감이 결코 엄살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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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6-12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유진산이라 당대를 움직였던 걸물이지요.유진산의 술수에 반발해서 나온것이 바로 김영삼 김대중의 40대 기수론이라고 하더군요^^

노이에자이트 2010-06-12 23:00   좋아요 0 | URL
하지만 진산은 결국 경선에서 김영삼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카스피 2010-06-12 23:23   좋아요 0 | URL
음 그게 김영삼이 민주당 구파 계열이어서 그랬을 겁니다.반대로 김대중은 민주당 신파 계열이었지요^^

노이에자이트 2010-06-12 23:52   좋아요 0 | URL
그런데도 같은 구파인 윤보선과는 나중에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말년에는 김대중 납치사건을 규탄하기도 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