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탐험대들의 상당수는 그들 국가의 전쟁목적을 위한 탐사를 겸했고 거기엔 수많은 학자들이 함께 따라갔습니다.제국주의와 제 3세계 연구는 함께였고 그것은 동북아의 오지 탐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연해주 지역의 시호테알린 산맥을 전세계에 알린 <데르수 우잘라>의 작가 블라디미르 아르세니예프 역시 작가이자 지리학자 이전에 군인 겸 탐험가였고 제정 러시아 말기 그가 시호테알린 산맥을 집중적으로 탐험험한 것 역시 그런 범주를 벗어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물론 그는 당시 그를 안내했던 고리드 족의 노인 데르수 우잘라에 대해 애정 어린 필치로 시종일관했고 고리키까지 이 작품을 극찬한 일화가 있긴 합니다.요즘 자연친화라는 말이 유행이어서 인디언들의 자연사랑 이야기 등이 많이 알려지고 그런 흐름을 타고 다른 나라보다 더 늦게 알려진 <데르수 우잘라>도 인터넷 같은 데를 보면 감명 깊었다는 서평이 상당히 많습니다.더군다나 그가 아르세니예프를 따라 하바로프스크까지 간 뒤 강도에게 살해당하는 최후는 자연만을 살아온 순박한 사나이와 사악한 도시문명이 피해자-가해자 구도를 형성하면서 멜로 드라마(우리나라에선 이 용어를 애정드라마로 해석하는 모양인데 이건 잘못된 해석입니다)적 요소까지도 갖추고 있습니다.덩달아 구로자와 아키라가 감독한 영화까지 찾아보는 사람이 늘었다고 합니다.
데르수 우잘라가 살았던 시호테알린 산맥의 비킨 강 상류는 지금도 연해주의 대표적인 야생동물의 천국이며 소수종족들이 거의 옛날 그대로 살고 있습니다.그들 대부분은 수렵과 채집생활을 하고 있는데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이 곳 연해주는 춥고 배고픈 땅만은 아닙니다.산에는 먹을 수 있는 나물과 나무열매가 상당히 많고 강에는 살진 물고기가 많습니다.호랑이가 먹이로 하는 붉은 사슴이 아직은 많아서 호랑이도 가끔 출몰하구요.잊을 만하면 마을에 내려와서 가축도 물어갑니다.한때 30마리가 될 둥 말 둥 하던 호랑이가 요즘은 300마리를 넘겼다고 하니 다행입니다.이 곳의 소수민족들은 예전과는 달리 요즘은 총과 그물을 사서 수렵과 어로생활을 합니다만 여전히 남획은 하지 않습니다.모 방송의 다큐멘타리를 보니 그물에 잡힌 것 중 너무 어린 물고기와 알을 배고 있는 물고기는 놔주더군요.
<데르수 우잘라>에는 연해주 지역으로 이주한 조선인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대체로 우리나라에선 만주나 연해주로 이주한 우리 조상들의 고난을 이야기합니다만 그 곳에서 수렵이나 어로생활을 하던 토박이 종족들에겐 조선인들의 농경방식인 화전농이 삶에 위협이 되더군요.화전농법이라는 게 숲을 태워버리는 것이라서 동물들이 도망을 가버리니까요.아...그럴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래서 화전농은 약탈농업이라고도 하지 않습니까.살기가 힘들어 그 곳에 갔지만 화전농법 때문에 큰 피해를 보는 또다른 약자들이 있었다는 사실...
가린 미하일로비치는 소설가로서는 이제 거의 잊혀진 인물입니다.하지만 아직도 러시아에서는 그의 이름이 시베리아의 개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특히 시베리아 최대의 도시인 노보시비르스크에는 그의 이름을 딴 가린 미하일로비치 광장까지 있으니까요.그는 원래 철도 기술자였는데 한때는 인민주의 운동에도 공감하고 말년에는 고리키와도 친교를 맺었습니다.그의 소설은 우리나라에는 번역된 게 없지만 <백두산 민담>이 창비아동문고에서 나와 있습니다.그리고 그의 여행기<조선,만주,요동 기행>은 1898년 9월에서 10월까지 경흥,회령,무산을 거쳐 두만강을 거슬러 올라 백두산 정상에 오른 후 압록강,신의주에 도착하기까지 일정을 적은 기록입니다(단국대 출판부에서 1981년에 번역본이 나왔는데 번역자는 러시아 문학전공의 김학수 교수).이 당시 통역을 통해 조선인들에게서 틈틈히 조선의 민담을 채록한 것이 <백두산 민담>입니다.
러시아는 만주 및 조선 북부 지역을 1895년부터 탐험하기 시작하는데 가린의 이 여행기 역시 1898년 즈비아빈체프 러시아 왕립 지리학회가 파견한 조사단의 일원으로 그가 참가한 결과물입니다.이 조사단은 대규모로 지형,동식물,경제상황,인구 등을 조사했지요.가린은 철도 전문가였기 때문에 이 곳에 철도를 놓는 문제도 보고를 했을 것입니다.당연히 조사단은 군사적인 문제도 고려했을 것입니다.가린은 러일 전쟁 때 종군하여 역시 종군기록도 남기고 있으니 이 종군기를 읽으면 그가 속한 탐사단이 군사적인 목적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 있을 겁니다.
<백두산 민담>이 중요한 자료인 것은 이 기록이 일본의 지배를 받기 이전의 우리나라 민담의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사실 지금 우리가 우리 전통의 옛이야기로 알고 있는 상당수가 일제시대의 영향을 받아 일본 민담이나 동화가 섞여 있고 거기다가 일본을 거쳐온 유럽 이야기까지 섞여 있는 형편입니다.그랬기 때문에 19세기 말 산골 주민에게서 직접 채록한 이 기록이 중요한 것입니다.창비아동문고 번역본이 가장 구하기 쉽습니다만 다른 책을 보니 창비판에 몇개의 이야기가 빠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완역본은 <조선 설화>안상훈 역(한국 학술 정보2006)입니다.고리키는 이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다행인 것은 가린은 비교적 조선의 인심이나 풍경 등에 관해 비교적 호의적으로 묘사했다는 것이지요.고리키가 이런 책을 통해서 조선을 접한 것이 다행이라고나 할까요.여하튼 가린의 기행문도 거의 대부분 조선에 할애하고 있으니 러시아 작가 중 조선을 직접 답사하고 기록을 남긴 유일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린 미하일로프스키를 자세히 다룬 논문은, 이회수'가린 미하일로프스키의 여행기에 비친 1898년의 한국'인데, 진재교,임경석 외 <근대 전환기 동아시아 삼국과 한국-근대 인식과 정책>에 수록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