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작고한 서지학자 이종학이 생전에 신동아 기자 최영재와 대담한 적이 있습니다(2000년 7월호 신동아에 수록).그는 독도에 관한 자료를 사비를 들여 모은 것으로 유명하지요.요즘 일본이 다시 이 문제로 강하게 나오고 있기 때문에 그 글을 정독해 보았습니다.그 중에서 인상에 남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최영재:한국 정부가 독도 문제를 처리하는 것을 보고 실망이 컸나 봅니다. 

   이종학:정부가 개인보다 정보력이 뒤진다면 문제 아닙니까.그건 그렇다 치고 문제는 모르면 즉시 달려와 조언을 구하는 게 바른 자세 아닙니까.내가 독도 관련 자료와 한일 관계 자료를 새로 발굴해 공개할 때마다 제일 먼저 달려오는 이는 바로 일본학자들입니다.정부 관계자는 항상 늦게 왔고 마치 상부에서 지시하듯 고압적인 자세로 자료를 제공하라고 요구합니다.일본인의 집요함과 치밀함,한국정부의 무성의와 무대응,이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최영재에 의하면 이종학은 인터뷰 중 몇번이나 독도문제에 관한 일본인의 치밀함과 집요함을 지적했다고 합니다.물론 이종학은 일본에 수십차례 건너가서 먼지투성이의 문서창고를 뒤져 한문투성이의 고문서를 찾아 자료를 정리했습니다. 그 역시 치밀하고 집요한 사람이지요.

   어제 일본의 하토야마 수상이 직접 독도는 일본 영토라고 언급했습니다.민주당으로 정권교체가 되었지만 영토문제에서는 자민당과 큰 차이점이 잆는 것 같습니다.외국의 사례만 하더라도 제정 러시아의 영토관은 러시아 혁명 이후의 사회주의 정권에도 그대로 이어지고,장개석과 모택동은 내전까지 벌이지만 티벳,신쟝성,내몽골 지역에 대한 영유권에 대해선 거의 똑같은 견해였지요. 

  2005년 독도 파동 때 한국에서는 화형식,시위,혈서쓰기 등 대단했습니다.이젠 그런 식의 반응은 하지 않는군요.하긴2008년에는 재향군인회가 쓰시마에 가서 "대마도는 한국땅!"을 외치는 오바액션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흑해 2010-04-09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확히는 다케시마라고 하지 않았나요. 다케시마는 일본인이 상상하는 가상의 일본영토이며 독도는 한국인들이 상상하는 영토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미 정치적인 의미를 띠는 말이 되고 말았죠. 제가 다케시마는 한국 영토라고 주장해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 있겠죠.

러시아 얘기를 하셨는데 그렇다고 해도 소련의 정식명칭은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합(소비에트 연방이라 많이 부르지만 이상하게 EU는 유럽 연합이라고 부르니 일관성을 위해서)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뒤의 초창기에는 제정러시아의 영토를 해체시키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혁명은 반제국적인 성격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결국에는 일국사회주의 노선으로 가게 되긴 합니다. 그 당시에 사회주의적인 이슬람공화국을 꿈꾸는 사람들이 제거당했죠. 하지만 소련 해체에서 볼 수 있듯이 러시아연방공화국 외의 다른 공화국들의 원심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국이라... 현재의 중국은 중화주의적인 민족주의가 절정에 도달한 느낌입니다. 티베트가 중국 영토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漢族출신의 사람이 중국에 있기나 한가요? 다만 마오가 철저하게 국가주의적인 관점에서 영유권 문제를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세계혁명(그 당시의 세계혁명은 곧 사회주의혁명)을 정당화하면서 티베트, 신장성, 내몽고 지역을 귀속시키는 논리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중국의 영유권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귀결되기는 하지만 레닌도 그렇지만 마오도 민족주의보다는 어디까지나 사회주의 또는 맑스주의를 앞세우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스탈린이나 장개석의 영유권 논리가 일관성이 있다면 레닌이나 마오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이중성"이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사족으로 키르키스탄에서 일어난 일을 보니 갑자기 "이승만"이 떠오르네요. 제2의 "이승만"은 어떤 평가를 받게 될 지 궁금하군요.

노이에자이트 2010-04-09 17:09   좋아요 0 | URL
따옴표를 안 쓰고 독도라고 하는 게 편합니다.만약 다케시마 운운 했다가는 인용부호를 쓰든 안 쓰든 악플에 시달릴 수도 있어놔서...

카라칸 선언이 반제국주의 선언이지요.그것에 감동해서 손문이 소련과의 협상에 적극적이었지만 글쎄요...레닌 말기에 이미 제정러시아 시대의 영토욕이 고개를 들지는 않았는지...

1952년에 중국군이 티베트를 침략해 무력진압하는 과정에서 인명피해가 엄청나게 났지요.저는 문화혁명의 외교노선도 중화주의적인 자민족우월주의의 산물이라고 봅니다.

오린지 혁명이고 튤립혁명이고 이젠 다 끝났습니다.이승만 정도의 평가도 못받을 것 같은데요.

흑해 2010-04-12 13:1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제가 너무 옹호하는 것처럼 보였나요. 맞아요. 중국의 티베트 점령은 식민주의가 맞습니다. 마오가 정당하다는 의미따위는 없습니다. 제가 얘기한 것은 마오가 중화주의에서 벗어났다는 뜻이 아니지요. 다른 한족들보다 중화주의에 매몰되지 않았고 어디까지나 맑스주의를 앞세웠다는 의미죠. 티베트를 점령할 때도 마찬가지라는 의미입니다. 그게 마오이즘의 한계일 수도 있죠.

레닌도 마찬가지죠. 혁명 당시에는 공화국들의 독립을 약속했지요.레닌 말기에는 약속을 어겼죠. 유혈 사태도 벌어졌죠. 이슬람이 맑스주의를 잠식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있었죠. 소련은 벌써 20년대부터 맛이 가기 시작했지만 그게 제정러시아의 영토 욕망과 동일한 것인지는 모르겠군요. 그 말이 맞다면 그들은 세계혁명을 꿈꾼 적이 없다는 해석도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결국에는 국가주의에 함몰된 건 맞다고 봅니다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네요. 노이에자이트 님이 생각하시기에 만주는 누구의 영토이며 누구의 역사입니까? 중국, 한국? 전 개인적으로 둘 다 아니라고 봅니다. 만주라는 지역적 공간의 역사가 별도로 존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보면 고구려나 발해도 "한국의 역사"가 아니겠죠. 그저 만주 지역의 역사일 뿐````

사라지고 있는 만주족의 역사이거나 그 누구의 역사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적 관점에 선 중국이나 한국에서 그런 식으로 재구성되는 게 아닐까요?


노이에자이트 2010-04-12 15:34   좋아요 0 | URL
김한규가 '요동사'라는 개념으로 만주지역의 역사를 해명합니다.민족주의와 일정 정도 거리를 두기 때문에 차분하지요.임지현이 소개한 '변경사'도 살펴볼 만합니다.쟁점이 부딪히는 문제는 전혀 다른 주장들을 하나 하나 검토하다 보면 나름대로 실마리가 잡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카스피 2010-04-09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인들이 그런 점에선 집요하긴 한데,이웃나라와 척을 지고서 잘 지낼수 있을지 참 궁금해 집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4-09 23:21   좋아요 0 | URL
보통 일본인들은 민족주의 관념이 우리보다 희박해요.민족을 들먹이면 우익파시즘이라는 오해를 받을까봐 그런다고 일러주더라구요.

흑해 2010-04-14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간단히 정리하면 레닌은 '맑스주의적인 공화국연합'은 인정할 수 있어도 '민족주의적인 공화국 연합'이나 '범이슬람주의적인 공화국 연합'은 인정할 수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제정 러시아 유령론보다는 일종의 유럽중심주의라고 봅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제정 러시아와 뭐가 다른지 알 수 없어지는 건 분명하고 레닌에게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화혁명은 중국에 사는 모든 인간들을 맑스주의적 인간으로 개조하려는 마오의 프로젝트였다고 봅니다. 맑스주의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신인류를 만들어내려는 '인류 개조 계획'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런 면에서 마오가 맑스주의를 우선시했으며 조건만 마련되었다면 티베트를 점령하듯이 남한이나 일본을 점령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겠죠. 저는 마오가 현재의 중국지배층보다 훨씬 공격적이고 국제주의적이라고 봅니다.

김한규나 임지현이 (민족주의자나 국가주의자라는 의미가 아니라) "국가"라는 개념에서 벗어나고 있는 걸까요? 저는 그 사람들이 지역을 얘기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국가"라는 개념을 끌어들이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더군요.

제가 생각하는 지역은 그런 의미의 "지역"이라기보다는 "문화적인 의미를 띤 로컬리티"에 가깝습니다. 이 이야기는 여기에서 그치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