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올더스 헉슬리<연애 대위법>을 읽고 있습니다.을유문화사 번역본인데 역자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유명한 주요섭.1960년에 초판이 나왔으니 고색창연한 책이지요.광주에는 1990년대부터 정음사와 을유문화사 세계문학전집이 헌책방에 쏟아져 나왔는데 그 무렵 구입한 것입니다.처음엔 싸서 구입했지만 읽을 수록 잘 구입했다는 생각이 듭니다.이 번역본들이 나온 60년대~70년대만 해도 아직은 어느 정도 우리말이 우리말다운 면이 많이 남아 있던 때입니다.자연히 지금만큼 번역투 문장이 심하지 않아서 구수한 표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지요.이런 옛책들을 읽은 덕에 부모 세대에도 이미 잊혀진 속담이나 단어를 꽤 많이 알고 있습니다. 제 글이나 말에 번역투가 드문 것도 그 때문이지요. 

  <연애 대위법>을 읽은지 1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이 책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는 작가를 헉슬리가 아니라 학스리라고 표기한 것만 보면 알 수 있지요.사실 주요섭이 태어난 해가 1902년이니까...또 '부유하다'를 순우리말인 '가멸하다'로 쓴 것도 흥미롭습니다.이런 우리 단어를 국어사전 찾아가며 배우는 것도 우리말 공부하는 방법 중에 하나지요.이 '가멸'이란 단어는 정음사판 <아라비안 나이트>를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제가 기록할 때 자주 애용하는 단어 중 하나입니다.물론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쓰지 않습니다.우리말 어휘력이 풍부하다는 걸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남이 모르는 단어만 애용하는 것도 비호감이니까요.

  번역본을 읽다 보면 외국어를 직역해 놓아서 우스울 때가 있습니다.이 소설에도 '사자 사냥꾼'이라는 단어가 나와서 빙긋 웃었습니다.이 단어는 그 전에도 오스카 와일드 작품 번역본('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인지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인지 확실히 기억은 안 납니다만)에서 본 적이 있었지요.사교계를 묘사하는 대목인데 왜 사자 사냥꾼이 나오는지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서, lion hunter를 혼비영영사전에서 찾아보니까    '사교계의 유명인사를 쫓아다니기를 좋아하거나 초대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는 뜻이더군요.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사전은 어떻게 쓰여있는지 알아보려고 여러 영영사전을 뒤적거려 봤습니다.처음에 이 단어를 찾았을 때는 혼비 영영사전만 갖고 있었거든요.그런데 웹스터와 롱맨,콜린스 코빌드를 다 뒤져 봐도 이 단어가 안 나오는 것입니다.단지 lion에 '사교계의 유명인사'라고 풀이되어 있기만 하구요. 

 이제 사교계의 라이온 헌터는 어떤 단어로 바뀌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이런 단어는 직역하지 않고 풀어서 독자가 알 수 있게 해야지요.사실 어떤 번역본은 문맥상 society를 '사교계'라고 번역해야 할 것을 계속 '사회'로 번역한 것도 있습니다.처음엔 이런 식의 무성의가 짜증났지만 나중에 시간이 흐르다 보니 오히려 직접 사전을 찾아서 더 공부할 기회를 갖게 되는 이점도 있더군요. 

 <연애 대위법>은 우리나라에서 그다지 많은 독자를 가진 소설은 아닙니다.우리나라에선 주로 <멋진 신세계>가 많이 읽히지요.하지만 저는 헉슬리 작품 중에는 중편인 '어린 아르키메데스'와'지오콘다의 미소' 다음으로 좋아하는 소설입니다.빈정거림은 짜증을 자아내는 것이 상례인데 헉슬리는 유쾌하게 빈정댈 줄 압니다.그리고 먹물들의 속물근성 묘사에는 천재적이지요.그래서 이 두툼한 소설을 며칠동안 틈틈이 읽을 예정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카스피 2009-11-07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더스 헉슬리의 연예 대위법이라,노이에자이트님 말씀처러 을유에서 나온후에는 계속 재간이 안되는 것 같아요.저도 한때 헌책방에서 을유 세계문학전집을 구할때 이책을 샀었는데 촘촘한 글씨에 새로 읽기,게다가 굉장히 두툼한 페이지로 인해 읽는것을 포기한 기억이 나는데 이글을 읽으니 갑자기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드는군요^^

노이에자이트 2009-11-08 14:43   좋아요 0 | URL
상당한 인내심을 갖추고 읽는다면 헉슬리 특유의 재치있는 풍자와 유머를 맛볼 수 있는 책입니다.그리고 <연예대위법>이 아니라 <연애대위법>입니다.남녀가 사랑한다는 그 연애에 대한 이야기지 연예계 이야기는 아닙니다.
준비운동 겸해서 영한 대역판으로 나온 헉슬리 단편선(사사영어사)를 보셔도 됩니다.헉슬리 문장은 영어독해 고급편 교재에 단골로 나올만큼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므로 영어공부 겸해서 읽어도 좋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