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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詩 - 돈에 울고 시에 웃다
정끝별 엮음 / 마음의숲 / 2014년 10월
평점 :
21세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돈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은 어쩌면 치열한 일상과 맞물려 무의미한 소리일 수 있다. 그만큼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우리 삶에서 개인차는 있을 수 있겠지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뉴스 속에서 꼭 돈이 많다고 행복하고 돈이 적다고 불행함은 아니란 것을 듣는다.
세상의 이해관계로부터 가장 거리가 먼 사람들은 시인들이다. 천성이 여리거나 예민한 그들은 사소한 기쁨에 감사하고 타인의 아픔, 사회의 그늘에 고개를 떨군다. 시인은 그래서 자본주의의 반짝거리는 상징물인 돈을 피해갈 수 없다. 개인의 불행이든, 공동체 차원의 문제든 상당수 괴로움의 시작에는 돈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 피지 않으랴>, <시가 말을 걸어요> 등을 펴내며 독자들에게 꾸준히 시로 말을 걸어 온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인 정끝별 시인이 ‘돈’과 ‘시’를 접목시켜 인간과 사회와 자연을 이야기한 시 해설 선집이다.
‘돈’과 ‘詩’는 같이 피는 법이 별로 많지 않다. 오히려 나란히 연결하기에는 매우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두 단어이다. 가장 속된 것과 가장 순수한 것을 상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돈’과 ‘시’는 닮은 점이 꽤 많다. 둘 다 ‘산다’라는 단어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쓰다’로 인해 태어난다는 점이 그렇다. 정끝별 시인은 ‘돈’과 ‘시’라는 두 단어가 지닌 이러한 공통분모에서 우리 삶을 읽어 보고자 ‘돈-시詩’의 세계에 주목했다.
<돈 시詩>에 실린 66편의 시들은 '돈'으로 대표되는 우리 생활의 면면과 그로 인한 삶의 비애들, 나아가 현대사회의 단면들과 그것이 비추는 자본주의의 증상들을 담담하고도 뜨겁게, 압축적이지만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 정끝별 시인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예리한 통찰력과 생활인으로서의 뜨거운 가슴으로, 양극단에 있는 두 단어 '돈'과 '시'를 한 몸으로 포개 놓았다.
이 시 집에 실린 66편의 돈시들은 시대와 시적 경향을 가로지른다. 김수영·김상옥 등 옛 시인의 작품이 있는가 하면 김민정·최금진 등 요즘 시인도 있고, 직접 돈에 대해 말하는 시가 있는가 하면 배경으로 등장하는 시도 있다. 어느 쪽이든 펼쳐 읽어도 감동이 된다.
이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한 해 계절의 순환은 곧 인간사의 순환이고, 돌고 도는 ‘돈’의 순환이 그 속에 오롯이 들어 있다. 계절에 따라 삶의 풍경이 바뀌듯 돈의 흐름이 바뀌는 모습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뜻이 깊다. 각 시들은 빈부 격차, 부의 불평등 구조, 돈을 둘러싼 일상과 가족 갈등을 그린다. 또 자본주의를 통찰하고 가난의 풍요로움을 노래하기도 한다.
천상병 시인의 ‘소릉조’가 내 마음을 울린다.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시인은 명절에 고향에 가지 못하는 슬픔을 담담하게 노래하고 있다. 천상병은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다. 그러나 가난을 불편해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며 살았다. 가지려고 하지 않았고, 또 가진 것이 없으므로 아이와 같은 깨끗한 심성의 시를 쓸 수 있었다. 천상병은 나이를 먹어도 아이와 같은 마음을 잃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