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계간지 몇 권을 봅니다만 그 중 제일 흥미롭게 보는 것은 <역사비평>입니다.논문이나 서평이 재밌는 게 많더군요.이번 가을호에도 제가 좋아하는 에드워드 홀리트 카를 특집으로 다뤘더라구요.<역사비평>은 역사문제 연구소에서 내고 있는데 이 연구소는 1986년 2울 21일 종로구 신수동에서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초대 소장은 지금은 고인이 된 영남대 교수 정석종 씨.연구소 설립 주도 인물은 박원순 변호사,원경스님,이호웅 전 의원.초기 활동은 김남식 씨와 서중석 교수가 합류하여 세미나 중심으로 현대사를 연구했죠.이 당시 젊은 대학원생으로 참여한 후 유명해진 이가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종석 씨,현재 성공회대 교수인 한홍구 씨 등이 있습니다.

   이 명단을 볼 때 흥미로운 인물은 박헌영의 아들인 원경스님과 남로당 연구로 유명한 김남식 씨입니다.김남식 씨는 1962년 체포된 이후 중앙정보부의 특별관리하에 한국 현대사를 연구했죠.김 씨의 경력에 보면 국제문제조사 연구소 연구위원이란 직책이 있죠? 그게 중정 산하 연구기관입니다.극동문제 연구소와 함께 중정~안기부 시절 중요 연구기관이죠.우익인사로써 <한국논단> 등에 글을 발표하는 이기봉 씨도 국제문제 조사 연구소 출신이고 김대중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을 지낸 강인덕 씨는 극동문제 연구소 출신이었죠.그런데 원경 스님은 아버지가 박헌영이기 때문에 당연히 아버지를 역사에 복권하겠다는 마음이 있는 게 사실이죠.임경석<이정 박헌영 일대기>부록엔 윤해동 교수와의 대담이 실려 있는데 원경스님은 역사문제 연구소 설립에 나선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역사 문제 연구소를 만들자고 했을 때도 또 거기에 참여했을 때도 마음 속으로는 자료를 구하고 보존하려는 욕심이 있었어요.그리고 선친이 정말 '미제의 간첩'이었을까,사견으로는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한평생 조국의 광복과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해 바친 분이 자기 한몸 영달을 위해 간첩행위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는 것이 나의 믿음입니다.그리고 정말 간첩이었다면 미국의 문서들이 공개되는 데도 왜 이 사실이 밝혀지지 않는지,또 왜 김일성이 권력투쟁에 이용한 자료들만 공개되고 이용되고 있는지도 의문입니다.자료를 보존하자는 것도 훗날 이 분야에 대해서 연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분들의 시간을 줄여주는 것이 좋지 않느냐 하는 데 뜻이 있습니다----

   김남식 씨는 남로당 노선 특히 그 지도자인 박헌영을 비판하는 책과 논문을 많이 냈습니다.70년대에 나온 <실록 남로당>은 1984년 돌베개에서 <남로당 연구>로 다시 나왔고 1986년엔 아예 심지연 씨와 함께 <박헌영 노선 비판>이란 책을 썼죠.김 씨의 다른 연구논문이나 책에서 늘 주장한 것이지만 여기서도 박헌영이 관여한 일제시대와 해방직후의 사회주의 운동은 파벌주의에 오염되어 있었다...해방직후에서 1946년까진 대미타협주의 노선을 걸어 우경적 오류...이후엔 폭동주의로 좌경적 오류...이런 식이죠.결론은 박헌영은 민중의 혁명적 에네르기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 남한 혁명운동의 실패를 초래했다...는 겁니다.물론 박헌영이 미제 간첩이었다는 말은 안 합니다.중정과 안기부의 관리대상이었던 그가 그런 파격적인 주장을 할 리 없죠.하지만 박헌영이란 인물이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기피인물이고 욕을 얻어먹는 처지이기에 군사정권하에서도 김남식 씨의 이런 남로당 비판이 꽤 유용했을 겁니다.1987년 신동아 6월호에 실린 <남로당의 혁명 노선>에도 그의 직함은 국제문제 조사 연구소 연구원이었습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시리즈에도 김남식 논문은 실려있습니다.2권 박헌영과 8월 테제(1985)3권조선 공산당과 3당 합당(1987)4권 1948~50년 남한 내 빨치산 활동의 양상과 성격(1989).여기까지 김씨의 논문은 주로 남로당 비판에만 집중되어 있지,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정통성 논쟁은 삼가는 모습이었죠.그런데 5권 해방전후 북한 현대사의 재인식(1989)에는 남로당과 대비해서 해방 후 북한에 나타난 권력이 항일운동의 정통을 잇는 것이라고 썼습니다.물론 상당히 조심스러운 투였죠.결국 이런 걸 빌미로 강경한 우익들은 김남식이 1980년대 말(아마 역사문제 연구소에 합류한 때를 말하는 듯)부턴 좌경화되었다면서 김남식 씨 사후(2005년 사망) 그의 묘소의 비석을 때려부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원경스님은 자신의 아버지를 이렇게 일관되게 비판한 김남식 씨와 어떻게 같은 연구소에서 한 솥밥을 먹었을까요? 아버지 대에 일어난 일은 깨끗이 잊자고 화해하기도 좀 그랬을 겁니다.김남식 씨는 국내에서도 일급으로 꼽는 남로당 연구가요,남로당 비판가이니까 뭘 다 잊어버리고 말고 하는 차원도 안 됩니다.저로서는 제가 가장 즐겨 읽는 <역사비평>이니까 이 두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두사람이 좀 어색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이런 글을 써봤습니다.

  범우사에서 올 여름부터 해방정국 당시 출판된 이강국 박헌영 등의 책을 다시 내고 있습니다.이강국과 김수임 사건은 지금 영화로 만든다고 합니다.경향신문이 내던 뉴스메이커는 위클리 경향(아이고... 신문장이들은 이런 꼬부랑 글씨를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으로 개칭하여 내는데 새롭게 김성동 씨의 현대사 이야기를 연재한답니다.김성동 씨는 올봄에 경성 콩그룹과 남로당이 국내 사회주의 운동의 정통이라고 주장했죠.결국 김성동 씨가 현대사에 대해 직접 글을 쓸 모양입니다.이 와중에 국방부는 근현대사 교과서의 내용을 예전 군사정권 때의 수준으로 바꾸라는 압박을 넣고 있습니다.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역사논쟁이 뜨거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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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니 2008-09-19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는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또 많은 일들이 일어날 듯 합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제겐 마치 숙제같은 책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9-19 21:36   좋아요 0 | URL
1권 빼놓고는 논문들이 많아서 딱딱하지요.어렵다고 생각하시면 더 부드러운 개설서나 회고록 류를 먼저 읽는 게 좋을 겁니다.

로쟈 2008-09-19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성동씨의 연재는 저도 읽었습니다. '위클리 경향'은 편집장이 '경향'이란 브랜드의 덕을 좀 보려는 것이라고 솔직하게 썼더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09-19 21:38   좋아요 0 | URL
벌써 시작했군요.주간 조선도 위클리 조선으로 바뀌었죠.유행인가 봐요.

마법천자문 2008-09-19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일성은 남한과의 전면전을 망설였는데 박헌영이 '쉽게 이길 수 있다'고 계속 충동질을 해서 김일성이 전면 남침을 감행하도록 꼬드겼다는 설이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노이에자이트 2008-09-19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설이 있는데 만약 박헌영이 그런 말을 했다면 북한에서 사실상 김일성 보호하에 있는 처지에서 자신의 입지를 높여보기 위해 한 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실제로 당시 남한에선 남로당은 거의 지는 해였고 박현영도 그 실상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전쟁 중 북한이 당한 피해가 워낙 컸기에 책임추궁하다 보니 박헌영의 그 말이 부각되는 거겠죠.하지만 남침의 최종인가자는 김일성이죠.좌경모험주의의 장본인은 김일성이 아닐까요?

노이에자이트 2008-09-20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운형,김구 암살로 남한에선 사실상 이승만 1인체제가 확립되었지만 북에선 박헌영,김일성양두체제였으니 노선다툼이 치열했겠죠.북한에서 나온 <조선통사>나 <현대조선역사>가 기술하는 박헌영 및 남로당 노선에 대한 비판은 남한의 관선편찬자들의 평가와 거의 유사해서 묘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