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는 본처에게서 아들을 두지 못하고 소실에게서 아들을 얻습니다.그가 상우인데 그때는 서자가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는 시절이었지요.결국 서자가 아닌 아들이 필요한 추사는 양자를 얻게 됩니다.상우를 사랑하면서도 양자를 얻어야만 하는 심정은 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하지요.그래서 한승원은 작품 <추사>에서 이 대목을 꽤 길게 쓰고 있습니다.
모든 소설은 일종의 자서전이요,자기 고백이라 한다면 한승원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추사가 아무리 역사상 유명하다고 해도 자식이 있었던 남자라면 평범한 아버지가 했던 고민은 했겠지요.당시 서자 출신 중 유명한 유득공이나 박제가와 상우를 비교하면서 만감이 교차했을 것입니다.역사상에는 유명한 아버지 밑에서 빛을 못본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지요.그래서 큰 나무 그늘에는 큰 나무가 자랄 수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한승원이 추사와 동일시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한승원은 소실을 두지 않았으니 그런 것 가지고 공통점을 찾을 수는 없지요.그런데 그의 두 자식인 동림(아들)과 강(딸)이 소설가입니다.한강은 소설가일 뿐 아니라 다재다능하여 라디오에 나와 노래도 부르는 등 유명인사입니다.소설가로서도 비교적 잘나가는 편이구요.하지만 동림은 여동생에 비해서는 그다지 잘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추사>를 쓰면서 한승원은 동림과 상우를 겹쳐 생각했고 그래서 그 이야기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상우는 서자였지만 추사를 깍듯이 모셨다고 합니다.거의 같은 시대의 인물인 프랑스의 뒤마 부자를 보면 또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삼총사>와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통해 대중역사소설의 신기원을 개척한 알렉상드르 뒤마 역시 재주있는 서자를 두었지요.<춘희>의 작가가 바로 그입니다.사람들은 두 사람을 구별하게 위해 아버지 쪽을 뒤마 페르,아들은 뒤마 피스라고 부르지요.뒤마 페르는 소설이 많이 팔려 상당히 부유하게 살았고 호화로운 생활을 했습니다.당시의 프랑스는 우리나라와 달리 서얼차별법이 없었기에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못부르는 일도 없었고 두 사람 사이는 상당히 좋았습니다. 말년의 뒤마를 끝까지 지킨 서자 뒤마 페르였습니다.
그런데 서자가 워낙 유명한 소설가인지라 후세사람들은 뒤마의 본처소생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오로지 자식이라면 <춘희>의 작가만 기억하게 되었지요.서화담과 황진이에 대해서는 일화가 있지만 서화담의 본처가 누군지 모르는 것도 황진이가 워낙 유명한 사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유명하지 않은 사람을 기억하지 않습니다.한승원 역시 동림도 강처럼 잘나가는 작가가 되기를 바라겠지요.어버지가 작품 속에서 추사와 상우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쓴 것을 보고 동림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