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과 화성의 대기는 대부분 이산화탄소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한 바로 그 온실 기체다. 대기층이 두터운 금성은 표면의 열을 가두어 뜨거운 행성이 되었다. 반면 대기층이 얇은 화성은 표면의 열이 쉽게 빠져나가면서 차가운 행성이 되었다. 두 행성의 사이에 있는 지구는 전혀 다른 길을 돌아왔다...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는 공기주머니 1만 개 가운데 네 개에 불과한 미량인데도 그것이 유발하는 기후변화를 보면 자연의 균형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태롭고 불안정한지 깨닫게 된다. 그래서 산업 활동으로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동안에도 공기 대부분을 차지하는 질소와 산소와 수증기가 지구 시스템 안에서 끊임없이 생성 소멸하며 일정한 농도를 유지해왔다는 것이 더욱 경이롭기만 하다....먼지가 없다면 구름이 끼기도 어렵고 비도 보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깨끗한 환경에서 수증기가 응결하려면 대기 중의 상대습도가 100퍼센트인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보다 훨씬 과밀하게 수증기가 대기 중에 포개져야 한다. 자연 상태에서 쉽게 도달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하지만 먼지에는 수증기가 쉽게 달라붙을 수 있고 이것이 씨앗이 되어 쉽게 구름방울로 성장할 수 있다. 물이 지나치게 깨끗하면 물고기가 없듯이 대기도 너무 깨끗하면 구름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파란 하늘에 조각구름이 뜨고, 때가 되면 비나 눈이 내려서 만물이 성장하고, 비구름이 물러가면 무지개를 볼 수 있는 것도 사실 먼지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갖기 싫은 먼지가 대기 중에 떠 있어서 세상이 멋지게 돌아간다는 게 사람 사는 이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평탄한 날씨가 없다면 험궂은 날씨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폭풍우에 모진 바람과 세찬 비가 몰려와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바람이 잦아들고 햇살이 비치면서 삶은 그럭저럭 이어진다. 내리막과 오르막이 번갈아 이어지는 둘레길을 그저 뚜벅뚜벅 걸어 나가듯이 어느 구간이 더 편한지, 또는 더 불편한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평이한 날씨는 교향곡이나 협주곡의 2악장 같은 것이다. 느린 안단테 박자에 맞추어 고요하고 정적인 선율이 흐른다. 그 평온함이 다른 악장의 빠른 템포와 격렬하고 거친 선율에 균형추가 되어 준다. 언제라도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충만함이 회복력을 준다....한때 빗방울들은 구름 안에서 자유분방하고 무질서하게 서로 부딪히고 쪼개지고 합쳐지면서 세찬 물줄기를 뿜어내고 거친 돌풍을 일으켰다. 이제 그 빗방울들은 질서 정연하게 비슷한 크기로 정숙하게 떠 있다가 햇빛을 굴절하고 반사시켜서 환상의 반지를 보여준다. 그것이 바로 무지개다. 폭풍우에 휘말려도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걸음을 멈추지 않은 자에게 보내는 위로와 축하의 선물이랄까. 그런데 우리는 같은 시간에 함께 있더라도 각자 다른 무지개를 본다.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등진 해의 각도가 다른 데다가 햇빛을 받은 물방울은 다른 각도로 반사하고 굴절하여 관찰자의 시야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각자 다른 물방울이 각자 다른 각도로 보내온 빛을 보는 것이다. 다만 그 차이가 미세하여 우리는 같은 무지개라고 생각할 뿐이다....모나리자를 그릴 무렵에도 종종 대륙고기압이 유럽을 감싸면서 기류가 정체하여 끄물거리는 날씨가 이어졌을 것이다. 대기가 안정한 가운데 먼지가 달라붙은 수증기가 차곡차곡 내려앉아 시야는 흐려지고, 대기 중에서 산란한 햇빛이 전경에 끼어들어 산야에는 어스름한 푸른빛이 감돌았을 것이다. 거장은 인물 뒤쪽의 계곡과 폭포와 들판을 연무가 낀 듯 희미하게 처리했다. 배경이 더욱 멀리 있는 것처럼 그려냄으로써 중앙의 인물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했다. 사람의 표정은 눈매와 입가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거장은 스푸마토(sfumato) 기법으로 얼굴에서 특히 표정을 좌우하는 두 부분의 색감과 질감을 은은하면서도 어둡게 처리해 그림을 보는 사람이 여인의 표정을 쉽게 예단할 수 없게 만들었다...스푸마토는 이탈리아어로 “연기처럼 사라지다” 또는 “안개 낀”이라는 의미로서 안개나 연무를 통해서나 느낄 법한 전경을 물감으로 구현해낸 것이다. 안개 속에서는 세상이 부옇게 보인다. 흑백의 경계가 모호하다. 곧장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도 예측이 되지 않아 망설이게 된다. 인생길도 안개가 낀 것처럼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때로는 부드럽고 포근하게 느껴지고, 때로는 냉랭하고 어둡고 두렵게 느껴진다....미래학자 폴 사포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벗어나려 하기보다는 껴안으라고 조언한다. 예측대로 굴러가는 시장은 투자할 매력이 없다는 것이다. 불확실성은 위기인 동시에 기회임을 상기하면서도 나에게만큼은 안개가 걷히기를 바라는 건 풀리지 않는 딜레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