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민주주의가 꽃핀 나라이며 신사의 나라로 알았던 영국.하지만 의회민주주의가 정착했다는 19세기 영국은 또한 제국주의 팽창에 여념이 없었다.당시 위대한 수상으로 꼽힌 디즈레일리는 노골적인 제국주의 정책을 추진했다.또 20세기 위대한 정치가라는 처칠 역시 제국주의 정신에 투철한 자로써 인도의 독립은 물론 자치를 허용할 수도 없다고 당당히 외쳤고,2차대전이 끝나갈 무렵의 전시회담에서도 영국식민지는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끝까지 고집을 피워서, 신탁통치를 통해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던 루스벨트와 여러번 부딪힌 바 있다.의회주의와 인권의 보루라는 나라가 대외정책에서는 제국주의에 충실하다는 이중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모습은 미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흑인의 권익이 점차 향상되었고,80년대가 되면 흑인앵커를 보는 것도 신기하지 않게 되었다.레이건이 대통령 재직 중인 1983년 가을엔 드디어 흑인 인권 운동가인 마르틴 루터 킹의 생일을 국경일(1월 세째 월요일)로 지정하게 되었다.(이는 링컨도 받지 못한 영예였다.역대 미국 대통령 중 생일이 국경일이 된 이는 워싱턴 밖에 없다). 그런데 그 무렵 미국은 카리브 해의 사회주의 소국 그레나다를 침략했다.10월 25일 공격을 시작하여 일주일 만에 이 나라를 완전히 점령하고 눈엣가시같은 정권을 무너뜨려 버렸다.명백히 침략인 이 작전을 레이건은 " 미국인들 생명을 보호하고 그레나다 내부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정당화했다.제 2의 쿠바와 니카라과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하면서! 게다가 미국인들 중에서 이 침략에 문제제기하는 이들도 거의 없었다.미국인의 8할 이상이 지지했으며, 당시 오닐 하원의장은 그레나다 작전 반대성명을 발표했다가 여론의 거센 공세 앞에 철회한 일까지 있었다.킹목사의 생일을 국경일로 정한 정신과 어울린다고 생각하는가? 오로지 노골적인 제국주의만이 있었을 뿐이다.미국의 비위에 거슬리면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정권을 갈아치운다는 협박외교의 정신만이 서슬 퍼렇게 날뛰었다.

 미국의 심기를 건드린 나라는 어떻게 된다는 걸 보여준 레이건은 또 미국의 맘에 들게 따라오면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이어서 보여준다.11월 7일 그레나다 참전 미해병대원들을 환영하는 행사를 마친 레이건은 2박 3일 예정으로 12일 방한했다.그 전해에 나카소네가 방한한 데 이어 레이건이 방한함으로서 이른바 한미일 삼각동맹의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났고 전두환 정권은 미국의 지지를 받았다며, 더욱더 의기양양해졌다.

 1983년 가을,마르틴 루터 킹을 기리는 날의 제정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 연이어 일어난 해이다.베트남 전쟁을 제국주의 전쟁이라며 맹렬히 반대했던 킹은 저승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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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9-26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순과 아이러니 투성이의 역사예요.

노이에자이트 2008-09-27 15:16   좋아요 0 | URL
레이건과 전두환의 유착엔 이것 외에도 벼라별 이야기가 다 있지요.

비로그인 2008-09-27 0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제가 더 걸 이란 영화를 보고도 아직 감상문을 못적었는데요
그 영화에서도 그래요 주인공 소냐가 자꾸 과거를 캐고 다니니까 협박과
테러로 막아보려다 도저히 못말려서 나중엔 흉상을 제작하고 표창도 해주거든요
그러자 소냐가 이런 수작에 넘어가지 않는다며 뛰쳐나가버려요.
킹 목사의 기념일 제정은 이와같은 맥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요즘 드러내놓고 반미하는 볼리비아나 베네수엘라를 바라보는 미국의 심경이
어떨지 궁금하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09-27 15:15   좋아요 0 | URL
아...그 영화 보셨군요.저는 요 몇년 새 독일의 나치청산이 불충분하다고 주장하는 책들을 보다가 그 영화를 알게 되었는데 우리나라엔 올해 들어왔다고 하더라구요.외국에선 굉장한 반향을 일으켰는데 저 아는 사람의 이야기로는 흥행이 안 되었다고 하던데요.여기는 상영도 안 한 것 같아요.감상문을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