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 호스피스 의사가 먼저 떠난 이들에게 받은 인생 수업
김여환 지음 / 청림출판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실연의 아픔을 겪은 적이 있을 것이다.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나버린 야속한 여인처럼,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의학적으로 죽음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제껏 겪지 못했던 감정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 이 넓은 세상에 혼자 던져진 느낌이다.

 

이 책은 대구의료원 평온관에서 암환자의 고통을 함께하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센터장이자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저자 김여환이 자신이 일하는 대구의료원 평온관에서 말기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았던 환자들의 삶과 죽음을 담은 것이다.

 

이 책은 ‘암에 걸려서 호스피스 병동에 왔다가 삶의 갈등을 정리하고 행복하게 죽었다’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의 끝자락에서 삶과 죽음의 5단계를 극복해나가는 우리의 이야기이자 죽어가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영혼의 속삭임, 즉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우리가 마주해야 할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호스피스 의사가 된 지 5년이 지났다. 병실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가 누구든, 어떤 삶을 살아왔든, 참 잘 살았다고 격려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나는 ‘죽음’과 ‘죽어감’을 돌보는 사람으로서 죽음에 관한 오해를 풀어야겠다는 사명감을 느낀다. 건강한 사람들과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고, 일반적인 죽음의 모습을 개선시켜야 할 의무감을 느낀다.”고 고백하고 있다.

 

또한 “삶에 대한 욕심으로 가득했던 나는 호스피스 생활을 하면서 달라졌다. 여유가 생겼고 넉넉해졌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았고,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시키지 않았다.”고 말한다.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하는 환자를 보며 더없는 안타까움을 느꼈고 그 안타까움은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어루만지는” 호스피스 활동은 그녀의 삶을 바꾸어놓았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두려움 속에서 죽어 갈 수도 있고, 밝은 표정으로 작별 인사를 나눌 수도 있다. 죽음은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갑자기 찾아오는 죽음에, “왜 나만 죽어야 하는가?”라는 식으로 반응하는 사람도 있고, “왜 나라고 죽어서는 안 되는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우리는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1분 후에 올지, 1년 후에 올지 알 수 없는 그 죽음 앞에서 그래도 꼭 하나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그들로 인해 내 인생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전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그중 한 사람이 내게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느냐”고 속삭여 준다면 그것으로 내 인생의 존재 의미는 충분하지 않을까.

 

호스피스 생활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울까? 물 한 모금 떠 마실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은 환자의 입술을 단비 같은 물로 적셔주고, 피고름이 줄줄 흘러나오는 몸을 정성껏 씻기고 닦아준다. 호스피스 봉사는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일이며, 자원 봉사 중에서도 가장 고생스러운 일이다. 허락된 생의 마지막 시간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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