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이라고 무시하지 말지어다.어릴 때 읽을 땐 몰랐던 사실이 어른이 되어 읽으니 나타나는 때도 있다.어릴 때 읽어야지 하다가 못 읽은 책,축약판으로 읽었는데 어른이 된 뒤에 완역판이 나왔다면 망서리지 말고 읽어라.뜻 밖의 수확을 얻을 수 있다.
내가 어린 시절 읽었던 <쿠오레>.<사랑의 학교>라는 제목의 번역본도 있었다.알고 봤더니 지은이인 에드몬드 데 아미치스(1846~1908)는 오스트리아의 압제에 맞서서 이탈리아 독립전쟁에 참가한 경력이 있다.쿠오레는 어린이들이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적은 소설로만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일기체인 이 소설 구석구석에 오스트리아의 압제와 이에 저항하는 애국자들을 칭송하는 대목이 있다.마지막 쯤에 가서는 위대한 애국자 가리발디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태리인들의 추모 장면도 있다.
어렸을 때 만화로도 많이 본 <엄마 찾아 3만리>는 독립된 작품이 아니라 이 <쿠오레>에 일화로 나오는 어느 이태리 소년의 이야기.기억이 어렴풋하다면 부에노스아이레스 이야기가 나오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실제로 19세기 유럽인들은 새로운 삶을 찾아 신대륙으로 이민 간 이들이 많았는데 북미 쪽 뿐이 아니라 아르헨티나나 칠레 쪽으로 간 이들도 많았다.지금도 이들 나라는 다른 중남미 국가에 비해서 혼혈족이 없고 백인주민이 대부분인데 그 원인은 이들 나라가 주로 노예가 아닌 유럽에서 온 백인들의 노동력으로 산업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책 이름이나 주인공 이름은 아는데 그 작가는 모르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스쿠루지 할아버지는 구두쇠의 대명사지만 그 소설의 원작자인 찰스 디킨스는 빅토리아 조 소설가가 그다지 큰 인기를 누리지 못하는 우리의 독자에겐 다소 생소한 이름.피노키오의 작가를 아는가? 역시 가물가물한 이들이 많다.카를로 콜로디(1826~1890)가 바로 그 작가다.이 작가 역시 이탈리아 독립전쟁에 참전한 용사 출신이다.
오스트리아 하면 그냥 음악의 도시.수도 비인이 아름다운 나라 정도로 아는 이들에게 이 나라가 한때 유럽을 주름잡았던 강국이었으며 프로이센을 꼼짝 못하게 하고 발칸반도를 둘러싸고 터키와 러시아와도 맞선 나라였음을 알려주면 그제서야 오...그렇구나...하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을 많이 보았다.더군다나 이탙리아를 지배했다니...
이탈리아를 사랑한 외국작가가 많았다.괴테는 <이탈리아 여행기>를 남겼고 토마스 만 역시 미소년이 나오는 <베니스에서 죽다>를 남겼으며 이탈리아에서 외교관 생활을 했던 스탕달은 <파름의 수도원>을 남겼다.지금은 잊혀진 작가가 되었지만 독일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파울 하이제도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주옥같은 중단편을 남겼다.<고집장이 아가씨>의 배경은 가곡으로 널리 알려진 소렌토가 배경이고 출생의 비밀(우리나라 방송작가들이 좋아하는 소재)을 다룬 <포도원 지기>는 티롤지방이 배경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독립전쟁을 정면으로 다루어 유명한 외국작가는 역시 <등에>를 쓴 보이니치일 것이다.나는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 주인공이 아니라 반동적인 신부였다.민족해방 전쟁을 반대하는 철두철미 반동적인 신부.2005년 연말 무렵 이 책을 세번 째 읽었는데 추기경 취임을 앞 둔 정진석 당시 서울 대교구장이 사립학교 개정을 주도하는 자들은 학교를 좌경화하려는 자들이라는 주장을 월간조선 기자에게 했다.그때부터 그의 주장과 소설 속의 그 반동적인 신부가 지금도 뇌리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