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주의 전두환 평가를 읽으면서 5공 당시 일을  알아보려고 그 무렵 나온 책이나 정기 간행물을 뒤적이고 있는데 1985년 전후로 나온 한국 현대사 관련 책이나 정기간행물 특집에서는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우리는 지난 30~40년전의 일에 대해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다...그 당시 30~40년 전이면 해방 무렵에서 한국전쟁인데,그렇다면 20년이 더 지난 지금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제 3공화국 말에서 유신 초기까지입니다.3선 개헌에서 유신,긴급조치 시대.그렇지만 역시 대답은 똑같습니다.이러저러하다고 말은 많이 하고 뭔가 들은 풍월은 있는 것 같은데 사실 제대로 공부하거나 아는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무렵 특히 굵직하다고 할 수 있는 사건은 역시 유신 선포입니다.1972년 10월 17일.아무도 모르게 진행된 극비작전.국정감사를 진행 중이던 국회의원은 이 날 난 데 없는 계엄선포와 대통령 특별 담화를 듣고 국회가 해산되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3선 개헌에서 시작된 장기집권의 막바지 결정타.최근 이 당시의 사건에 대한 회고록이나 인터뷰 등을 대충 훑어보고 있는데 역시 공부는 직접 이런 사료들을 정독하면서 해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워낙 이 시대에 대해서 들은 풍월이 많아서 아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을 뿐 무슨 사건 하나  제대로 말할 수 있는 배경지식이 별로 없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지요.

  특히 유신 시대라고 하면 유신의 철권 통치와 이에 저항하는 민주화 투쟁이라는 도식을 우선 설정해 놓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시 권력층 내부의 투쟁에 대해서는 그냥 간과하기 마련이지만 이 문제도 그냥 넘어가서는 안되지요.특히 김종필과 반 김종필 파의 암투가 절정에 달한 1971년의 4인방 몰락 이후 김종필 세력과 이후락 세력간의 알력은 유신을 읽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암호입니다.왜 김종필은 박정희의 후계자가 되지 못했는가 하는 의문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유신 선포 직후 모 기관에 끌려간 13명의 국회의원 중 가장 오랫동안 구타와 고문을 당했던 최형우.그는 1972년 8월 임시국회 때 김종필 측근으로부터 드골 식 장기집권 계획이 권력내부에서 추진 중이라는 것을 폭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대 정부 질의에서 실제로 김종필 국무총리에게 이걸 질문합니다. 이 당시 정부에서는 비밀리에 대만 총통제와 드골 대통령제,스페인 프랑코 등을 연구하는 팀이 있었고 갈봉근,한태연 두 교수가 브레인으로 이 팀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아마 최형우의 이 질의를 듣고 유신을 추진 중이던 핵심들은 가슴이 덜컥 했을 것입니다.그래서인지 고문하던 이들은 그 정보를 누구한테서 들었느냐고 엄청나게 괴롭혔구요. 

  김종필은 3선 개헌 때도 반대하다가 나중엔 대세를 따르겠다는 듯이 순응합니다.유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박정희는 3선 개헌 지지를 호소하면서 이번이 마지막이고 이제 후계자를 기르겠다고 합니다.그 후계자가 바로 나라고 생각한 김종필.그러나 장기 집권이 시작되면 대권의 꿈은 물 건너 가버리기 때문에 유신에 대해 상당히 저항했다고 합니다.하지만 역시 유신이 기정사실화 되니까,나라를 위해서 어른(김종필은 늘 박정희를 어른이라고 합니다)에게 좀 더 기회를 드리자...하고 순순히 물러나지요.그래서 당시 공화당 의원 중  끝까지 3선 개헌 반대를 고수하며 아예 공화당을 탈당한 소수 중 한 명인 예춘호는  "박정희는 김종필을 불신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권력게임의 미묘함을 알 수 있는 사연이지요. 

  이 시기 관료들에 대해서는  그 동안 경제관료 위주로 공부했습니니다만 역시 이데올로기를 맡은 교육관료들에 대해서도 알아보려고 합니다.특히 유신이념을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두 명의 문교장관 유기춘과 황산덕.유씨는 유신이념의 반대자는 대학에 있을 필요가 없다며 학생운동과 이른바 정치교수들에 대해서 가차없는 칼날을 휘둘렀습니다.그가 장관으로 일하던 때에 학도호국단이 고교 이상의 모든 학교에 구성되었지요.너무나 열심히 일했는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그 후임이 황산덕.그 역시 유신만이 살 길이라는 교육지표에 충실했습니다.유기춘이 열렬하고 활동적인 성격이었음에 반해 황산덕은 성격이 말이 없고 점잖아서 보살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하지만 그가 법무장관 재직 시절엔 그 악명높은 인혁당 재건위-민청학련 사건이 있었고 사형선고 한 날 교수형이 집행되는 세계사에 없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그리고 사상범이 형기를 마쳤더라도 다시 투옥할 수 있는 사회 안전법의 제정에도 참여했지요. 

 모두가 아는 체하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하는 말이 있지만 유신 전후의 역사에 대한 우리들 역시 그렇지 않은가 생각해 봅니다.박정희는 60년대 초기만 해도 다른 사람을 불러 놓고 이야기를 듣는 편이었지만 점점 자신이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지다가 유신 이후에는 다른 사람에게 자기 주장만 계속 이야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점점 독불장군이 된 것이지요. 

  유신을 정당화한 지식인들에 대해서 알아보면 그들 중엔 박정희 초기에 비판적인 이들도 상당히 많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좀 전에 언급한 황산덕이 대표적입니다.그는 군정을 비판하다가 62년에 투옥되기도 했고 한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하여 대학에서 파면되기도 했습니다.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나니 유신 당시 악명 높은 시국사건 때 유신옹호의 선두주자로 변신하더군요.우연히 당시 자신의 행위를 해명하는 글도 입수했는데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국가에 봉사했다고 주장했구요.1990년대 중반 재야 민주화 세력들이 대거 민자당에 입당해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지만 자유당을 비판하다가 공화당에 참여한다거나,공화당 초기에 비판하다가 유신 무렵엔 옹호자가 된다거나,박정희 땐 반정부 투쟁하다 5공 때는 민정당 의원이 된 이들도 꽤 많습니다.<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좌익서적이라고 욕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 책에 실린 논문의 저자인 김학준도 5공 때 국회의원이 되더니 노태우 정부 땐 청와대 대변인까지 하지 않았습니까.그 책에 논문이 실린지 2년이 되지 않아서 민정당 전국구 의원이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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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3-14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기존에 세워진 틀에 의해서만 본다면 못보고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이 많겠군요.
사실 저도 조금만 까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니 제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3-14 16:29   좋아요 0 | URL
현대사는 저널리즘의 영역이지 학문의 영역이 아니라고 하는 생각은 외국에도 있는 것 같습니다.그대신 학문적인 손질을 거치지 않는 날 것 그래로의 자료가 많지요.고정관념을 치우고 검토한다면 얻을 것이 많을 것 같아요.

[해이] 2009-03-15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승연입죠ㅋㅋㅋ!!@

노이에자이트 2009-03-15 14:23   좋아요 0 | URL
그러면 그렇죠.

Mephistopheles 2009-03-16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이에자이트님의 이번 페이퍼에서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체제를 갈아타고 일명 변질자가 된 사람들이 과거에나 현재에나 많기도 많다는 사실이네요. 전 이런 생각도 합니다. 체제를 갈아타고 변절자의 딱지가 붙어도 정작 자신만은 바른 선택을 했다고 줄곧 주장하는 모습. 이거 아무리 좋게 봐도 자기최면으로 밖에 안보여요. 우리나라에만 유독 이런 인물들이 많은 걸까요. 아님 다른 나라에도 이런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지 궁금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3-17 21:58   좋아요 0 | URL
바른 선택을 했다고 주장하는 해명성 글도 모으고 있는 중입니다.
다른 나라도 소신을 꺾은 이들이 많지요.일본에서도 1933년에 무더기 전향이 있었고 중국의 양계초,강유위도 복고주의자가 되었지요.

노이에자이트 2009-03-19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향에 관심이 많습니다.탈레랑은 물론이고 독일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지요. 제 성격이 상당히 냉정한 편이라서 여러 사례를 모으는 데 차분하게 임하고 있습니다.단지 일본에서는 대량전향에 대한 학문적인 분석이 꽤 깊은데 우리나라도 이제 그래야 할 때도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세계 여러나라에서 비슷한 사례를 모아보려고 합니다.물론 이런 연구에는 역시 냉정한 학문적 객관성이 필요하겠지요.
함석헌이나 장준하에 대해서는 최근 사상계 인맥들에 대한 연구가 진척된 상황이라서 저도 초미의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특히 이들이 5,16초기 박정희 및 혁명주체 세력과 맺은 관계에 대해서.

2009-03-25 2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