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생활 탐구 - 삶을 이어가며 희망을 품다 ㅣ 생각이 자라는 나무 33
송치중 외 지음, 역사교과서연구소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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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칠십 평생을 살아오며 일제강점기라는 말은 늘 묵직한 부채감이자 가슴 한구석의 아픔으로 남아있다. 어린 시절, 동네 어르신들에게서 들었던 징용과 정신대의 비극, 창씨개명과 우리말 진압의 참상은 단순한 역사가 아니라 살아있는 증언이었다. 교과서나 방송에서 다루는 일제강점기 역시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투쟁이나 일제의 잔혹한 수탈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그 시절은 온통 핏빛과 잿빛이 섞인 거대한 비극의 무대로만 기억되곤 했다. 그러나 송치중 외 9명의 사학자가 함께 쓴 일제강점기 생활 탐구는 그 거대한 역사적 사건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보통 사람들의 진짜 삶’을 담담하게 조명한다.

 

이 책은 의열단의 투쟁이나 임시정부의 활동 대신, 그 시대를 살아가던 평범한 민중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어떻게 여가를 보내며 하루하루를 견뎌냈는지에 주목한다. 신작로를 달리는 모던Boy와 모던Girl의 풍경부터 찻집과 영화관의 등장, 전차와 기차를 타고 오가던 모던 도시의 그늘, 그리고 식민지 통제 속에서도 피어난 소소한 소비문화와 유행까지 다채롭게 짚어낸다.

 

처음 책을 들었을 때는 일제의 잔혹한 수탈 속에서 ‘생활’과 ‘문화’를 말하는 것이 혹여 식민지 미화나 정당화로 흘러가지 않을까 하는 노년의 우려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책을 읽어 내려갈수록 그것이 부질없는 걱정이었음을 깨달았다. 저자들은 신문물과 근대화라는 화려한 겉모습 뒤에 숨겨진 차별과 수탈의 구조를 결코 놓치지 않는다. 모던한 카페와 백화점이 들어섰지만 그 이용자는 대부분 일본인이거나 극소수의 부유층이었고, 대다수 조선 민중은 식민지 지배라는 거대한 그늘 아래서 생존을 위한 고단한 노동을 이어가야 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주는 깊은 울림은, 아무리 가혹한 억압과 수탈 속에서도 인간의 삶은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조선의 민중은 일제의 강요와 통제 속에서도 나름의 방식으로 적응하고 저항하며 삶의 온기를 지켜냈다. 우리말을 빼앗기고 이름을 빼앗기는 서러움 속에서도 음지에서 자식들을 가르치고, 일터에서 땀 흘리며, 소소한 소식과 노래로 서로를 위로했던 일상의 흔적들은 그 자체로 고요하고 끈질긴 저항이었다.

 

칠십 년을 살아오며 깨달은 진리 중 하나는, 역사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은 몇몇 영웅의 결단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결국 그 역사를 견뎌내고 뿌리내리게 하는 것은 이름을 남기지 못한 무명 민중들의 질긴 삶이라는 점이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우리 세대의 어버이들이 바로 그 일제강점기의 고초를 몸소 견뎌낸 주인공들이었다. 이 책에 기록된 의식주와 여가의 풍경 속에서, 어릴 적 부모님에게서 어렴풋이 들었던 그 시절의 이야기가 생생한 현실로 다가와 가슴이 뭉클해졌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일제강점기를 그저 시험공부를 위해 외워야 하는 과거의 숫자와 사건으로만 기억하기 쉽다. 짧고 자극적인 매체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백 년 전 선조들의 고단했던 일상을 이해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 책이 지닌 가치는 더욱 크다. 정치사와 제도사에 가려져 있던 ‘사람의 냄새’를 복원해 냄으로써, 역사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나와 닮은 사람들의 삶의 궤적임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생활 탐구는 흘러간 과거를 되돌아보는 회고록을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의 숭고함을 일깨워 주는 소중한 지침서다. 암흑의 시대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하루를 살아낸 선조들의 숨결을 느끼며, 우리가 지금 누리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값진 희생과 인내 위에 놓여 있는지를 숙연하게 돌아보게 된다. 다가오는 주말에는 손주들을 곁에 앉혀두고, 거창한 역사 대신 이 책에 담긴 소소한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다. 빼앗긴 들에서도 들꽃처럼 피어났던 선조들의 질긴 생명력이야말로 우리가 후대에 물려주어야 할 가장 소중한 유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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