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갤브레이스 불확실성의 시대 - 애덤 스미스부터 프리드먼까지 200년 경제사상사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지음, 이경식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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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창밖의 풍경이 계절의 순환을 따라 자리를 바꿀 때, 서재에 들어앉아 까마득한 옛 책을 꺼내 드는 일은 노년에 누리는 특권 중 하나다.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의 명저 <불확실성의 시대>를 다시 펼쳐 든 순간, 나는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뛰어넘어 1970년대의 그 격동적이었던 지성적 울림과 다시 맞닥뜨리게 되었다. 애덤 스미스, 칼 마르크스, 존 메이너드 케인스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경제 사상가들의 발자취를 추적하며, 절대적 확신이 사라진 현대 사회의 본질을 파헤친 이 책은 일흔의 고개를 넘어선 내 삶의 궤적과도 묘하게 겹쳐진다.

 

돌이켜보면 내가 살아온 세월은 그야말로 불확실함과의 끊임없는 싸움이었다. 젊은 시절 우리는 성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신념, 혹은 특정 사상이나 이론이 인간의 삶을 구원해 줄 것이라는 명확한 확신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번영과 위기를 반복하며 변모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 모든 확신이 얼마나 허약한 모래성 위에 서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갤브레이스가 이 책에서 간곡하게 설파하는 지점도 바로 이것이다. 과거의 경제학자들이 제시했던 명쾌한 원칙과 교조적인 이론들은 오늘날 복잡다단한 현실 앞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우리는 이제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갤브레이스의 문장은 경제학서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위트가 넘치고, 시대를 읽어내는 통찰은 서늘할 정도로 날카롭다. 그는 거대 기업의 권력화, 정부의 역할과 한계, 빈곤과 불평등, 그리고 전쟁과 집단적 광기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직면해 온 과제들을 냉철하게 짚어낸다. 특히 그가 지적하는 거대 조직(테크노크라시)의 자율성과 그것이 초래하는 자본주의의 변질은, 오늘날 디지털과 인공지능이 세상을 지배하는 21세기 초입의 풍경과도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시대는 바뀌었고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인간이 직면한 불확실성의 깊이는 조금도 얕아지지 않은 것이다.

 

노년의 눈으로 본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역설적이게도 불확실함을 인정하는 태도 그 자체에 있다. 확신에 찬 사람들은 위험하다. 자신이 완벽한 정답을 알고 있다고 믿는 지도자, 하나의 이론으로 세상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고 오만을 부리는 지식인, 혹은 당장의 자산 상승만을 확신하며 과욕을 부리는 투기꾼들은 언제나 역사와 개인의 삶을 파국으로 몰고 갔다. 반면, 갤브레이스는 자신의 무지와 시대의 불확실성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겸손함이야말로 위기를 헤쳐 나갈 유일한 출발점임을 보여준다.

 

일흔이라는 나이는 삶의 수많은 가설들이 무너지고 바로서기를 반복하는 것을 목도한 나이다. 건강도, 재산도, 인간관계도 절대적인 영원성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비로소 불확실함을 두려움이 아닌 삶의 자연스러운 조건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경제학이 단순히 숫자와 공식의 유희가 아니라 인간의 삶과 도덕적 선택에 관한 학문이어야 한다는 갤브레이스의 주장은, 인생의 후반전을 지나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나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불확실한 세상일수록 우리가 지탱해야 할 것은 거창한 경제 지표나 일확천금의 기회가 아니라, 이웃에 대한 공감과 절제, 그리고 삶을 대하는 정직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책장을 덮으며 내 서재를 둘러본다. 세상은 여전히 빠르게 변하고,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불확실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불안의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매 순간을 겸허하고 정성스럽게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된다. 거장의 지혜가 담긴 이 고전은, 흔들리는 시대의 한복판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차분히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마음의 안식과 깊은 통찰을 선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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