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완상은 미국 에모리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고 미국에서 교수생활도 한 사회학자이지만 우리 말의 눈치라는 단어를 영어로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고민했다고 합니다.그만큼 눈치라는 단어는 우리 한국 특유의  권위주의 질서의 산물이라는 증거지요.다음은 그의 대표작 <민중과 지식인>의 195~197쪽에 나오는 내용입니다.이런 쉬운 문장으로도 우리가 사는 사회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날카로운 시각을 제공해 줄 수 있지요. 

 ----눈치를 잘 보는 것이 우리들의 개인의  또는 사회 전반의 생존 위협을 줄이는 데에 효과적인 방법으로 오랫동안 인정받아 왔다면,눈치 문화를 그리고 눈치 성격을 우리는 다분히 갖고 있는 것 같다.나는 눈치에는 적어도 다음 몇 가지 특징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눈치는 수평적인 행위라기 보다는 수직적인 행위이다.즉 조직이나 집단 안에서 서로 비슷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그리고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주로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된다.눈치는  수직적이지만 좀더 정확히 말하면 상향적인 특징을 갖는다. 

  둘째로 상향적인 눈치는 일종의 자기보호 수단이다.아랫사람이 웃사람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을 재빨리 알아내는 능력이다.즉 아랫 사람,약한 사람,없는 사람이 웃사람,강한 사람,있는 사람의 속셈믈 재빨리 읽어내는 능력이다.이러한 능력은 아랫사람이 적어도 현재의 자기 지위를 보존하는 데 절대로 필요하며,나아가서 현재의 자기 위치를 좀더 높이려는 데에도 대단히 필요한 방편이다. 

  세째로 이러한 능력은 결코 개방적이거나 합리적인 것이 아니다.이것은 비합리적이고 폐쇄적이다.왜냐면 눈치를 보게 되는 위 아래 관계는 터놓고 떳떳하게 토론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개방적으로 토의를 할 수 있고 시비를 가릴 수 있고,또 합리적으로 토론이나 대화를 이끌어 갈 수 있으면, 구태여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눈치는 분명히 권위주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더욱 활발히 움직이게 된다.권위주의에 빠져 있는 상관은 결코 자기의 속뜻을 분명히 공개하지 않는다.부하들에게 "너희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군림할 가능성이 크다.부하는 그만큼 상관의 의중을 알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왜냐면 잘못해서 속뜻을 잘못 파악하여 눈치 없이 행동하게 되면  막심한 피해가 오기 때문이다.이와 같은 폐쇄적인 분위기 속에서는 위 아래 사이에 이루어지는 비합리적인 대화인 눈치는 개방적이고 합리적인 민주적 대화를 하기 어렵게 한다.여기에 눈가림이 생기고 실속없는 전시효과와 혀례허식이 난무하게 된다.여기에 꿋꿋한 주체의식이 싹트기 힘들다. 

  눈치보는 사람은 자신 없는 사람이요,소신이 없는 사람이요,용기가 없는 비굴한 사람이다.마찬가지로 눈치보는 집단이나 사회는 비주체적인 사회이다.눈치보는 존재는 허한 존재요,열등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존재이다.그리고 그는 경직하고 굳은 존재이다.눈치보는 인간이 웃사람이 될 때에 그는 아랫사람에게 더욱 비상한 눈치력을 발휘하도록 은근히 강요한다.이러한 눈치의 악순환 속에서는 건전하고 발랄한,생산적이고 민주적인 문화가 탄생할 수 없다.----이하 생략

  예수의 정신은 낮은 곳에 임하는 정신입니다.물도 더 낮은 곳으로 흐르다가 큰 강과 바다가 됩니다.저는 우리나라 성격 번역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 예수가 제자들이나 집회에 참가한는 사람들에게 반말을 쓰는 장면입니다.아마 그가 한국 사람이라면  자기 제자들이나 지지자들에게 존대말을 썼을 것입니다.그것이 자신을 낮추는 예수의 정신일 것입니다.위계질서의 위쪽에 속한 사람들(연장자,선배,상급자)이 먼저 자신을 낮추고 존대어를 사용하는 것은 한국 특유의 권위주의 질서를 없앨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권위주의적 성격을 한마디로 말하면 비굴한 인간을 만들어 내는 성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비겁한 자들은  민주주의를 일구어 낼 수 없지요.그래서  민주주의를 생활 속에 뿌리 내리려면 권위주의적 질서를 근절하는 것을 병행해야 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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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4-04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장 내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서라도 필요하지요. 히딩크가 한국 축구 대표팀을 맡았을 때도 이런 문제에 부딪혔다고 들었어요. 본사와 공장이 따로 있는 회사의 경우 사장이 공장을 갈 때면 공장직원들이 군인들 처럼 정렬해있는 상태로 사장을 맞이 한다거나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KBS 개그맨들의 군대식 위계질서 라던가 그런거 보면 정말 꼴 같지 않더라구요. 회사에 누가 될 까봐 거래처 사람들에게 조심조심 대해야 하는 것도 참 더러워요.

노이에자이트 2009-04-04 22:38   좋아요 0 | URL
히딩크가 한 말-패스할 땐 한시가 급한데 왜 이름을 안 부르고 형이라는 말을 붙이느냐 이름만 붙이고 바로 패스하라.
비행기에 비상한 상황일 때도 관제탑에서 직책을 뒤에 꼭 붙이면서 부르니까 다른 나라에 비해서 바로 행동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위아래로 나누는 버릇이 있으니 평등관념이 끼어들 여지가 없지요.

쟈니 2009-04-06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정말 강력 추천하고 싶은 내용입니다. 흔히, 영어에 존댓말이 없다고 하는데, 저는 가끔 역으로, 반말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영화나 소설의 번역에서 분명히 원문에는 양자 모두 동일한 어투를 쓰는데, 번역문에는 명확하게 존대/반말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죠..

노이에자이트 2009-04-06 22:00   좋아요 0 | URL
굳이 영어를 거론하지 않고 같은 유교문화권인 일본이나 중국과 비교해 보기만 해도 우리나라의 수직질서는 과도한 면이 있지요.
예전엔 남녀의 대화에서 남자는 반말 여자는 존대말로 번역했지요.동등한 말을 쓰게 된 것은 최근 몇년 동안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