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들 대다수가 이 세상 외국인은 전부 미국사람이라고 여기던 시대가 있었습니다.우리나라에 워낙 외국인이 없었던 시절 이야기지요.그 시절엔 선교사와 주한미국인을 빼놓고 외국인 보기가 힘들었습니다.가톨릭 신부들 중에는 아일랜드 출신들이 꽤 많았는데 신자들이 신부님의 고향을 미국사람이라고 여겨서 곤혹스러웠다는 일화 쯤은 흔했지요.일본사람이 쓴 책을 보니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맥아더가 군정을 펼쳤던 시절 당시 이야기에 백인은 모두 미국인으로 알았다는 일화가 있습니다.그만큼 큰 영향을 끼친 나라의 여파는 강합니다.
원어민이라는 단어는 21세기 들어와서야 널리 퍼졌습니다.그전에는 외국어 학원의 홍보물엔 '미국인과 회화를! 운운...'하는 광고물이 있었는데 사실 알고 보면 그 학원 강사진에는 캐나다인이나 영국인도 있는데 그냥 미국인 회화라고 해버린 것입니다.영어하는 나라=미국이라는 고정관념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지요.실제로 요즘, 캐나다 인들이 학원이나 학교에서 원어민 강사 노릇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그들은 이런 식으로 자신들을 미국인이라고 단정해 버리는 데 대해 상당히 씁쓸해 하는 편입니다.당연하지요.우리나라 사람들 보고 일본인이나 중국인으로 단정할 때 느끼는 기분과 비슷할테니까요.
예전에 학원강사 노릇을 잠깐 한 적이 있는데 외국어 학원에서 1~2시간 영어를 강의했습니다.그때 원어민 강사진에 캐나다인들이 미국인들보다 더 많았습니다.그런데 그 학원 광고물을 돌리는 할머니들은 "저 미국사람..."이라고 이야기했지요.제가 "저 남자는 미국인이고 저 남자는 캐나다인이예요." 하면 할머니들은 "에이...미국이나 캐나다나 다 똑같은 거 아니우?" 했어요.하지만 그 할머니뿐 아니고 젊은 세대들은 과연 더 나을까요?
우리나라 연속극을 가만히 보면 유학은 모두 미국으로 갑니다.그리고 삼각관계가 깨져서 밀려난 사람은 외국으로 떠나는 것으로 처리하는데 역시 미국으로 떠납니다.이 세상에 외국은 미국만 있는 것도 아닌데도 그렇습니다.대학에서 교수자리가 있어도 미국에서 박사학위 딴 사람이 더 유리하다고 합니다.유럽에서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우리 대학에서는 미국박사를 더 알아준다니까 할 말 다했지요.우리는 일본사람들이 백인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본의 대학에선 미국에서 학위땄다고 교수자리 잡는 데 더 유리하다거나 그런 관행은 없습니다.그들은 외국유학을 공부하거나 자료구입차 가기는 해도 외국유학경력이 교수가 되는 데 유리하다고 해서 가는 일은 없지요.
백인들은 모두 영어를 잘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하지만 남유럽이나 동유럽 사람들은 전혀 영어를 못합니다.미국에서도 히스패닉 계가 많이 사는 곳에선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고 스페인어를 써야만 하는 지역이 많습니다.이 세상에는 여러나라가 많고 그런 다양성이 인류문화를 풍요롭게 하고 있으니 이제 미국 외에 다른 나라도 있다고 생각하는 게 어떨까요? 그런데 이렇게 미국지향의 나라이면서도 실제로 미국사에 정통한 전문가는 의외로 드문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기도 하다니, 미국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어디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