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의 정석 : 근력운동 편 - 수피의 1:1 트레이닝 이제 실전운동이다!, 개정증보판 헬스의 정석 시리즈
수피 지음 / 한문화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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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토너들의 하체 근육을 추적해 새 단백질이 근육으로 정착해서 적응까지 끝내는 과정을 살펴봤더니 최소 1~3개월이 걸렸습니다. 내가 지금 죽어라 벤치프레스를 해서 가슴 근육에 준 자극은 적어도 한 달 후에나 근육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얘깁니다. 온라인에는 ‘2주 몸짱’이니 하는 쓰레기 사진들이 넘쳐나지만 실상 체지방이 좀 줄고 물로 근육이 약간 부푼 상태일 뿐, 첫날 운동한 것이 아직 근육으로 자리 잡지도 않은 상태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운동을 중단하면 바로 3주 전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앉았다 일어나는 일상의 동작도 ‘허리에 힘을 주고, 발목을 고정하고, 엉덩이를 당기고, 무릎을 펴는’ 수많은 개별 동작들이 정확한 타이밍과 강도로 결합해야 합니다. 신경계는 시행착오를 통해 이 모두를 세트로 묶어 ‘하나의 패턴’으로 기억합니다. 이를 엔그램engram(기억흔적)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쉬운 말로 ‘요령을 터득했다’라고 할 수 있죠. 걷기, 달리기, 눕기, 일어나기 모두가 수많은 개별 근육의 움직임이 합쳐진 엔그램입니다...비만한 것도 아니고 힘도 센데 턱걸이만 못한다면 이유는 간단합니다. 안 해봤기 때문입니다. 하드웨어 성능은 충분하지만 턱걸이 소프트웨어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처음 철봉에 매달리면 아등바등할 뿐 못 오릅니다. 언제 이두근을 쓰고, 언제 광배근과 대원근을 동원하는지를 뇌가 전혀 모르니까요.




...신경계 피로도 이슈가 되었습니다. 운동 동작은 이전에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 신경회로를 ‘점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훈련을 반복할수록, 고강도 운동일수록 전달하는 신호도 강합니다. 그런데 본인의 능력치를 과도하게 넘는 신호를 내거나 휴식이 부족하면 신경계가 일시적으로 기능을 잃습니다...이런 신경계 피로는 근육 피로와는 별개로 흔히 택싱taxing이라 표현합니다. 많은 근육을 쓰고, 중량이 높을수록 택싱이 크고, 같은 무게라면 역도처럼 역동적인 동작보다 3대 운동처럼 느린 동작에서 택싱이 큽니다. 그 중에서도 데드리프트가 택싱이 가장 커서 고중량 데드리프트는 주 1회 이상은 잘 하지 않습니다.




...운동생리학적으로도 연속적인 운동은 시작 후 50~60분을 넘기는 시점부터 근육을 만드는 동화호르몬보다 근육을 분해하는 이화호르몬의 작용이 본격적으로 강해집니다. 직장은 초과근무하면 야근수당이라도 받지만 운동에서 초과근무하면 있는 돈도 날립니다.




...가장 효율이 좋은 연료인 ATP는 10초 이내, 길어야 1~3회 반복이 가능하며 이때 최고 무게를 들 수 있습니다. 그 뒤 20초 남짓까지는 크레아틴으로 재활용한 ATP를 쓰는데, 원래의 ATP보다 약간 떨어지기는 해도 여전히 출력이 좋습니다. 여기까지가 ATP-PC단계로, 최고중량 대비 70~85% 정도에서 리프팅 횟수로 5~6회 정도에 해당하죠. 이때는 산소가 필요 없고 가장 힘이 강해 스트렝스 트레이닝에 최적입니다. 경기종목도 20초 이내가 한계로, 달리기의 경우 가속도까지 고려하면 200미터 기록이 인간이 낼 수 있는 평균속도로는 가장 빠릅니다. 그 뒤로는 당분을 태워 ATP를 만들어야 합니다. 초반 약 1분 이내까지는 산소 없이 당분을 태우는 불완전연소인 젖산대사가 일어나는데, 이 영역은 근육의 피로를 유발해 근부피를 키우는 볼륨 트레이닝에 적합합니다. 최대 반복 횟수는 12~15회 정도로, 그마저 넘어가면 산소로 당분과 지방산을 태우는 ‘유산소대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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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집중력 - 집중력 위기의 시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요한 하리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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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라이프 2
한야 야나기하라 지음, 권진아 옮김 / 시공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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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윌럼에게 이렇게도 말하고 싶었다. ‘이러지 않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난 모르겠어.’ 하지만 그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윌럼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게 어떻게 처벌이자 정화의 방법인지, 어떻게 그게 그 안의 모든 독과 망가진 것들을 빠져나오게 하는지, 어떻게 그게 다른 사람들, 모든 사람들에게 비이성적으로 화내지 않게 해주는지, 어떻게 그게 고함지르는 걸, 폭력적이 되는 걸 막아주는지, 어떻게 그게 자기의 몸, 자기 인생을 진정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자기 것으로 느끼게 해주는지 설명할 수가 없었다. 때로 그는 궁금했다. 루크 수사가 해결책으로 그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그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세스 : 하지만 이해 못 하겠어, 에이미? 당신은 틀렸어. 모든 걸 다 주는 관계는 없어. ‘어떤’ 것들만 주는 거라고. 누군가에게서 바라는 것들을 다 생각해보고 그중 세 개만 택해야 하는 거야. ‘세 개’, 바로 그거야. 아주 운이 좋으면 어쩌면 네 개를 가질 수도 있겠지. 나머지는 딴 데서 찾을 수밖에 없어. 원하는 걸 다 주는 사람을 찾는 건 영화 속에서나 있는 일이야. 하지만 이건 영화가 아니잖아. 현실세계에서는 남은 인생에서 그중 어떤 세 가지를 가지고 살고 싶은지 파악하고, 그걸 가진 사람을 찾아야 하는 거야. 그게 진짜 인생이라고. 그게 함정인 걸 모르겠어? 계속 모든 걸 다 찾으려 하다가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게 될 거야.



...우정은 그 자체로 기적 아닌가? 이 외로운 세상을 그래도 덜 외롭게 느껴지게 만드는 사람을 찾는다는 게? 이 집, 이 아름다움, 이 안락함, 이 삶이 기적 아닌가? 그러니 하나 더 바란다고 누가 그를 나무랄 수 있겠는가? 그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생물학과 시간과 역사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은 예외가 될 거라고, 주드 같은 부상을 입은 다른 사람들에게 벌어진 일이 그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주드가 극복해온 수많은 것들에 더해 한 가지 더 극복할 수도 있을 거라고 희망한다고 누가 그를 나무랄 수 있겠는가?



...거의 매해 여름마다 그는 생각한다. 올해 여름이 최고라고. 하지만 이번 여름은 정말로 최고다. 여름뿐만이 아니다. 봄도, 겨울도, 가을도 최고다. 나이가 들면서 그는 인생을 점점 더 일련의 회상들로 바라보게 된다. 계절들이 포도주 제조연도인 것처럼 한 계절이 지나갈 때마다 평가하고, 살아온 세월을 역사적 시대로 나눈다. 야심찬 시절. 불안한 시절. 영광의 시절. 미혹의 시절. 희망찬 시절. 이 이야기를 해주자 주드는 빙긋 웃었다. “지금 우리는 어느 시절을 살고 있는데?” 그가 묻자, 윌럼도 그를 보며 빙긋 웃었다. “모르겠어. 아직 이름을 못 붙였거든.”



....인생이 의미 있나 없나를 따지는 건 늘 굉장히 호사스러운 문제, 사실 특권 같았다. 그는 자기 인생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인생이 가치 있는지 없는지를 놓고 안달복달하지 않았지만, 왜 자기가, 왜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 살아가는지는 늘 궁금했다. 때로는 납득하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수많은 사람들, 수백만, 수십억의 사람들이 가늠할 수 없는 비참 속에서, 터무니없이 극단적인 궁핍과 질병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다들 그래도 꾸역꾸역 살아간다. 그러니 삶을 계속 살아나가는 결의는 선택이 아니라 진화적 완성이 아닐까? 마음 그 자체에 힘줄처럼 질기고 상처투성이인 뉴런 무리가 있어서 논리가 그렇게 자주 주장하는 바를 실행하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닐까? 



...“그러면 좋겠구나. 너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으니까.”
그러자 그가 미소 지었어. “그거 이상하네요, 안 그래요? ‘더 많이’라. 우린 이렇게 오랫동안 알았는데 말이죠.”
그런 이야기를 나눌 때면 늘 그런 느낌이 들었어. 단 하나의 정답은 없지만, 사실 단 하나의 오답은 있다고. 그걸 택하면 주드는 다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라고. 그래서 난 늘 그 오답을 말하지 않으려고 늘 그 대답이 무엇일지 가늠해보려고 했어.
“맞아.” 난 말했지. “하지만 네 이야기라면 늘 더 알고 싶다.”



....행복을 보장받는 사람은 없지, 모두 다 그래. 하지만 주드는 행복할 자격이 있었어. 하지만 넌 내게가 아니라 내 뒤의 누군가에게 미소를 지을 뿐이고 아무 대답도 들려주지 않아. 그럴 때면 내세 같은 걸 믿고 싶어져. 우리한테 다리가 아니라 꼬리가 있어서 바다표범처럼 대기 속을 헤엄쳐 다니는, 공기 자체가 무수한 단백질과 설탕 분자로 이루어진 자양물이어서 그저 입만 벌리고 흡입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조그만 빨간 행성 같은 곳, 다른 우주. 너희 둘은 거기서 함께 대기 속을 떠다니고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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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라이프 1
한야 야나기하라 지음, 권진아 옮김 / 시공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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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시절에는 모든 게 훨씬 더 분명했을 것이다. 마흔이 됐을 때, 혹은 결혼했을 때, 혹은 애들이 생겼을 때, 혹은 5년, 10년, 15년 동안 노력해보고 나면 그만두겠지. 그러고 나면 진짜 일자리를 구할 테고, 그러면 연기와 그 에 대한 꿈은 저녁노을 속으로 희미하게, 따뜻한 욕조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얼음 조각처럼 역사 속으로 고요히 녹아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기실현의 시대다. 인생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이 아닌 일에 눌러앉는다는 것은 의지박약에, 고결하지 않은 선택이다. 언제부터인가 운명 같은 것에 굴복한다는 것이 고상한 게 아니라 비겁함의 징표가 됐다. 행복이란 게 모두가 달성해야만 하고 달성할 수 있는 것이고, 그걸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타협은 무엇이든 본인의 잘못인 것만 같은 지금, 행복을 쟁취해야 한다는 압력에 가끔 거의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다. 




...우정의 증표는 적정 거리를 지키는 데, 들은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눈앞에서 문이 닫히면 강제로 열고 들어가는 대신 돌아서서 가버리는 데 있다는 걸 이해한다 -




...아니면 이렇게 부엌에 혼자 있는 순간들이 명상과도 같은 순간이라는 걸, 그와 세상, 그와 세상 사람들과의 모든 상호작용을 촉발하는 사실과 진실의 수천 개의 조그만 굴절과 오염들을 미리 계획하며 허우적허우적 전진하길 멈추고 정말로 편안히 휴식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라는 걸 누구에게 설명할 수 있겠나? 아무에게도, 심지어 윌럼에게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몇 년에 걸쳐 자기 생각을 남에게 말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친구들과 달리 그는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기 위해 자신의 기벽의 증거들을 공유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비록 친구들의 기벽을 공유하는 건 행복하고 뿌듯한 일이었지만.




...그는 누군가를 알게 되는 그런 과정은 자기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다는 걸 떠올렸다. 그는 늘 잊어버렸다. 그리고 늘 다시 기억해야 했다. 그는 종종 내밀한 것들을 드러내고 과거를 탐색하는 그 모든 과정을 빨리 넘겨버릴 수만 있다면, 그래서 다음 단계, 뭔가 부드럽고 유연하고 편안한, 양자의 경계를 다 이해하고 존중하게 되는 그런 관계로 그냥 순간 이동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바랐다.




...그의 정신이 있는 그대로 유연하게, 지루한 사고방식으로 스스로를 동여맬 필요가 없는 방향으로 밀어줬더라면 좋았을걸. 한때 개를 그릴 줄 알았던 사람을 형태만 그릴 줄 아는 사람으로 바꿔놓은 기분이야. 그에 관해서라면 난 많은 죄를 저질렀어. 하지만 때로 비논리적이게도 그중 가장 죄책감이 드는 일은 이거야. 내가 밴 문을 열고, 그를 안으로 들어오게 했어. 난 길에서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대신 그를 태우고 어딘가 황량하고 추운 무채색의 장소로 데려가서 거기다 두고 온 거야. 예전에 내가 그를 태웠을 때는 풍경이 온통 색으로 아른아른 반짝이고 하늘에선 불꽃이 쉬잇 하고 터졌고, 그는 경이로운 눈으로 입을 벌린 채 서 있었던 바로 그 똑같은 장소에다가.




...우정은 상대방의 더딘 불행을, 길고 긴 지루함을, 간간이 찾아오는 승리를 목격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가장 비참한 순간들에 함께 있을 수 있는 특권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그 대신 자기도 그 사람 옆에서 비참한 모습을 보여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 공리가 얼마나 진실한지 확실히 이해한다. 그 자신, 그의 삶 자체가 그걸 증명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는 늘 현재의 나다, 그는 깨닫는다. 문맥은 바뀔 수 있다. 이 아파트에서 살 수도 있고, 즐겁고 보수도 좋은 일을 할 수도 있고, 사랑하는 부모와 친구들도 있을 수 있다. 존경받을 수도 있다. 법정에서는 심지어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는 똑같은 사람,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사람, 미움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공중에 떠 있는 그 찰나의 순간, 높이 떠 있는 황홀함과 끔찍할 게 분명한 착륙 사이에서, 그는 x는 항상 x와 같을 거라는 걸 이해한다. 그가 뭘 하든, 수도원에서, 루크 수사로부터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도, 돈을 얼마나 많이 벌든 얼마나 잊으려고 노력하든, x는 항상 x와 같다.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그의 어깨는 우지직하며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치고, 순간 고맙게도 세상이 그의 아래에서 휙 멀어져간다. x=x, 그는 생각한다. x=x, x=x.


...제이컵이 태어나기 전 어느 날 밤, 아버지께 나한테 해주고 싶은 지혜의 말씀 같은 게 있냐고 물은 적 있어. 난 농담이었는데, 아버지는 내 모든 질문에 대해 늘 그랬듯이 진지하게 받아들이셨지. “음, 부모가 되는 일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재조정이야. 그걸 잘할수록, 더 좋은 부모가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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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음악 - 날마다 춤추는 한반도 날씨 이야기
이우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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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과 화성의 대기는 대부분 이산화탄소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한 바로 그 온실 기체다. 대기층이 두터운 금성은 표면의 열을 가두어 뜨거운 행성이 되었다. 반면 대기층이 얇은 화성은 표면의 열이 쉽게 빠져나가면서 차가운 행성이 되었다.  두 행성의 사이에 있는 지구는 전혀 다른 길을 돌아왔다...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는 공기주머니 1만 개 가운데 네 개에 불과한 미량인데도 그것이 유발하는 기후변화를 보면 자연의 균형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태롭고 불안정한지 깨닫게 된다. 그래서 산업 활동으로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동안에도 공기 대부분을 차지하는 질소와 산소와 수증기가 지구 시스템 안에서 끊임없이 생성 소멸하며 일정한 농도를 유지해왔다는 것이 더욱 경이롭기만 하다.




...먼지가 없다면 구름이 끼기도 어렵고 비도 보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깨끗한 환경에서 수증기가 응결하려면 대기 중의 상대습도가 100퍼센트인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보다 훨씬 과밀하게 수증기가 대기 중에 포개져야 한다. 자연 상태에서 쉽게 도달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하지만 먼지에는 수증기가 쉽게 달라붙을 수 있고 이것이 씨앗이 되어 쉽게 구름방울로 성장할 수 있다. 물이 지나치게 깨끗하면 물고기가 없듯이 대기도 너무 깨끗하면 구름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파란 하늘에 조각구름이 뜨고, 때가 되면 비나 눈이 내려서 만물이 성장하고, 비구름이 물러가면 무지개를 볼 수 있는 것도 사실 먼지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갖기 싫은 먼지가 대기 중에 떠 있어서 세상이 멋지게 돌아간다는 게 사람 사는 이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평탄한 날씨가 없다면 험궂은 날씨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폭풍우에 모진 바람과 세찬 비가 몰려와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바람이 잦아들고 햇살이 비치면서 삶은 그럭저럭 이어진다. 내리막과 오르막이 번갈아 이어지는 둘레길을 그저 뚜벅뚜벅 걸어 나가듯이 어느 구간이 더 편한지, 또는 더 불편한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평이한 날씨는 교향곡이나 협주곡의 2악장 같은 것이다. 느린 안단테 박자에 맞추어 고요하고 정적인 선율이 흐른다. 그 평온함이 다른 악장의 빠른 템포와 격렬하고 거친 선율에 균형추가 되어 준다. 언제라도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충만함이 회복력을 준다.





...한때 빗방울들은 구름 안에서 자유분방하고 무질서하게 서로 부딪히고 쪼개지고 합쳐지면서 세찬 물줄기를 뿜어내고 거친 돌풍을 일으켰다. 이제 그 빗방울들은 질서 정연하게 비슷한 크기로 정숙하게 떠 있다가 햇빛을 굴절하고 반사시켜서 환상의 반지를 보여준다. 그것이 바로 무지개다. 폭풍우에 휘말려도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걸음을 멈추지 않은 자에게 보내는 위로와 축하의 선물이랄까.  그런데 우리는 같은 시간에 함께 있더라도 각자 다른 무지개를 본다.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등진 해의 각도가 다른 데다가 햇빛을 받은 물방울은 다른 각도로 반사하고 굴절하여 관찰자의 시야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각자 다른 물방울이 각자 다른 각도로 보내온 빛을 보는 것이다. 다만 그 차이가 미세하여 우리는 같은 무지개라고 생각할 뿐이다.




...모나리자를 그릴 무렵에도 종종 대륙고기압이 유럽을 감싸면서 기류가 정체하여 끄물거리는 날씨가 이어졌을 것이다. 대기가 안정한 가운데 먼지가 달라붙은 수증기가 차곡차곡 내려앉아 시야는 흐려지고, 대기 중에서 산란한 햇빛이 전경에 끼어들어 산야에는 어스름한 푸른빛이 감돌았을 것이다. 거장은 인물 뒤쪽의 계곡과 폭포와 들판을 연무가 낀 듯 희미하게 처리했다. 배경이 더욱 멀리 있는 것처럼 그려냄으로써 중앙의 인물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했다. 사람의 표정은 눈매와 입가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거장은 스푸마토(sfumato) 기법으로 얼굴에서 특히 표정을 좌우하는 두 부분의 색감과 질감을 은은하면서도 어둡게 처리해 그림을 보는 사람이 여인의 표정을 쉽게 예단할 수 없게 만들었다...스푸마토는 이탈리아어로 “연기처럼 사라지다” 또는 “안개 낀”이라는 의미로서 안개나 연무를 통해서나 느낄 법한 전경을 물감으로 구현해낸 것이다.  안개 속에서는 세상이 부옇게 보인다. 흑백의 경계가 모호하다. 곧장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도 예측이 되지 않아 망설이게 된다. 인생길도 안개가 낀 것처럼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때로는 부드럽고 포근하게 느껴지고, 때로는 냉랭하고 어둡고 두렵게 느껴진다....미래학자 폴 사포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벗어나려 하기보다는 껴안으라고 조언한다. 예측대로 굴러가는 시장은 투자할 매력이 없다는 것이다. 불확실성은 위기인 동시에 기회임을 상기하면서도 나에게만큼은 안개가 걷히기를 바라는 건 풀리지 않는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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