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돈 먹기가 쉬운 줄 아나...돈벌기가 힘들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흔히 하는 말입니다.연속극에서도 자주 나오는 대사더군요.그런데 이 말이 참 이상하다 못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내가 열심히 일하면 내 노동력을 요구한 사람은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그런데 그것이 왜 남의 돈인가요? 그 사장님이 자기 돈을 내게 주는 건가요? 얼마나 마음씨가 좋아서 자기 돈을 내게 준답니까? 

  힘들여 일하는 직원을 '내 돈 빼먹는 것들!'이라고 여기는 고용주가 있고,그런 고용주들의 기세를 올려주는 '남의 돈 먹기가 쉬운 줄 아나...'하는 말은 이제 쓰지 맙시다.우리나라 사장님들도 직원들에게 월급 주는 걸 마치 은혜라도 베푸는 양 생색내지 말구요.밀린 월급 좀 달라고 하면, "누가 떼먹는데? 왜 이렇게 보채는 거야? 나도 내코가 석자나 빠졌다구!"하면서 요리조리 차일피일 미루고...그러다가 밀린 월급 주는 날엔 숭고한 선행을 베푼다는 듯 온갖 거드름을 다 피우지요. 

 이런 화상들이 꼭 하는 말이 있습니다."야! 이것들이 은혜도 모르고 말이야...너희들이 누구 덕에 먹고 사는데...오갈 데 없는 것들을 거둬 줬더니 고마운 줄을 몰라...하옇든 머리 검은 짐승 거두는 게 아니라는 옛말이 그른 것 없다니까...그래! 너희들 없어도 이 회사에 취직하겠다는 사람들 줄서서 기다리고 있다...에이 이런 놈들 데리고 내가 미쳤지..."

  월급이 제때 안 나오는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정해진 날에 꼬박꼬박 월급 주는 직장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릅니다.물이 끊기기 전에는 물의 고마움을 모르듯,월급날 월급 받는 사람들은 월급날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나는 해괴한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타들어 가는 속을 모르지요.체불임금에 상심해 있는 사람에게 "남의 돈 먹기가 쉬운 게 아니야..."하면서 마치 인생의 진리라도 가르쳐 주는 양 고담준론을 읊는 사람들에게는, "여보쇼! 왜 그 돈이 남의 돈이야!"하고 한바탕 하고 싶겠지요. 

  이런 악덕 업주를 잘 그린 장편이 있습니다.유순하<생성>(풀빛)과 이문열<미로일기>(양우당).둘다 노조와 기업주의 충돌을 그리는데 주인공이 대학물 먹은 사무직 직원입니다.이문열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갖기 힘든 독자도 많겠지만 그의 이야기 솜씨는 역시 빼어나지요.<생성>은 아직도 시중 서점에 있지만 <미로일기>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입니다.저는 두 작품 모두 읽은지 꽤 오래 되어 어번 달에 다시 읽어보려 합니다.

  회사에서 월급도 못받아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명절날 비호감 친인척이 "그런 직장 그만두고 딴 데 찾아보지 그래...자네도 이제 애들 생각도 해야 하고..."하면서 생각해 주는 척 속 뒤집는 소리를 한다면, 진짜 명절날이 징글징글할 것입니다."네가 내 아이 공책 한 권을 사다 줘 봤냐?"고 한바탕 하고 싶지만 참으십시오. 

  동네 어느 집에서 추석날 말다툼하는 소리가 들리더군요.그런 말다툼은 모두 어느 한쪽이 말을 함부로 하는 데서 발단합니다.그런데 말 함부로 하는 버릇은 나이 먹었다고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어렸을 때 몸에 붙으면 평생 가도 그 버릇 못 고치지요."남의 돈 먹기가 쉬운 줄 아느냐"하고 말하는 버릇도 일단 몸에 붙으면 떼내기 힘듭니다.쥐꼬리만한 월급이라고 하지만 그런 적은 월급이라도 제 때 제대로 받아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월급쟁이들이 세상엔 많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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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10-08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장들은 자기가 먹여살리는 직원이니 개인적 일 까지 부려먹는 걸 정당화하죠.

노이에자이트 2009-10-08 22:17   좋아요 0 | URL
공과 사 구별 못하는 것은 비단 직장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학교나 군대에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사적으로 부려먹지요.아주 어렸을 때부터 습관이 되어 있다고 보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