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궁중요리를 선보인 대장금이란 드라마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한류열풍을 이끄는 일등공신이었다. 영화도 그렇고 드라마도 그렇고 요리를 주제로 하는, 특히 요리 대결을 벌이는 내용은 언제나 인기를 끄는것같다. 식객도 놀란 맛의 비밀. 책 제목만 보고는 대단한 음식에 대한 묘사나 기타 뭐 그런것들을 예상했지만 막상 책을 열어보니 요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정말이지 맛을 어떻게 해야 제대로 느끼는지에 대한 뭐 그런 얘기들이었다. 언젠가 TV에 소개된 맛집을 보고 직접 찾아가서 먹어본 적이 있었다. 사람은 많고 서비스는 불친절하고 그렇다고 방송처럼 맛이 엄청나게 대단하지도 않아서 무지 실망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들 맛있다고, 정말 최고라고 다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일색이었다. 그렇다면 내 혀가 잘못된 것인가? 내가 엄청난 미각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맛을 잘아는 미식가도 아니다. 그저 왠만하면 모든 음식이 다 맛있는 아무거나 주는대로 잘 먹는 그런 먹성인데 맛집이란 곳에서 나온 음식이 맛이 없었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를 몇번 경험했다. 이집이 아닌 다른 맛집에서도 다른 사람들은 맛집이라고 소개된 맛있는 집이라고 먹고나서 다들 맛있다고 칭찬일색이었다. 하지만 난 그저 그런 맛인데 왜 그럴까? 그게 항상 의문이었다. 그런 의문은 이 책을 읽다보니 자연히 알게 되었다. 서로 맛을 느끼는게 틀릴수도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누가 맛있는 집이라 소개된 집에 가서 먹게 되면 맛이 있든 없든 무조건 맛있다고 한다는 것이다. 안그러면 자신은 맛을 모르는 사람으로 인식될 수도 있으니까. 아닌게 아니라 맛는 말이다. 맛집에서 먹고 맛없다고 한 나는 맛도 모르는 사람으로 일찌감치 낙인 찍혔으니까. 맛은 혀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란다. 나이가 들수록 미각을 잃기 때문에 시각으로 입맛을 돋구고 혀로 그 맛을 느끼게 해주고. 분위기를 조절해서 그 맛에 변화를 주고. 요리 자체만으로 그 음식이 완성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해주었다. 먹는 사람도 먹기 전에 어떤 몸가짐을 해야하는지. 어떤 순서로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요리도 먹는 방법도 모두가 과학이다. 약선요리라 했던가? 요리로 병을 고친다는. 아닌게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저알 맛있게 음식을 즐긴다면 그보다 더 즐거운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줄겁게만 산다면 병이아니라 병할아버지라도 모두 달아날 것이다.
어린 시절 길거리에서 나와 다른 피부색을 가진 외국인을 보면 눈이 휘둥그레져서 쳐다보던 때가 있었다. 서울이 아닌 지방인지라 TV가 아닌 실제로 외국사람을 보는 일이 흔하지 않아서 였지만 어린 마음에 아마도 신기해서 그랬을 것이다. 특히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것은 흑인을 보았을때 마치 검은 석탄을 보는 듯 신기해서 한참을 뚜러져라 바라봤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중학생이 되어서는 가끔 보는 외국인에게 "외제다. 외제"라며 친구들과 쑥덕거리며 힐끔거리던 기억이있다. 이 책에 나오는 누군가 그랬다. 자기를 벌레 보듯이 훝어보는 우리의 시선이 그렇게도 싫었다고. 이제 나이가 들어 어느 정도 외국인에 대한 생각이 정립되고 나니 그 철없던 시절에 내모습이 너무나 창피하게만 느껴진다. 우리는 참 이중적인 민족인 것같다. 백인에게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것 처럼 살살거리면서 동남아 사람들에게는 멸시와 모욕을 주고 마치 그들은 하인이고 우리는 주인이라는 생각을 한다. 선진국에서 온 외국인은 대접해주고 우리보다 못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업수이 여기는 참으로 이중적인 민족이 또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낸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사람들은 그저 서로 사랑해서 머나먼 타국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데 누가 이들을 업수이 여기고 이상한 눈으로 본단 말인가. 나는 얼마나 깨끗하고 고결하게 살아와서 이들을 깔볼수 있는가. 모든 사람이 다 그런것은 아니다. 어쩌면 내 자신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그 감정이 여기에 투영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찌보면 단일민족이란 허울에 갇혀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는 것은 아닌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놈의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단일민족이란 것이 대체 무언이간데. 누구다 다 존엄한 생명을 가진 존중받아야 할 인간이거늘 피부색으로 누구를 업신여기고 누구를 깔볼수 있다는 말인가. 여기 이책에 나온 이들은 그래도 좋은 가족, 좋은 이웃을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 분들이라 참 좋다. 그래도 가끔 뉴스에 나오는 동남아 신부들의 억울한 사연을 볼때면 가슴이 아파온다. 어쩌면 나도 내 짝을 여기 한국에서 찾지 못하고 외국에서 찾아야 할 지도 모르는데 주변의 눈이 무서워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겠다. 모든 사람이 다 존중받고 행복한 그런 세상. 그런 대한민국을 꿈꿔본다.
중국 작가의 책은 처음으로 읽어보았다. 5편의 단편을 모은 책으로 겉장을 보니 꽤나 유명하고 유망한 작가인가 보다. 하긴 우리나라 작가도 잘 모르는 내가 중국 작가를 알리가 없지. 아는 중국 작가라고는 영웅문의 작가 김용 뿐인데... 눈에 익지 않아서인지 등장인물의 이름들이 낯설다. 우리 이름이랑 비슷하게도 나오지만 역시 낯설긴 하다. 책의 제목으로 나온 언어없는 생활은 제일 첫번째 단락에 있다. 정상인이던 아버지와 귀먹어리 아들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정상인 아버지는 벌에 쏘여 실명을 하게 되어 앞이 안보이게 되고 만다. 앞 못 보는 아버지의 눈이 되는 아들과 안들리는 아들의 귀가 되는 아버지. 서로 소통이 원할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려움을 극복해가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던 그들에게 새로운 사람이 들어온다. 하지만 그 역시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 귀는 들리지만 말을 하지 못하는 붓장수. 말 못하고 못 듣고 앞 못 보는 세 사람이 모여사는 집. 어쩌면 이들을 통해 소통이 원할하지 못한 현 시대를 비판한 것은 아닌가? 인터넷이 발달하고 휴대전화가 필수품으로 인식되지만 가족간에는 대화가 단절되고 공동체와 공동체간의 원할한 소통이 이루어 지지않는 현시대와 닮은 꼴을 이루고 있지는 않은지? 이 가족에게 정상인 아들이 태어났다. 하지만 누구하나 제대로 보고 듣고 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이는 정상으로 자라날 수 있을까? 다행히 어느 정도는 정상으로 자랐지만 처음으로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배운 노래가 바로 자기 가족을 우롱하는 노래라는 것을 알게 된 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바로 귀를 닫고 입을 닫고 눈을 닫아 버린다. 모든 소통을 스스로 절해 버리고 만다. 그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닫고 사회에서 소외되버리고 마는 것이다. 우리도 지금 스스로 모든 사람들과의 소통을 스스로 닫고 살지는 않는지 반성해 봐야할 것이다. 인터넷상에서 사람을 만나고 휴대전화로 대화를 나누며 스스로를 인터넷이란 테두리안에 가둬두고 모든 소통에서 나 자신을 단절하고 있지는 않은지 지금 당장 주위를 둘러보라. 내 눈이 보이는가? 내 귀가 들리는가? 내 입이 말을 하는가?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 세상과 소통하라.
남자. 옛날 우리 할아버지대 때까지나 아버지의 어릴적 정도까지는 아마도 '남자는 하늘'이라는 말이 통했을지 모르지만 지금 누가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고 했다가는 대접받기는 커녕 몰매를 맞기 딱 좋은 말이지 않나 싶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남자들은 그 위상을 잃어가고 있는것 같다. 아니지 어쩌면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게 나란히 가기 위해 조정을 받는 다는게 맞겠다. 우리나라에서 남자, 특히 3~40대 가장으로 살아가기 위한 남자들은 정말 힘들다. 남들 다 살아왔고 살아가는데 뭐가 힘드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암튼 힘들다. 직장에서는 똑똑하고 할말 다하는 부하직원에 밀리고 무조건 복종만 강요하는 상사에 짖눌리면서 그나마 편히 쉴 것이라는 집에 오면 돈 못벌어온다는 부인에 놀아달라는 아이들에 맘편히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는 불쌍한 대한민국의 가장이 남자 아닌가? 아마도 남자들은 공감해도 여자들은 반기를 들지도 모른다. 하긴 남자인 나도 잘 모르는 나를 여자가 어찌 다 알겠는가. 그저 귀찮아서 큰소리만 치고 내가 다 알아서 한다고 막상 큰소리는 쳤는데 해결은 안되고 왜 남자가 모든 것을 다 책임져야 하는 것일까? 남자가 돈 벌이가 시원찮으면 여자는 왜 화를 내는가? 남편이 돈벌이를 못하면 여자가 직장을 다니고 남자가 집안일을 하면 안되나? 그러고 싶어도 남자들은 남들 보는 눈이 무서워서 아마 하라고 해도 못할 것이다. 그까짓 자존심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아닌일에 목청을 높이고 싸울 일도 아닌 일에 목소리를 높여 큰 싸움이 되고 내가 가진 것도 하나 없으면서 곧 죽어도 친구를 위해 보증이며 대출이며 앞 뒤 분간 못하는 그런 철없는 인간이 바로 남자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 맞다. 나도 이랬는데' 하면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이 있다. 이 책은 남자들도 읽고 왜 내가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알고 있어야 하고 또한 여자들도 이 책을 읽고 남자들은 이래서 이런 거구나 이해를 해 주었으면 한다. 남자들 정말 단순하다. 칭찬 한마디면 금방 실실거리고 잔소리 한마디면 토라져 버리는 단순한 인간이다. 이왕이면 살살 잘 다뤄주면 좋겠다.
작년 꿈꾸는 다락방을 처음 접했을 때 커다란 충격을 받았었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성공에 대한 실체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그 당시의 설레임이나 떨림, 흥분은 많이 가라앉았고 불같이 달아 오르던 정열도 많이 사그라 들었다. 마치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처럼 한때 확 불길이 일었다가 뗄감을 더이상 주지 않자 서서히 꺼져버리듯 내안의 갈망이 어느덧 시나브로 사그러 들고 있었다. 바로 그때 꺼져가는 모닥불에 기름을 붇듯이 새로운 책이 나왔다. 꿈꾸는 다락방2 - 실천편 실천편? 아니 1권에서 자세하게 꿈꾸는 방법에 대해 설명을 해 줬는데 또 다른 실천법이 있나? 솔직히 1권을 보고 여러 가지 방법들을 실천해 보기는 했지만 한달 이상 지속적으로 실천을 해 본 것이 없다. 방법은 나와있지만 실제 적용해서 해보니 잘 모르겠더란 말이지. 그래서 실천편이 나왔다기에 뭔가 그 방법들을 잘 적용할 수 있겠거니 해서 읽게 되었지만 왠지 뭔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읽는 내내 차라리 2권은 읽지 말것을 잘못했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어서 인지 책 내용을 부정적으로만 보게 되었다. 사실 1권을 읽으면서 꿈을 크게 가졌던 건 사실이다. 꿈과 바람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말이 찔려서 애써 부정하려고 2권을 부정했던 것이리라. 저자도 1권 출간 이후 아마도 나와 같이 꿈과 바람을 혼동해서 뭐든지 다 될 것이라는 허황된 꿈을 가진 사람들의 수많은 질문에 시달렸으리라. 그래서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이번 책을 내놓은 것이리라. 내가 그러했듯이 많은 이들이 1권을 보고 아마도 노력은 뒤로 하고 그저 꿈만 열심히 꿨으리라. 내가 그랬으니까.... 마치 학교 다닐때 시험 공부는 하나도 안하고 100점 맞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것 아닐까? 그렇게 꿈을 꾸고 있었으니 2권에서 꿈과 바람을 제대로 정리하고 꿈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을 다 하라는 저자의 말이 듣기 싫었으리라.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꾸만 부정하려고 하는 이 게으름을 질책하는 저자가 지금은 감사하게 느껴진다. 꿈을 이루기 위해 실패도 두려워 하지 말고 이루어 질때까지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 그 모습이 진정한 꿈을 이루기 위한 내 자신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