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에는 학자들이 집중하는 시기가 있다.해방공간이라는 1945~48년.그리고 그 이후부터 한국전 발발까지는 소외지대.한국전은 정치외교학 쪽에서 연구성과가 꽤 나왔지만 1950년대도 연구가 뜸하다.굳이 들자면 조봉암과 진보당이 최근에 각광받고 있는 분야다. 서중석의 두툼한 <조봉암과 1950년대>상,하 그리고 그 이전, 서른을 갓 넘긴 박태균이 냈던 <조봉암 연구>하지만 그 이후부터 4,19까지 또 공백지대.특히 제2공화국에 관해선 한승주<제 2공화국과 한국의 민주주의>가 1982년에 나온 뒤 단행본은 깜깜 무소식이다.실패한 자에 대한 무관심인가.아마 장면이나 윤보선이란 이름조차도 생소한 세대가 학부모가 된 것 같다.

  우리 역사에 미국인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말들은 많이 하지만 정작 그런 미국인을 꼽아보라면 한 명도 모르는 사람들도 많으리라.우선 주한 미국대사가 떠오를까?  그 다음은 미 8군 사령관 정도? 그 외에 음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른 인물들은? 최근에 이승만 살리기 풍조에 힘입어 그의 미국인 고문인 로버트 올리버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그가 쓴 이승만에 관한 책이 묵은 때를 벗고 새단장으로 서점에 깔렸다.그런데 올리버가 쓴 책은 생각나지만 정작 올리버에 대해선 나 역시 그다지 아는 것이 없다.시라큐스 대학 교수였다는 것 말고...지금도 100살 정도의 나이로 살아있다는 말을 들었다.이제 이승만 뿐 아니라 그를 도왔던 미국인들에 대해서도 독서할 때 좀 신경써서 눈여겨 봐야겠다.

  우리 역사상 가장 애매하게 처리되는 정권이 장면 정권이리라.일반인들에게 2공화국에 대한 인상은 흐릿하다.이승만과 박정희라는 장기집권한 지도자 틈에서 그리 큰 업적을 남기지 못한 정권이라는 인식이 강하다.게다가 이 정권은 주요 지도자 대부분이 장면을 포함해서 일제 때 관리를 지낸 이들이 많았고 또 역대정권 중 가장 미국과 조용히 지낸 정권이었다.그래서일까 장면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의 미국인 관리에 대해서도 요즘엔 관심 밖이다.무능한 정권이라며 역사책에서도 간단히 몇줄 나오고 끝이다.

  장면 총리의 최측근이 도날드 웨터카라는 미국인이다.하지 장군을 따라 오키나와에서 한국으로 온 그는 원래 미군정 시절 정보계통에서 일했다.부인이 한국인 임수영인데 그녀의 동창인 경향신문 기자 윤금자를 통해 장면을 알게 되었다. 경향은 가톨릭 계열 신문이었고 자유당 시절 대표적인 야당지였다 (동아일보는 민주당 구파 쪽이었고 경향은 신파를 지지했다).신파인 장면과 경향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것은 당연한 일.제 3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은 당선되지만 부통령은 자유당의 이기붕이 낙선하고 민주당의 장면이 당선되었는데.이승만과 장면은 견원지간이었다.장면은 당연히 찬밥신세.이렇게 푸대접받던 시절부터 웨터카는 장면을 여러모로 도왔다.유태인이었지만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역시 독실한 가톨릭 교도였던 장면과 이렇게 저렇게 통하는 데가 있었다.4,19가 일어나고 허정의 과도내각이 3개월 있다가 장면이 내각제의 실권자인 총리자리에 오르자 웨타카에게도 햇볕이 비쳤다.그는 총리 사무실 바로 옆에 사무실을 마련해 장면과 수시로 만났고 보수도 두둑히 받았다.고생하던 시절의 보답인지 장면은 웨터카를 유독 챙겼다고 한다.

 5,16이 일어나자 장면은 갈멜 수도원으로 피신해버리는 상상외의 소심한 모습을 보여준다.그리고 이때 웨터카가 무슨 조치를 취했는지는 아직도 알려져 있지 않다.1962년 6월 웨터카는 '이주당 사건'이라는 반 박정희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한국에서 추방당했다.이때도 5,16직전 웨터카가 주도한 '장면 정권 전복과 장도영 추대'라는 미 정보기관의 공작기도가 뒤늦게 발각된 데 따른 조치라는 설도 있었다.그렇다면 그가 장면을 배신하는 공작을 이면에서 세웠단 말인가? 여하튼 이 시기의 장면,박정희,장도영,그리고 미국과의 관계는 아직도 수수께끼에 싸인 부분이 많다.

  이 시기를 다룬 책으로 알음알음 알려진 책은 강인섭<4,19 그 이후 군,정계,미국의 장막>동아일보사 1984이다.지금은 절판.이 책이 없는 나는 신동아 1983~85년에 나오는 기획기사나 인터뷰기사를 참조한다.묘하게 이 시기에 4,19~5,16당시의  정계주역들이 인터뷰나 글을 많이 썼다.장도영,현석호 등...몇년 전에는 장도영 씨(박정희에게 밀려 투옥되기도 한 그는 도미하여 정치학교수가 되었다)의 회고록이 호화장정판으로 서점에 나오기도 했다.이젠 80이 넘었으리라..,

 4,19에서 5,16 그리고 민정이양까지의 시기는 중요한 역사의 고비였다.하지만 나는 별로 아는 것이 없다. 1953년 폐쇄된 미국 CIA한국지부는 1959년 재건되고 지부장에 피어 드 실바가 온다.그는 5,16 때 박정희의 손을 들어준 인물.조갑제는 드 실바가 박정희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글을 자주 인용한다.그리고 5,16당시의 일에 대해 마치 자신의 작품인양 떠들었던 하우스만...

 웨터카,드 실바,하우스만 모두 정보기관 출신들.이들이 이 시기 무슨 일을 했느냐를 추적하는 것만으로도 한미관계의 이면이 상당히 드러날 것 같다.그리고 그들이 지지했던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의 또다른 모습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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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10-02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미에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선출된 민주정부를 쿠데타를 통해 전복하도록 지원한 미국을
보면 우리 국민들은 미국에 대해 다른관점에서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것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08-10-02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면 정권 때까지만 해도 한국군 장성인사에까지 미군이 막강한 권한을 휘둘렀어요.이런 관행이 언제까지 계속되었는지 모르겠지만요.그땐 기름,탄약 량까지 미군의 통제에 있었죠.주한미군의 역사,주한 미국대사들의 역할 등도 연구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