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에 대한 묘사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미묘합니다.예전에 일어났던 논란들을 보면 "뭐 이런 걸 가지고 이렇게까지 규제를 해야 했나..."하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에는 대단히 심각했던 모양이지요.너무 옛날까지 갈 것 없이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일만 해도 지금 시각으로 보면 실소를 금치 못할 정도로 우스꽝스러운 사건이 많았습니다.엄숙한 도덕군자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그 당시 글을 읽어보면 참...말이 안 나오지요. 

   휴전협정 직후에 정비석의 <자유부인>을 비난한 서울대 교수 황산덕은 지금 생각해 보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사실 자유부인은 지금 시점에서 보면 싱겁기 그지 없는 내용인데 단지 교수가 나온다고 해서 교수인 황산덕이 발끈한 거지요.게다가 이런 소설이 우리나라에 유행하는 것은 큰 문제라며 "중공군의 몇 사단에 맞먹는 해악이다"고 비분강개했지요.황산덕은 그냥 자기 전공분야만 벗어나면 아무 것도 모르는 그런 교수가 아니었습니다.풍부한 독서와 사색으로 문장력도 좋은 편이지요.종교에 대한 연구도 깊어서 특히 불교사상에도 일가견이 있었습니다.그런 사람도 성문제에 대한 편협함과 예술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지금 생각하면 웃음거리 밖에 안 되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소설보다 대중연예 쪽에선 더 엄격한 도덕의 잣대를 들이댔습니다.60년대 초 이금희라는 글래머 가수가 '키다리 미스터 김'이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었다고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음란하다는 거지요.67년에 윤복희가 미니 스커트를 선보이자 난리가 났습니다.세상 말세다 어쩌구 저쩌구...그러다가 1970년이 되면서 김추자가 딱붙는 판탈롱 바지를 입고 허리를 흔들면서 춤을 추니 또 수군수군...요즘 젊은 것들은 하여간 안 돼...어쩌구 저쩌구... 

    70년대 말까지만 해도 남자가 여자에게 "섹시하네요."라는 말을 했다간 큰일났습니다.성질 고약한 여자한테 이런 말을 했다간 바로 육두문자를 듣게 되었지요.섹시하다는 말은 80년대 중반이 넘어서야 연예계에서 쓰이기 시작해서 90년대가 넘어야 칭찬이 되었습니다.아마  김완선의 등장이 그 계기였을 것입니다.민혜경이 과도기였지요.김완선이 한참 인기였을 때인 90년 경 어떤 지인(당시 50대 초반)은 김완선더러 "저렇게 눈이 확 뒤집어져 가지고...남자들을 홀리게 한다... 역시 여자가수는 패티 김이 제일이여"하고 말했습니다.이제 김완선을 좋아했던 남자들도 40줄...김완선도 40이 넘었지요. 

    영화에서 여자의 젖꼭지를 드러낸 장면이 허용된 때는 1992~1993년입니다.80년대까지만 해도 등과 엉덩이는 보여도 젖꼭지는 안 되었지요.'보카치오 93'이란 영화에서 시원하게 드러낸 젖꼭지를  본 남자 관객들은  "오...드디어..."하는 반응이었습니다.제가 갔던 동시상영관에서는 뒤에 앉은 남자관객 두명이 "와...몇 년 있으면 다 보여주겄구만...우리나라도 인자 많이 발전했네...역시 선진조국이여!"하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1996년 오수비(제 2대 애마)의 복귀작인 '립스틱 짙게 바르고'에는 드디어 전라로 남녀가 성행위하는 장면을 라스트 신으로 3분 이상 보여줘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그리고 1998년 '해피엔드'에선 첫장면부터 전라로 전도연과 주진모가 벌이는 적나라한 성행위 장면으로 젊은 여자관객들이 "어머...어떡해!"하고 당황해 하니 짖궂은 남자관객들이 "아따! 뭣이 어쩐다고 그러요"하고 대꾸하여 극장전체가 웃음바다가 된 기억도 나는군요. 

   최근 2~3년 사이에는 20살 내외의 여성가수들의 노래가 성상품화네 아니네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게다가 남자 연예인들까지 몸자랑에 가세하니 큰일이라고 정색하는 사람들까지 생겼습니다.그 중에는 다소 난해한 용어까지 구사하면서 자신들의 현학취향을 과시하고 개탄과 비분강개를 적당히 섞어주는 글을 매체에 올리는 사람들도 있지요.이런 이들이 꼭 자기는 편협한 엄숙주의나 도덕주의자는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수십년전 정기간행물을 보면 재미있습니다..당시 굉장히 정색하면서 대중예술의 음란함을 근엄함게 질타하던 이들의 글은 지금 보면 웃음 밖에  안 나옵니다.물론 당시에 글 쓰던 본인들이야 굉장히 심각했겠지요.하지만 심각하면 심각할수록 지금 그런 글을 볼 때 더 웃길 뿐입니다.특히 자기들 지식 자랑을 할 심산인지 어려운 용어를 이리저리 어지럽게 구사한 글을 보면 "재수없구만..."하는 느낌도 들지요. 

   어느 시대에나 심각하게 정색하면서 엄숙주의를 설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지금도 그렇습니다.그런 사람들은 수십년 전 도덕군자같은 소리로 대중예술을 질타하던 이들의 글이 지금은 무슨 평가를 받는지 생각해 보고 글을 써봤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가 가장 현대적이고 세련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지금 시대도 몇십년이 지나면 먼옛날 구식의 시대가 되고 맙니다.2010년인 지금은 과거와는 다르다...성상품화가 너무 심하다고 정색하면서 쓴 글도 먼훗날 우리 인생의 후배들이 보기에는 "그땐 이런 일 가지고 이렇게 심각했군.웃기지도 않네"하는 웃음거리 밖에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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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10-02-07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산덕 비슷한 케이스로 류영모가 생각나네요. 성에 대한 집착과 근본없는 공포가 평생 그를 못박아 둔 것 같아요. 그게 아니면 그는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었는데 싶어요.

노이에자이트 2010-02-07 22:32   좋아요 0 | URL
류영모 목사를 말씀하시는지요? 다석을 이르는 건 아닌 것 같구요.

뷰리풀말미잘 2010-02-07 23:32   좋아요 0 | URL
아, 다석 얘기였어요.

어떻게 보면 굉장한 해탈인인것 같은데 섹스문제에 관한한 중세적 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한 인상을 받아요. 류영모 목사로 생각하신 것도 무리는 아니죠. 그가 '집착'이나 '공포'같은 단어가 어울리는 양반은 아니니까요. 그건 너무 심한 평가절하였나요? ㅎㅎ

노이에자이트 2010-02-07 23:33   좋아요 0 | URL
아...그래요...다석의 중세적 사고방식이라...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군요.

비로그인 2010-02-07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하지 못한거죠. 걸 그룹 좋아하는 남자들 손가락질 하면서 정작 자신은 남성 아이돌 보고 헐떡 거리는 것 마냥.

노이에자이트 2010-02-07 23:38   좋아요 0 | URL
좋으면 좋다고 말하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