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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역사 - 당신이 몰랐던 동유럽의 대국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와타나베 가츠요시 지음, 서민교.정애영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4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살아온 날들이 쌓여 일흔의 고개를 넘어서다 보니, 책을 읽는 시선도 젊은 시절과는 사뭇 달라짐을 느낀다. 한 인간의 일생도 그러하듯, 한 민족과 국가의 역사 속에 들어앉은 굴곡과 흉터가 유독 깊게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와타나베 가츠요시의 <폴란드 역사>를 손에 쥐고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나는 낯선 동유럽 땅의 역사에서 이상하게도 우리가 지나온 슬프고도 치열했던 세월의 냄새를 맡았다.

폴란드는 어떤 나라인가. 14세기부터 16세기 무렵,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시절의 폴란드는 유럽 대륙을 호령하던 광대한 영토의 대국이었다. 문화와 예술이 꽃피고 농업과 무역으로 번성했던 풍요로운 땅이었다. 그러나 강력한 제국주의 이웃들에 둘러싸인 운명은 혹독했다. 18세기 후반,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라는 거대한 강대국들에 의해 세 차례에 걸쳐 영토가 찢겨 나갔고, 결국 1795년 지도상에서 나라의 이름 자체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무려 12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세상의 지도에는 ‘폴란드’라는 이름이 없었다. 땅을 빼앗기고 이름마저 지워진 삶이 어떠했으랴. 우리 역시 나라를 잃고 언어와 이름을 빼앗겼던 식민지 시절의 상흔을 안고 있기에, 폴란드 민족이 견뎌내야 했을 절망의 크기가 가슴 깊이 와닿는다. 그러나 이 책이 전하는 진정한 울림은 지도의 소멸에 있지 않다. 영토는 사라졌으되 그들의 정신과 문화, 그리고 정체성은 단 한 순간도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다.

폴란드인들은 쇼팽의 피아노 선율 속에 민족의 한을 담았고, 시와 문학으로 언어를 지켰으며, 끊임없는 봉기와 저항으로 자유를 향한 의지를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며 1918년 독립을 되찾았지만, 시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나치 독일과 소련에 의해 또다시 침탈당하고 아우슈비츠의 비극을 겪어야 했으며, 전쟁이 끝난 뒤에는 스탈린주의와 사회주의 정권의 그늘 아래 놓였다.

그러나 그 가혹한 운명 앞에서도 폴란드인들은 무릎 꿇지 않았다. 바웬사를 중심으로 한 ‘자유노조’ 운동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영적 중심은 마침내 거대한 동유럽 공산주의 체제의 균열을 이끌어냈다. 저자는 이러한 천년의 역사를 무겁지 않게, 그러나 매우 밀도 있고 담담한 어조로 풀어내고 있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 이 책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무엇이 한 민족을 이토록 뿌리 깊게 견디게 하는가.’ 그것은 외형적인 국력이나 영토의 크기가 아니라, 시련 앞에서도 자존을 잃지 않는 고결한 정신이다. 수많은 좌절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폴란드의 역사는 오늘날 삶의 무게나 노년의 쓸쓸함 앞에 서 있는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역사는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이자 견뎌냄의 지혜다. 동유럽의 비운과 영광을 가만히 짚어보고 싶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