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슬프게, 조금은 행복하게 - 35개국을 여행하며 비로소 알게 된 것들
바뇨별(정반효) 지음 / 미다스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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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보다 아득히 길어진 70대의 언덕에 서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길에 일상의 소란함은 꺼지고 고요한 깊이가 들어앉는다. 지나온 세월의 수많은 희로애락도 이제는 뾰족한 가시가 아니라 동글동글하게 마모된 몽돌처럼 가슴 한구석에 가만히 자리 잡는다. 바노벌(정반효) 작가의 에세이 <조금은 슬프게, 조금은 행복하게>를 펼쳐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다가온 것은 바로 그 반짝이지 않지만 따스하게 온기를 머금은 몽돌 같은 문장들이었다.

 

이 책은 거창한 인생의 진리나 삶의 성공 방정식을 설파하지 않는다. 대신 저자가 하루하루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파편들, 가족과의 소소한 추억, 스쳐 가는 인연, 그리고 문득 찾아오는 아스라한 그리움의 순간들을 담담하게 묘사한다. 70대의 시선으로 이 책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나는 타인의 글을 읽는다기보다 오랜 세월을 함께 건너온 옛 친구와 조용한 찻집에 앉아 낮게 읊조리는 이야기를 듣는 듯한 깊은 공감을 느꼈다.

 

책 제목인 <조금은 슬프게, 조금은 행복하게>라는 문장 자체가 인생의 진면목을 관통한다. 젊은 시절 우리는 행복만을 추구했고, 작은 슬픔에도 삶이 무너지는 듯 흔들렸다. 그러나 칠십 평생을 살아내고 나니 비로소 알게 된다. 슬픔이 전혀 없는 완벽한 행복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도리어 약간의 슬픔과 그늘이 곁들여져 있기에 순간의 소소한 기쁨이 더욱 보석처럼 빛난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기쁨의 순간보다 아쉽고 헛헛했던 슬픔의 기억들이 오히려 마음의 양분이 되어 인품의 결을 만들어주었다. 저자는 그 지점을 과장 없는 담백한 언어로 짚어낸다.

 

특히 저자가 담아낸 가족과 지나간 세월에 대한 회고는 70대의 가슴에 묵직한 울림을 준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시간, 아이들의 작은 손을 잡고 걸었던 길, 그리고 어느덧 나이가 들어 몸 이곳저곳이 마모되어가는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참으로 정갈하다. 늙어간다는 것은 무언가를 자꾸 잃어버리는 과정처럼 보이지만,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그것이 비워짐으로써 비로소 마음에 여백을 채워가는 과정임을 깨닫게 된다.

 

글 전체를 관통하는 저자의 시선은 따뜻하면서도 절제되어 있다. 감정을 과도하게 쏟아내어 독자의 동정을 구하지도 않고, 삶의 무게를 가볍게 휘발시키지도 않는다. 그저 슬픔이 찾아오면 그 슬픔을 온전히 머금고, 행복이 스치면 그 온기를 고스란히 느낄 뿐이다. 이러한 절제된 평정심이야말로 인생의 풍파를 견뎌낸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서정적 품격이다.

 

책장을 덮고 서재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며 세상을 주황빛으로 물들이는 시간, 노을은 눈부시게 밝은 한낮의 햇살보다 훨씬 더 깊고 그윽한 위로를 준다. 우리의 70대 삶 역시 그 노을을 닮았다. 너무 기뻐서 날뛸 일도, 너무 슬퍼서 저 밑바닥으로 꺼질 일도 많지 않은 지금, 삶을 조금은 슬프게, 그리고 조금은 행복하게바라보는 법을 다시금 되새겨본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의 후반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혹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마음의 여백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이 책은 나지막하지만 깊은 울림의 안부 인사가 되어줄 것이다. 남은 계절 동안, 나 역시 잔잔한 슬픔을 긍정하고 작은 행복을 감사히 받아들이며 이 가을의 시간을 가만히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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