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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 - 태어남의 불행에 대해
에밀 시오랑 지음, 전성자 옮김 / 챕터하우스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오욕칠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각자의 마음속에는 시시때때로 갖은 바람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가 하면, 또다시 욕심과 분노와 어리석음 앞에 내몰리는 것이다. 오로지 많은 덕업을 쌓고 자기를 다스릴 줄 아는 사람만이 마음의 헛바람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모든 사람은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하루에도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고, 일생을 통해서도 나이에 따라 거치는 과정을 피할 수가 없다. 삶의 과정은 권력과 힘이 있어도 예외는 존재하지 않으며, 재산과 명예를 가졌다고 해서 평정되는 것이 아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욥이라고 하는 사람은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면서 차라리 태중에서 죽었더라면, 그리고 하나님은 나를 보지도 않고 대적자로 여기신다고 말하며 스스로 탄식하면서 자신의 삶을 저주한다. 이런 와중에 위로해야 할 친구들은 찾아와서 욥에게 더 큰 상처를 안겨준다.
우리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태어남을 재앙으로 취급하는 것은 금기시돼 왔다. 오히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축복으로 여겨왔다.
이 책은 루마니아 출신 허무주의 철학자 에밀 시오랑이 늙음·죽음·태어남이라는 3고(三苦) 가운데 태어남을 모든 불행의 원천으로 꼽는 불교 철학을 토대로 “진정한 불행은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그 불행은 공격성, 모든 것의 근원에 자리 잡고 있는 확산과 분노의 원리, 그 근원을 뒤흔들었던 최악의 것을 향한 충동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p.19) 라고 과감히 내지른다.
흔히들 어느 정도 염세적인 사람들은 ‘삶은 죽어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시오랑은 여기서 한술 더 떠 사람의 생이 ‘태어났다는 재앙을 피해 달아나는 것’이자 ‘태어남이란 재앙을 잊고자 미친 듯 날뛰며 안간힘을 쓰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태어남을 ‘하나의 우연’ ‘한낱 가소로운 우발적 사건’ 정도로 치부한 시오랑은 자신이 보기에 헛되기만 한 삶 반대편에 있는 죽음의 존재에 천착한다. “태어남과 쇠사슬은 동의어다. 태어남은 곧 수갑을 차게 됨을 의미한다.”(p.286)고 했다.
그는 죽음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연이 발견해 낸 가장 좋은 것”이라고 봤다.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소멸하고 영원히 중지되므로 우리는 “조금도 노력하지 않고서도 온 우주를 마음대로 처분하고 그것을 소멸로 끌고 가는 것이다”(p.139) 라고 하여 이는 ‘대단한 특권이며, 특권의 남용’이라는 것이다.
그는 “태어남이 하나의 파멸이라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인정할 때, 삶은 마침내 견딜 만한 것이 되고, 마치 항복한 다음 날처럼 투항한 자의 홀가분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p.245)라고 했다. 이 책에는 삶과 죽음에 관한 대담하면서도 명확한 사유가 마치 수많은 조각의 메모처럼 모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