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화! 박헌영,이강국,설정식 등과 함께 미제 고용간첩 혐의로 처형된 사나이.천재 시인으로 통했고 카프의 투사요,미남으로 이름났기에 영화에까지 출연한 그의 최후는 덧없다 못해 처량하기까지 하다.사형선고를 받고 죽음만을 앞 둔 그가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김일성을 찬양하는 시를 짓는다.이미 남로당의 동지들이 다들 죽음이나 철창신세를 예약하고 있던 그 시점에.그렇게 살고 싶었을까.인간이 이렇게 약한 존재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두 번 결혼했다.첫번 째 결혼상대는 이귀례.그녀의 오빠는 임화와 함께 카프에서 활약하던 사상동지 이북만.이귀례와 임화는 당시 진보적인 젊은이들처럼 자유연애에  동거까지 감행하면 그 사이에 딸 혜련을 둔다.하지만 임화가 조선 공산주의자 협의회 사건으로 3개월의 옥고를 치르고 1941년 전주사건으로 카프가 해산되자 임화는 건강이 더욱 악화되었다.전부터 앓던 폐결핵이 더 심해진 것.부부간의 금실도 예전같지 않아 멀어지더니 결국 합의 이혼하고 만다.

   두번째 아내는 소설가 지하련.본명은 이현욱.임화가 폐결핵 치료차 마산으로 요양갔을 때 만났다.그녀는 한국전쟁 중 만주에 피신해 있다가 남편의 사형소식을 듣고 북으로 왔지만 남편의 시신 수습도 할 수 없었다.그녀의 마지막은 증언이 엇갈린다.투신자살설과 자강도 회천 부근 오지의 교화소에 끌려가 지내다 1960년 경 병사했다는 설 두 가지가 있다.

   미국의 대한정책에 관한 문서수집에 평생을 바친 방선주 씨가 젊은 현대사학자 정병준 씨와 함께 미군 문서에서 이강국,이승엽,임화 등이 미군정에서 간첩으로 고용되었다는 문서를 발견하면서 임화는 또다시 화제의 중심이 되는 듯 했으나 실제 파장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그전부터 현대사를 연구하던 이들은 굳이 그 문제를 건드릴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인지 반응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 임화가 미군정에 포섭되었음을 소설로 그린 마쓰모도 세이죠<북의 시인 임화>가 이미 1980년대에 번역되어 나왔지만 판매부수는 미미했다.이제 사람들의 뇌리에서 이런 문제는 화제거리 자체가 안되는 것일까.

  그가 어떤 혐의가 있었던간에 한 개인으로서 그의 가족사는 비극이 아닐 수 없다.그래서 갑자기 생가나는 노래 가사.이 노래 작사작곡이 누군지 모르겠다.노래는 배호 제목은 위자료.이혼을 소재로 한 노래가 몇개 있는데 이 노래의 가사가 가장 처절한 것 같다.

다시 못 올 고운 정을 심어 놓고 조용히 가버린 차디찬 마음 저 산너머 행복이 있다하지만

꿈같은 나그네 길 가버린 님아 돌아오라 못 잊을 그대여.

별도 없는 캄캄한 밤 하늘 아래 나 보기 역겨워 떠나는 당신 돌아서며 남겨 놓은 안녕 한마디

백년을 단 둘이서 살자던 님아 돌아오라 못 잊을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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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8-08-14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시로선 비극적이지 않은 가족사가 차라리 드물었던 게 아닐까요? 예전에 김윤식 교수의 <임화 연구>를 읽던 기억이 납니다. 벌써 십수 년 전이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08-15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히 좀 똑똑한 인물들이 그랬죠.월북문인들의 사망시기는 워낙 엇갈리는 설이 많아요.김순남은 임화의 시에 곡을 붙여 인민군가를 작곡한 적이 있는데 1980년대까지 살아 있었다고 합니다.
지하련의 소설이 최근에 다시 나왔더군요.누구였더라..하다가 아...임화의 부인! 하고 생각이 문득 떠올랐죠.
요즘 김윤식 씨는 일제 때 조선인이 만주를 그린 문학작품에 관심을 갖고 있더군요.저도 관심분야입니다.

순오기 2008-08-16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순남, 임화, 한설야~ 월북을 이유로 금서였던 시대에 배웠던지라...

노이에자이트 2008-08-16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다들 해금되어서 작품을 볼 수 있죠.근데 저 노래 작곡자는 알아냈어요.백영호 씨.동백 아가씨 작곡자예요. 작사가만 알면 되는데...아시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