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신영복(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씨가 2001년 4월 19일에 관악 민주포럼(70년대 민주화 운동을 한 서울대 출신자 모임)의 창립 1주년 기념강연회에서 한 내용의 마지막 대목입니다.강연의 전체내용은 2001년 신동아 7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대개의 인텔리 출신들은 특히 서울대 출신들은 모든 문제를 논리적으로 접근하려 합니다.다른 사람과의 논쟁도 무조건 논리 정합적인 방식으로 전개하려고 하지요.자연히 논의는 논쟁이 되기 쉽고 소모적인 사상투쟁으로 이어지는 경향을 띄지 않을 수 없습니다.그러다 보니 논쟁 자체가 실천이 되고 마는,다시 말해서 실천적 성과는 없어지게 되는 것이지요.오리알에다 제 똥 묻혀서 굴러가듯 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껴안고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논리나 냉철한 이성을 신뢰하지 않습니다.따뜻한 가슴이 결정적인 것이라고 보지요.인간적 덕성을 가지고 사람을 포용해 나가는 것은 따뜻한 가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일한다는 것은 인간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대부분이지요.제가 출소한 뒤에 느낀 것입니다만 소위 운동권 문화를 간접적으로 느낄 기회가 많았습니다.그때 제가 느낀 것은 '저것은 옛날에 내가 하던 걸 여태 하고 있구나'하는 새삼스러운 반성이었습니다.제가 학교 다닐 때는 상당히 까다로운 선배였다고 들었습니다.얼마든지 부드럽게 얘기해도 될 것을 칼로 끊듯이 논리를 세워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논의까지 쉽게 사상투쟁으로 넘어가는 식이었지요.광복 전후에도 그런 문화가 팽배했다더군요.콤그룹 등 당시 운동가들은 일제 강점기의 엄혹한 상황에서 오랫동안 소모임으로 분산 고립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논의 구조가 직선적이고,또 구성원 간의 관계도 정보에서 조금만 소외되면 굉장한 소외감을 느끼는 그런 구조였다고 합니다.참으로 잘못된 전통입니다.문제는 지식인 일반적 경향이 이러하다는 데 있습니다.아주 좋지 않은 작풍이지요.이제는 반성하고 그런 것들을 좀 버릴 때도 되지 않았나 싶어요."
이 강연은 신영복 씨가 주로 시민,노동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대학물을 먹은,특히 인문사회 과학 쪽 독서를 한다고 나름 자부하는 사람들 일반에게도 생각해 볼 기회를 줄 수 있는 내용이라 제가 인용해 보았습니다.제가 예전에 어떤 성직자가 "저 목회자는 설교할 때 언변도 좋고 독서도 많이 해서인지 해박하다.하지만 설교하면서 세치 혀로 사람을 내친다.저걸 고치지 않으면 사람들이 다 떨어져 나갈 것이다."고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신영복 씨는 신뢰에 바탕한 연대를 강조했고 거기에 필요한 덕목을 위에서 지적한 것입니다.
작년에 강준만 씨가 한국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진보적인 견해를 지니고 있지만 성질이 더러워서 인간말종으로 유명한 모 씨가 있다...".그런 인간말종이라면 아무리 사상적인 동지고 뭐고 우선 정나미가 떨어질 것입니다.그런 인간은 일상생활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할 리가 없고 당연히 신뢰를 얻지도 못할 것입니다.이 세상은 칼이나 몽둥이를 휘둘러서 만드는 적보다 말이나 글로 남을 내치면서 만드는 적의 수가 훨씬 많지요.저도 수양이 덜 되어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지나 않았는지 반성해 봅니다.어쩌면 책을 통해서 배우는 지혜보다는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배우는 지혜가 더 소중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