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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관계를 지치게 하는 것들
라파엘 보넬리 지음, 송소민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난 대한민국은 무력했다. 우리는 그토록 기적이 일어나길 바랬지만 기다림은 통곡으로 변했고 모두가 울면서 반성했다. 모두가 죄인이 된 심정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황당하다. 세상엔 이런 적반하장이나 후안무치한 행동을 벌이는 이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 승객들을 저버리고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 기계적인 사죄뿐 거짓말로 일관하거나 오히려 큰소리치는 관련 공무원이나 회사 관계자들은 책임 떠넘기기에 바쁘다.
이 책은 오스트리아 지크문트 프로이트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자 신경학자인 저자 라파엘 보넬리가 관계 속에서 자주 마주하는 자기합리화, 자기변명, 책임전가 그리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죄책감 등의 문제를 흥미 있게 다룬다.
젊거나 늙거나 여자만 보면 정신 줄을 놓는 남자들, 연인을 예사로 갈아치우면서 정작 본인은 외롭다고 외치는 남자들, 세상 남자들이 부러워하는 미모의 아내를 두고도 외도를 감행하는 남자들, 이들은 남자의 본능이라고 한다. 빤히 보이는 자기 합리화와 책임 전가다. 그들은 자신의 ‘죄’를 회피하느라 온갖 애를 쓴다. 이쯤 되면 죄책감은 찾아볼 수 없다.
이 책에는 9명의 문학작품 주인공(파우스트, 스크루지, 프란츠 모어, 그레고리우스, 리처드 요크, 미하엘 콜하스, 안톤 호프밀러, 라스콜리니코프, 장발장)의 이야기와 45개의 실제 상담 사례가 수록되어 있는데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마주하는 이야기다.
골목길에 주차된 차의 사이드미러 20개를 발로 차 부순 뒤, 내 발이 다쳤다며 고발하겠다는 10대 청소년, 환경보호 강경론자지만 스포츠카를 산 뒤 “다른 차를 가졌을 때보다 밖에 나가는 일이 줄어 들것이기 때문에 환경을 보호 한다”고 말하는 남자, 심지어 자신을 치료 중인 정신과 의사의 실력이 형편없어서 자신의 자살 시도를 막지 못했다는 남성,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해 끊임없이 불만을 늘어놓는 사람, 자기집착의 정도가 심해 인간 관계를 지치게 하는 사람들도 지적한다. 결혼식날 많은 일들이 자신이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남편을 탓하는 신부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저자는 관계에 있어서 ‘나는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볼 것을 제안한다.
인간은 누구나 죄(잘못)를 짓는데, 문제는 이 죄의 몫이 항상 제대로 분배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책임을 부정하거나 타인에게 미루고, 아니면 오히려 과하게 받아들이는 행위는 오류를 바로잡고 재발을 방지하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저자는 “실패나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를 가져라. 그래야만 비로소 한 발 나아가 속죄하고 용서하는 치유의 단계로 접어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첫째 자신도 실수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 인식으로 비로소 잘못된 행위를 한 사람을 인정할 수 있는 자세가 된다. 둘째 용서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 즉 실제로 무례한 일에 대해 ‘그 일은 잊어버리기로 하자!’라고 말할 수 있는 상당한 아량이 필요하다. 셋째 용서하려는 감정이 생겨야 한다. 요약하면 첫 번째는 이해, 두 번째는 의지, 세 번째는 감정이다.”(p.249~250)라고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관계를 지치게 하는 것들로 남의 탓을 많이 했지만 사실은 내가 타인을 지치게 한 것들이 더 많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갈등에 대해 각자 자신의 몫을 인정하고, 행위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질 것을 제안한다. 이 책을 통해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책임지는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