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이해한 건 다디는 고통 그 자체를 그렸다는 점이다. 그의 그림은 고통에 관한 것이다. 고통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말문을 막히게 하는 엄청난 고통의 무게를 느끼기 위해 그림을 본다. 그렇지 않다면 그림의 정수를 보지 못한 것이다.
많은 경우 위대한 예술품은 뻔한 사실을 우리에게 되새기게 하려는 듯하다. ‘이것이 현실이다’라고 말하는 게 전부다. 나도 지금 이 순간에는 고통이 주는 실제적 두려움을 다디의 위대한 작품만큼이나 뚜렷하게 이해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내 그 사실을 잊고 만다. 점점 그 명확함을 잃어가는 것이다. 같은 그림을 반복해서 보듯 우리는 그 현실을 다시 직면해야 한다.




...우리는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그다음으로 간단히 넘어갈 수 없다. 예술은 어느 주제에 관해 몇 가지 요점을 아는 것이 대단하게 여겨지는 세상을 경멸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점이야말로 예술이 절대 내놓지 않는 것이다. 예술 작품은 말로 단번에 요약하기에 너무 거대한 동시에 아주 내밀한 것들을 다루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침묵을 지킴으로써 그런 것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 이 사업가 혹은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나에게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일도 없고, 추진할 프로젝트도 없고, 지향하는 미래도 없다. 이 일을 앞으로 30년 동안 한다 해도 아무런 발전이 없으리라는 이야기다. 대중들은 이곳에 미라가 어디 있는지,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투탕카멘의 무덤으로 가는 방향을 물을 것이고 화강암 석관을 손으로 때리는 짓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지금과는 아주 다른, 사람들이 흔히 크게 성공할 직업이라고 말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사업가가 마침내 통화를 마치자 모든 것이 평화를 되찾았고 나는 어디로도 가지 않아도 되는 지금이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한 관람객이 미동도 하지 않는 조지아의 얼굴 사진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카메라를 갖다 대고 있다. 목격하는 순간에는 이것이 초현실적인 일처럼 느껴지지만,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카메라 뒤의 남자는 그가 현실을 더 꽉 움켜쥐고 있는 기분이 들 것이다. 손 틈새로 금세 빠져나가버릴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우리는 소유, 이를테면 주머니에 넣어갈 수 있는 무언가를 원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주머니에 들어가지 않고,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것 중에서 아주 작은 부분만 소유할 수 있다면?




...메트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나는 이곳의 주된 역할이 미술사 박물관이 아니라는 걸 더욱 확신하게 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관심 영역은 하늘 높이 솟았다가 지렁이가 기어다니는 지하 무덤까지 내려가고, 그 둘 사이의 세상에서 사는 것이란 어떤 느낌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거의 모든 측면과 맞닿아 있다. 그런 것에 관한 전문가는 있을 수 없다. 나는 우리가 예술이 무엇을 드러내는지 가까이에서 이해하려고 할 때 비로소 예술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믿는다.





...양탄자를 유심히 들여다보다 보니 수만 개의 매듭과 실이 마치 현재와 과거, 현실의 엄청난 밀도를 은유적으로 나타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때는 이 네 귀퉁이 너머로 펼쳐졌던 세상이 있었다는 걸 떠올린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디테일로 가득한, 모든 찬란하고 평범한 인간 드라마를 위한 무대가. 또한 내가 방금 이야기한 맘루크 역사의 밑그림이 엄청나게 빈약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일강을 따라 수천 마일에 걸쳐 펼쳐진 땅에 존재했던 무한히 복잡했을 수천 년의 역사를 나는 고작 ‘이집트’와 같은 작은 단어로 일컫는다. 양탄자를 내려다보자니 초월적인 질문들에 추상적인 답을 구하려는 노력이 바보스럽게 느껴진다. 더 많이 탐구할수록 더 많은 것을 보게 될 테고, 그럴수록 내가 본 것이 얼마나 적은지 깨닫게 될 것이다. 세상은 서로 섞이기를 거부하는 세밀한 부분들로 가득한 것이리라.




...매일 아침 미켈란젤로와 그의 조수들은 새로 바른 회반죽이 마르기 전에 그날 완성해야 할 부분에 대한 밑작업을 했다. 이것을 이탈리아어로 ‘하루의 일’이라는 뜻의 조르나타giornata라고 하는데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는 사실 이렇게 작고 불규칙한 모양의 작은 성취들이 경계선이 거의 보이지 않는 모자이크처럼 모여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비스듬히 누워 있는 아담은 조르나타 네 개, 팔을 뻗고 있는 신도 조르나타 네 개. 조각들을 세어보면 미켈란젤로가 붓과 물감통과 모래, 회반죽 자루를 가지고 흙손(이긴 흙이나 시멘트 등을 떠서 바르는 연장–옮긴이)으로 그 높은 곳에서 570일을 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은 자신의 상황에 갇힌 사람들이 아름답고, 유용하고, 진실된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조각조각 노력을 이어 붙여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교훈까지 말이다. 미켈란젤로 시대의 피렌체, 심지어 미켈란젤로 시대의 로마마저 이런 면에서는 로레타 페트웨이가 살던 시절의 지스 벤드와 다르지 않다. 이제 더 이상 전성기 르네상스와 같은 개념을 빌어 생각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새로 만든 회반죽을 바르고, 거기에 그림을 그리고, 회반죽을 조금 더 바르고, 거기에 그림을 조금 더 그리는 한 사람을 생각할 것이다.




...“끔찍한 순교”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어떤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창문을 열고, 별생각 없이 그 옆을 걸어간다.” 나는 사람들이 몰려 있는 가운데 부분이 혼란스러운 일상생활을 제대로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디테일로 가득하고, 모순적이고, 가끔은 지루하고 가끔은 숨 막히게 아름다운 일상. 아무리 중차대한 순간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기저에 깔린 신비로움이 숭고하다 할지라도 복잡한 세상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간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우리와 다름없이 오류투성이인 다른 인간들이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메트입니다. 여러분은 예술이 제기하는 가장 거대한 문제들에 대해 의견을 피력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도 자기 생각을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기대어 용감한 생각, 탐색하는 생각, 고통스러운 생각, 혹은 바보 같을 수도 있는 생각들을 해보십시오. 그것은 맞는 답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늘 사용하는 인간의 정신과 마음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메트에서 애정하는 작품이 어떤 것인지, 배울 점이 있는 작품은 무엇인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연료가 될 작품은 또 어느 것인지 살핀 다음 무엇인가를 품고 바깥세상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렇게 품고 나간 것은 기존의 생각에 쉽게 들어맞지 않고, 살아가는 동안 계속 마음에 남아 당신을 조금 변화시킬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인 - 현대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 Philos 시리즈 5
리차드 세넷 지음, 김홍식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 카를로 로벨리의 기묘하고 아름다운 양자 물리학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큐비즘은 양자론이 무르익던 시기에 유럽에서 형성된 브라크와 피카소의 입체파 ‘큐비즘Cubism’과 통하는 울림이 있습니다. 양자론과 입체파 모두 세계를 회화적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납니다. 입체파 그림은 다른 시점에서 포착된 사물이나 사람의 상충하는 이미지들이 자주 중첩하죠. 마찬가지로 양자론은 동일한 물리적 대상의 서로 다른 속성들의 측정이 상충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한 대상이 다른 대상에게 나타나는 방식을 고려할 때, 그 어떤 대상이든 ‘관찰자’로 간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다른 대상의 속성들이 그 대상에게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고려할 때 말입니다. 양자론은 사물들이 서로에게 나타나는 방식을 기술하는 것이죠.
즉, 양자론의 발견이란, ‘사물의 속성은 그 사물이 다른 사물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의 발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물의 속성은 다른 사물과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죠. 양자론은 사물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에 대한 이론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가진, 자연에 대한 최선의 설명입니다.



...이렇게 세계는 다양한 관점의 게임 속에서 산산조각 나며, 단일한 포괄적 시각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양한 관점의 세계, 다양한 표현의 세계이지, 확정된 속성이나 단일한 사실을 가진 실체들의 세계가 아닙니다. 속성은 대상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대상 사이에 놓인 다리인 것입니다. 대상은 맥락 속에서만, 즉 다른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며 다리와 다리가 만나는 지점입니다. 이 세계는 거울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비쳐야만 존재하는 관점들의 게임인 것입니다.
사물의 미세한 입자는, 변수들이 상대적이고 미래가 현재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 이토록 기묘하고 작은 세계입니다. 이 환상적인 양자 세계가 바로 우리의 세계인 것입니다.



...양자론은 고전역학도 포괄하고, 우리의 일상적 세계상도 근사치로 포괄합니다. 근시라서 냄비 속의 끓는 물이 안 보이는 사람의 경험을 눈이 좋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듯이, 양자론도 그렇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분자 규모에서 보면, 강철 검의 날카로운 칼날도 폭풍우 치는 바다의 가장자리처럼 거칠고 비뚤배뚤한 것이 됩니다.
고전 물리학적 세계상은 그저 우리가 근시안적이기 때문에 견고한 모습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고전 물리학의 확실성은 단지 확률일 뿐입니다. 옛 물리학이 제공해온 선명하고 견고한 세계의 이미지는 사실 환상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안다고 교만하지 않고 이성과 배움의 능력을 신뢰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은 진리의 담지자가 아니라, 진리의 담지자 같은 것은 없다는 자각 위에 놓여 있습니다. 배움의 가장 좋은 길은,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자신이 발견한 것에 맞춰 자신의 정신적 틀을 재조정하면서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것입니다.



....‘맥락성contextuality’은 양자 물리학의 이러한 중심적인 측면을 나타내는 기술적 명칭입니다. 즉, 사물은 맥락 속에 존재합니다.
모든 상호작용에서 벗어나 고립된 대상은 그 어떤 특정 상태도 갖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우리는 이렇게 저렇게 발현될 수 있는 일종의 확률적 성향이 그 대상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미래 현상에 대한 예상이나 과거 현상에 대한 반영일 뿐이며, 어떤 경우에도 항상 다른 대상에 상대적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과격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 세계가 속성을 지닌 실체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을 뛰어넘어, 모든 것을 관계의 관점에서 생각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양자론을 통해 우리가 세계에 관해 발견하게 된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인간이 무언가를 이해하려고 할 때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 중 하나가, 확실성을 원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에 대한 탐구는 확실성을 먹고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성의 근본적인 부재를 먹고 성장합니다. 우리의 무지를 날카롭게 인식함으로써, 우리는 의심에 마음을 열고 더욱 더 잘 배울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과학적 사고와 호기심, 반항, 변화에서 비롯된 생각의 힘입니다. 앎의 모험이 닻을 내릴 수 있는 철학적, 방법론적 초석이나 최종 고정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 얘야, 너 몹시 심란한 얼굴이구나,
당황했나보구나. 자, 기운 차려라.
여흥은 이제 끝났어. 여기 있는 배우들은
이미 말했듯, 모두 요정이었고
공기 속으로, 옅은 공기 속으로 녹아 사라지지.
그리고 주춧돌도 없이 지어진 환영처럼
구름 걸린 탑도, 화려한 궁전도
장엄한 사원도 거대한 지구 그 자체도
그래, 그 안의 모든 것도 녹아내려
이 실체 없는 광경이 사라지듯,
구름 한 조각 남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꿈을 만드는 재료, 우리 짧은 인생은
잠으로 끝맺는 것 /// 템페스트 4막1장, 프로스페로



...19세기 프랑스 철학자 이폴리트 텐Hippolyte Taine의 말을 빌리자면, “외부 지각이란 외부 사물과 조화를 이루는 내면의 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지각을 ‘환각’이라 부르는 대신, 외부 지각을 ‘확인된 환각’이라고 불러야겠습니다.
과학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보는 방식의 연장선일 따름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예상한 것과 세상에서 수집할 수 있는 것 사이의 불일치를 찾습니다. 우리는 세계에 대한 상을 가지고 있으며, 그 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그것을 수정하려고 노력합니다. 인간의 모든 지식은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어져 온 것이죠.



...우리가 발견한 바에 따르면, 실재는 상호작용의 그물망을 짜는 사건들로 가장 잘 묘사될 수 있습니다. ‘개체’는 이 그물망의 일시적인 매듭에 불과합니다. 개체의 속성은 이러한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순간에만 결정되며,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결정됩니다. 사물은 다른 사물 속에 비친 것일 뿐입니다. 모든 시각은 부분적입니다. 관점에 의존하지 않고 현실을 보는 방법은 없습니다.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시점이란 존재하지 않죠. 그러나 시점들도 서로 소통가능하고, 지식은 다른 지식과 현실과 서로 대화할 수 있으며, 그렇게 대화를 통해 수정되고 풍부해지고 수렴되어, 현실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깊어집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 에디터스 컬렉션 9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각각의 계절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평점 :
품절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됐을까?
우리는 어떻게든 이렇게 됐어.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우리는 언제부터든 이렇게 됐어.
이유가 뭐든 과정이 어떻든 시기가 언제든 우리는 이렇게 됐어. 삼십 년 동안 갖은 수를 써서 이렇게 되었어. 뭐 어쩔 건데? 이미 이렇게 되었는데.
  아……
  어디로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대답하는 사슴벌레의 말 속에는, 들어오면 들어오는 거지, 어디로든 들어왔다, 어쩔래? 하는 식의 무서운 강요와 칼같은 차단이 숨어 있었다. 어떤 필연이든, 아무리 가슴 아픈 필연이라 할지라도 가차없이 직면하고 수용하게 만드는 잔인한 간명이 ‘든’이라는 한 글자 속에 쐐기처럼 박혀 있었다.



....아무리 차근차근 생각해보려 해도 추모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 때문인지 취기 때문인지 내 정신은 급격히 혼탁해지고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가 없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하다가 문득 그럴 수도 있지, 한다. 인간의 자기 합리화는 타인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경로로 끝없이 뻗어나가기 마련이므로, 결국 자기 합리화는 모순이다. 자기 합리화는 자기가 도저히 합리화될 수 없는 경우에만 작동하는 기제이니까.



....사랑해서 얻는 게 악몽이라면, 차라리 악몽을 꾸자고 반희는 생각했다. 내 딸이 꾸는 악몽을 같이 꾸자. 우리 모녀 사이에 수천수만 가닥의 실이 이어져 있다면 그걸 밧줄로 꼬아 서로를 더 단단히 붙들어 매자. 함께 말라비틀어지고 질겨지고 섬뜩해지자. 뇌를 젤리화하고 마음에 전족을 하고 기형의 꿈을 꾸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들이 밑도 끝도 없이 샘솟았고 반희는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 듯 가슴이 뛰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현수와 연락할 방법을 찾자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현수가 그 땅의 현재 가치에 대해 알 필요가 있을까. 안다면 자기의 혜안이 맞았다고 기뻐하기만 하고 끝낼까. 사람은 절대 그렇게 무구하지 않다.



....오래전 젊은 날에, 걸리는 족족 희망을 절망으로, 삶을 죽음으로 바꾸며 살아가던 잿빛 거미 같은 나를 읽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아니, 그런 사람을, 나를 알아본 그 사람을, 내 등을 두드리며 그러지 마, 그러지 마, 달래던 그 사람을 내가 마주 알아보고 인사하고 빙글 돌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그 사람은 나와 춤추면서 넌 거미가 아니라고, 너는 지금 스스로에게 덫을 치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작고 딱딱한 결정체로 만족하지 않아도 된다고, 너는 더 풍성하고 생동적인 삶을 욕망할 수 있다고, 이 그물에서 도망치라고 말해주었을까. 나는 그 말에 귀를 기울였을까. 그 뜻을 알아채고 울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