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간 대통령
신용대 지음 / 바른북스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가 일흔을 넘어서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 젊은 시절에는 화려한 승리나 압도적인 권력의 궤적이 먼저 눈에 들어왔지만, 삶의 반환점을 한참 돌아온 지금에 이르러서는 승패의 너머에 남은 ‘인간의 결’과 ‘선택의 무게’를 가만히 짚어보게 되기 때문이다. 신용대 작가의 장편소설 『바다로 간 대통령』을 가만히 읽어 내려가며 내 마음을 가장 깊게 울린 것 역시 거창한 정치적 성공신화가 아닌, 시련의 폭풍 속에서도 끝내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았던 한 인물의 고독한 내면이었다.

 

이 책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통과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애를 60개의 짤막하고 밀도 높은 장면으로 담아내고 있다. 지루하게 치적을 나열하는 평전이나 딱딱한 역사서의 틀을 벗어나, 영화처럼 펼쳐지는 역동적인 서사 구조를 취한 점이 인상적이다. 특히 1973년 도쿄에서 납치되어 칠흑 같은 밤바다 위에서 죽음의 공포와 마주했던 순간부터, 차가운 감옥 바닥에서 흘린 기도, 정치적 좌절과 재기에 이르기까지 소설을 관통하는 핵심 상징은 단연 ‘바다’다.

 

동시대를 살아온 나로서는 소설 속 장면들이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 가혹했던 시대의 공기를 기억하고 있기에, 죽음의 문턱을 몇 번이고 넘나들면서도 절망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을 던졌던 그 삶의 무거움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진짜 가치는 거대한 시련 그 자체보다 그 시련을 견뎌낸 뒤 인물이 내려놓은 ‘선택’에 있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씨름이라는 비유와 ‘용서의 바다’라는 개념을 통해 깊은 통찰을 전달한다. 모래판 위에서 치열하게 겨루지만 경기가 끝나면 흙을 털어내고 상대를 일으켜 세우듯, 진정한 위대함은 승리 그 자체가 아니라 승부 뒤에 어떤 손을 내미느냐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정적들과 시대를 향해 끝내 증오 대신 화해와 용서의 손을 건넸던 모습은, 수많은 풍파를 겪으며 살아온 늙은 독자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용서란 과거를 까맣게 잊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품은 채로 다시 사람을 향해 건너가는 외롭고도 위대한 결단임을 깨닫게 된다.

 

소설 <바다로 간 대통령>은 김대중이라는 인물의 드라마틱한 생애와 용서의 철학을 60개의 시각적 장면으로 풀어내며 몰입감을 준다. 그러나 역사적 비극을 인물의 개인적 내면과 감정선에 집중시킨 나머지, 그 시대를 함께 견뎌낸 대중의 역할과 민주화 투쟁의 구조적 깊이를 지나치게 단순화했다. 또한 영웅적 서사와 관념적인 '바다'의 상징에 몰두하여 현실 정치인으로서 지녔던 공과(功過)와 한계를 미화하고 성찰의 기회를 덮어버린 감상주의적 한계가 명확한 작품이다.

 

서재에 앉아 책장을 덮으며 스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나라면 그 혹독한 어둠 속에서 인간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었을까? 치열했던 삶의 노정을 마치고 인생의 조용한 바다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보인다. 정치적 이념이나 공과를 떠나, 사람이 사람으로 남기 위해 치렀던 그 고결한 헌신이야말로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참된 유산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격동의 현대사를 함께 통과해 온 또래의 동년배들은 물론, 진정한 삶의 가치를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깊고 울림이 큰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