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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 생애 가장 젊은 날
이기주 지음 / 청조사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티베트에는 우울증도 없고 자살도 거의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티베트는 우리가 사는 물질문명의 세상보다는 덜 불행하다는 말이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티베트 고원보다도 최소한 지형적으로나 물질적인 면에서 매우 풍요롭고 편리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나날이 우울증과 자살이 늘어 가고 있는 소식을 자주 접하곤 한다. 주위의 사람들을 보노라면 십중팔구는 대부분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타인의 삶에 눈을 돌리거나 시간과 돈을 들인다. 하지만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행복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는 못한다. 분명한 것은 행복이 우리에게 먼저 손 내미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 책은 한때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자였으며,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탐독하면서 신문과 잡지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는 저자 이기주가 평범한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발견한 소박한 삶의 흔적들을 기록한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화려하거나 부유하지 않다. 좌절과 실패를 겪으면서 꿈과 사랑에 목말라하는 이들이며 오늘과 다른 내일을 꿈꾸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일기를 읽는 기분이 든다. 일기를 읽다가 보면 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 책은 평범한 일상으로 우리를 이끈다. 하지만 평범한 속에서 때로는 일상에서의 인생에 대해 치밀하고 솔직하게 삶에 대한 고민을 풀어놓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그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조곤조곤 수다를 떠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저자는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우린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타인의 삶에 눈을 돌리거나 시간과 돈을 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행복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는 못합니다. 감히 행복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 또한 아둔한 발상입니다. 분명한 것은, 행복이 우리에게 먼저 손 내미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눈 앞에 행복이 보이지 않는다며 녹록치 않은 현실을 비관하고 있을 테고, 누군가는 실패와 좌절의 문턱에서 고뇌하고 있는 것이죠.”라고 말한다.
‘전형적인 88만원 세대’인 편의점에 근무하는 청년이 가수를 꿈꾸며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호된 질책을 당했던 이야기를 읽으며 인생이란 오디션장에 들어선 88만원 세대에게 기성세대가 해줘야 할 일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우린 그들에게 굳이 “넌 분수를 알아야 해”라며 노골적인 충고를 던져야 하는 걸까. 88만원 세대가 꿈을 꾸도록 도와줄 순 없는 것일까.
언젠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리어카 옆에서 비를 맞고 서 있던 과일 장수 아주머니를 보며 영낙없이 먹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황조롱이 새끼들이 눈을 크게 뜨고 ‘짹짹’ 거리며 두리번거리는 어미새를 떠올렸다는 작가의 말에 가슴이 저리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순간을 맞게 된다.
저자 자신이 힘든 삶을 살았을 때 좋은 글을 읽고 많은 위안을 받았기에 자신의 글을 읽을 누군가의 건조한 일상에 조금이라도 위로와 위안을 건넨다는 저자의 아름다운 마음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